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SBS <가면>은 10.1%(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수목드라마 중 1위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 방영되는 KBS2 <복면검사>(5.6%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와 MBC의 <맨도롱 또똣>(7.7%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을 여유롭게 제쳤다. 그런가 하면, SBS의 월화드라마 <상류사회>는 평균 8.9%의 시청률로 MBC드라마 <화정>과 시청률 1위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중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신드롬이 무색하게 주중 미니시리즈에서 고전하던 SBS 미니시리즈에게 주중 1위의 영광을 안겨주고 있는 이들 월화수목 드라마의 공통점은 공교롭게도 재벌가의 치열한 가족 싸움을 그렸단 점이다. 결국, 시청률 보증 수표는 '재벌' 그리고 '막장'인 것일까?

갑의 세계 풍자에서 갑들에 대한 탐닉으로

이렇게 월화 수목 이어지는 재벌가의 '막가파식' 집안싸움 이야기의 시작은, 공교롭게도 올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에 빛나는 <풍문으로 들었소>에서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 한정호(유준상 분) 일가의 갑질과 주변 을들의 '갑을 전쟁'을 다룬 이 드라마는, 한정호의 아들 한인상(이준 분)과 평범한 집안의 딸 서봄(고아성 분)의 선을 넘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가 하면, 갑 중의 갑인 한정호의 도덕적 타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아내 최연희(유호정 분)의 친구 지영라(백지연 분)와의 늦바람을 등장시킨다. 또한 아버지 한정호는 아들 한인상의 이혼을 부추기며, 며느리 서봄이 얽힌 사건마다 집안의 재력과 금권을 이용하여 해결하려 든다.

하지만 이런 갑들의 위선과 위악은 그 자체로 드라마의 소재일 뿐이었다. 그것을 통해 <풍문으로 들었소>가 도달하고자 한 곳은 '갑'에 대한 풍자이자, '을'들의 대안 모색이었다. '갑'으로서의 권력과 재력으로 아들조차 회유하려 했던 아버지 한정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 한인상은 '풍문'의 그 집을 나온다. 아들뿐만 아니다. 한정호의 '갑'을 이루던 '을'들 모두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 '을'로서 연대하여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조금 덜 가져도 함께 웃을 수 있어 행복한 삶을 추구하겠다는 것이 <풍문으로 들었소>의 주제다.

하지만 이런 주제의식과 별개로 <풍문으로 들었소>가 최고 12.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한정호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갑'들의 위선적 행태였다. 심지어 귀엽다는 반응까지 얻은 유준상, 유호정의 밉지 않은 갑질이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풍문으로 들었소>로부터 시작된 '갑'들에 대한 관심은 이후 SBS 월화 수목 미니시리즈를 장악한다.

재벌가의 복잡한 가족 관계에서 비롯된 서열 싸움과 거기에 던져진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야망. 이 익숙한 설정은 대한민국 주말 그리고 아침드라마의 클리셰들이다. 그런 주말, 아침 드라마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10%의 시청률에도 이르지 못해 고전하던 주중 미니시리즈들은 확실한 시청률 타켓층을 상대로 한 이야기들을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주제의식과 별개로 갑들의 집안싸움, 혹은 집안 간 싸움으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면, 채시라의 모처럼의 복귀작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들과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최고 13.7% 시청률의 성과를 내었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주말드라마로 편성되었다면 훨씬 더 높은 시청률을 보였을 거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즉, 주말 드라마로 더 적당한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배턴을 이어받은 건 <상류사회>이다. 이미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가족과 사랑에 대한 각별한 작가관을 선보인 바 있던 하명희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태진가로 확장한다. 태진의 회장 장원식(윤주상 분)은 인생에서 남는 것은 '섹스'와 먹는 것'이라며 공공연하게 도덕적 일탈을 자랑하고, 그의 아내 민혜수(고두심 분)는 그런 남편에게서 받은 정신적 고통을 자녀에게 푼다. 그런가 하면 태진가의 자녀들, 유이가 분한 장윤하와 윤지혜가 분한 장예원)은 집안의 금권을 물려받기 위해 치열한 서열 싸움에 도전한다. 그리고 거기에 또 다른 신분 상승의 욕구를 가진, 혹은 사랑으로 포장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남녀(성준이 분한 최진기, 임지연이 분한 이지이)가 재벌가의 남녀와 얽힌다.

