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타이거즈가 스윕패의 문턱에서 간신히 돌아섰다. 1회초만 해도 두산전 패배 분위기를 그대로 답습했다. 기아는 마지막 보루였던 스틴슨이 무사 만루를 허용하면서 지난 이틀간의 패배가 머릿속에 떠올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병살 기회를 놓치는 어이없는 실책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을 뿐이었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1실점으로 초반 위기를 막은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았다.

연 이틀 패배하고 1회부터 투수가 무사 만루를 허용했다면 야수들의 집중력이 충분히 떨어질 수 있지만 그나마 투수력과 수비로 근근이 버텨온 기아이기에 이날 나온 실책 2개는 아쉬움과 걱정을 남긴 부분이었다. 이겼기에 망정이지 졌다면 기아의 팀 분위기는 더욱 침몰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1회의 위기를 벗어난 스틴슨은 이후 본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다. 스틴슨이 제 구위를 찾으며 연 이틀 3할 후반의 팀타율을 뽐내던 두산 타선이 2회부터는 스틴슨으로부터 산발 2안타에 그치며 완전히 묶였다. 특히 4회초 무사 1, 2루에서 오재원의 번트 실패가 그대로 병살로 이어지면서 완전히 치고나갈 추진력을 놓치고 말았다.

▲ KIA 스틴슨 ⓒ연합뉴스
위기 뒤에 기회라는 야구 격언은 대체로 틀리는 법이 없다. 4회초 위기를 잘 벗어난 기아는 4회말 필의 2루타에 이은 도루와 이범호의 희생타를 엮어 동점을 만들었고 7회말 이범호의 안타와 김다원의 사구로 맞은 1사 1,2루의 기회에서 그간 침묵해왔던 최용규가 2루 방면 땅볼안타를 치면서 역전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스틴슨은 좀 더 힘을 냈다. 8회까지 마운드를 지킨 스틴슨은 9회초 마무리 윤석민에게 공을 넘겼다. 그러나 3연패에 몰린 상황과 1점차 리드라는 긴장감이 윤석민에게 부담이 컸었던 것 같다. 윤석민은 첫 타자 김현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으나 이어 연속 2안타를 허용했다. 이어 양의지를 삼진을 잡았지만 다시 허경민에게 안타를 내주는 모습이었다.

기아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고 두산으로서는 아쉬웠던 것이 1이닝에 안타를 3개나 치고도 점수 변동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2사 만루까지 허용한 윤석민은 분명 위태로워 보였다. 두 팀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타자는 최주환. 최주환은 윤석민의 2루를 타이밍 좋게 잡아당겼다.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지만 외야와 내야의 빈 곳을 향하는 텍사스성 안타가 될 수도 있는 타구였다.

▲ KIA 김호령 ⓒ연합뉴스
그렇게 기아가 연패의 구렁텅이로 빠질 뻔한 상황을 구해낸 것은 중견수 김호령이었다. 다소 전진 수비를 하고 있었지만 최주환의 타구는 결코 쉽게 잡아낼 수 없는 타구였다. 하지만 수비 능력만은 의심하지 못할 김호령은 빠르고 단호하게 타구를 향해 달려들어 거의 역전타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을 무효로 돌려버렸다. 김호령의 이 수비 하나로 팀은 연패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고 다시 5할 승률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참 기가 막히게도 기아는 말도 안 되게 또 승률 5할을 지켜냈다. 냉정하게 보자면 상위팀과의 2승 3패가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왠지 만족할 수 없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두산과의 3연전 첫날 1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던 험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못해 불만이 쌓이고 있다.

리그 내 팀들이 상하위권을 막론하고 외국인선수 교체에 적극적인 반면 기아는 팀 타격이 꼴찌에서 허우적대는 상황에도 너무 느긋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바꿀 패가 있음에도 쥐고 있는 것은 승부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다. 그렇게 미적거리는 사이에 오르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고 미지근하게 지켜지는 기아의 5할 본능이 이제는 좀 지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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