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결정문에 포함됐다. 정부는 이를 외교적 성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외교당국의 무능함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역사 인식이 저급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자 곧바로 <유네스코 정신에 위배되는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비판한다> 긴급성명을 6일 새벽 발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달 28일부터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열리는 독일 본에서 일본의 침략전쟁과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는 전시회와 세미나를 여는 등 홍보활동을 펼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유산위원회는 끝내 일본 메시지시대 미이케 탄광,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미쓰비시 하시마탄광, 야하타 제철소 등 산업유산군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승인했다.

▲ 일본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결정됐으며, 우리 정부가 집요하게 요구해온 '조선인 강제노역'이 주석과 연계되는 방식으로 반영됐다. 독일 본에서 열리고 있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5일 일본이 신청한 23개 근대산업시설에 대해 세계유산으로서의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사진은 미이케 탄광(사진=연합뉴스)

민족문제연구소는 “메시지 시대가 세계유산이 되고 말았다”며 “(세계유산위원회는)‘부정적 유산’으로서의 의미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의도대로 찬란한 세계유산의 하나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강제노동의 역사를 은폐하고 아시아 침략전쟁으로 점철된 메이지시대의 역사를 산업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일본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둔갑시키려는 시도였다”며 일본의 역사 왜곡 의도를 규탄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 미이케 탄광 등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 성장했고, 식민지와 점령지 주민들을 노예적 상태로 동원했다”며 “이러한 사실은 한국·중국뿐 아니라, 연합국 포로 피해자들도 증언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피해자들은 지금도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해당 문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중인 사건임을 분명히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 정부에 대해 “‘조선인 강제노역’이라는 문구 하나 얻었다고 해서 이를 과대포장해 외교적 성과로 자화자찬하고 있다”며 “범정부적으로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본과 달리 뒤늦은 대응에 급급해온 한국정부와 외교당국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두말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역사적 의미’에 대한 고민 없이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정치적 문제로만 바라봤다는 근본적 비판을 제기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다른 회원국들도 일본의 산업시설이 제2차 세계대선 당시 연합군 포로 학대와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에 대한 강제동원의 역사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지적에 공감을 표한 바 있다”며 “하지만 21개 위원국 만장일치 합의의 원칙을 한 번도 깬 적이 없었던 유네스코는 다른 위원국의 의견진술 없이 한국과 일본의 의견 표명만으로 등재 심의를 끝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세계유산위원회 스스로가 한일 간의 정치적 문제로 치부해 갈등을 회피하고 야합을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개탄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긍정적인 역사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추구해야 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담아야 한다”며 “아울러 단순히 문화유산의 기술·문화적 가치만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등재 심사를 둘러싼 과정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강제동원을 비롯한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기록하는데 성실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나아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피해보상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며, “앞으로도 중국인피해자와 연합군 포로 등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의 역사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당사자들과 협력하는 한편 각국의 시민사회와 연대해 전쟁범죄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호도하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바로잡는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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