그렇게 월화드라마 <상류사회>가 재벌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애증과 남녀간의 사랑에 골몰하는 동안, 수목드라마 <가면>은 도플갱어라는 독특한 제재를 차용하여 재벌가에 입성한 백화점 직원 변지숙(수애 분)의 위험한 줄타기를 다룬다. 자신의 존재를 들킬 위험, 남편 최민우(주지훈 분)와 자신의 도플갱어였던 서은하의 전애인 민석훈(연정훈 분) 사이에서 사랑과 야망의 줄타기를 하는 서은하의 롤러코스터가 <가면>의 볼거리다. 물론 거기엔 sj그룹의 향방이 달려있다.

현실과는 다른 재벌가 사람들, 결국 현실을 망각한 판타지?

<풍문으로 들었소>가 한인상과 서봄을 중심으로 한 을들의 연대로 결론 맺자, 지나친 이상주의적 판타지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은 다를까?

<풍문으로 들었소>, <상류사회>, <가면> 이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위선과 위악으로 물든 재벌가에도 독야청청하게 제정신이 박힌 젊은 2세대가 존재한단 점이다. 한인상은 대대로 이어온 '한송'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제 1의 법률 권력에 저항한다. 그 저항은 보잘 것 없는 집안의 서봄을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상류사회>의 윤하는 또 어떤가. 가정적으로 어머니의 학대로 인한 일탈이었지만, 재벌가라는 배경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역시나 재벌가의 도련님 유창수는 고졸의 푸드마켓 직원을 만나 일탈을 시작한다. <가면>의 최민우는 재벌 그딴 거에 관심이 없다. 일찍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한 이래, 그리고 늘 그로 인한 환각에 시달리는 그에게 재벌가의 그늘은 부질없다.

재벌가나 그와 유사한 갑들을 다룬 드라마의 동인은 바로 이들 젊은이들이다. 순수한 사랑을 통해 이들은 변모하고, 이들로 인해 부패하고 썩은 갑은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에서도 보여지듯이, 재벌가의 그늘에서 나고 자란 2세, 3세들은 그 권력에 탐닉한다. 영세 상인들의 상권을 악착같이 빼앗으며 빵가게 등 각종 이권을 확장하는 데 그들이 앞장선다. 외국 유학을 통해 배운 선진지식은 보다 강력한 '갑'으로 그들을 부상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각성한 재벌가의 2세나, 갑을의 사랑 따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는 월화 수목 금토일, 아침저녁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골몰하며 기적을 바란다. 그저 시청률을 위한 선택이라기엔 '탐닉'의 도가 지나치다.

하지만, 이 탐닉은 쉬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면> 후속인 <용팔이> 역시 왕진 의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거기엔 역시나 재벌가의 잠자는 공주와 회장인 이복 오빠의 집안 갈등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이런 선택이 효과가 있을까? 물론 동시간대 1위나 1위 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10%를 겨우 넘거나 그에 못 미치는 시청률을 보면 선택의 묘미를 운운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지상파 미니시리즈가 이렇게 현실과 괴리된 재벌가의 집안싸움에 골몰할수록, 젊은층은 작품성 있는 케이블 드라마로 관심을 돌린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구글 검색어 10위에 들고, <냄새를 보는 소녀>가 방영 당시 <무한도전>을 제치고 콘텐츠 파워 순위 1위를 기록한 성과와는 무색해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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