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텐츠의 시대, 지상파방송의 편성전략을 바꾸다

잇따른 비지상파 방송의 활약을 감안해 볼 때, 이제 방송은 ‘플랫폼 시대’를 넘어 본격적인 ‘콘텐츠 시대’로 접어드는 듯 보인다. 지상파 방송이라고 해서 무조건 시청률이 보장되던 시대는 빠르게 지나가고 있으며, 비록 변방의 채널에서 방영된다 할지라도 재미와 공감만 잡는다면 얼마든지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만 넘어도 대박이라 평가받던 케이블 프로그램이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고, 소수점 자리에서 싸움하던 종편 방송이 지상파를 능가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로 ‘콘텐츠’의 힘이다. 나영석 PD가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을 수상하고, 1인자 유재석의 JTBC 진출이 이뤄진 것 역시 ‘플랫폼 시대’에서 ‘콘텐츠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플랫폼 시대와 콘텐츠 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도전과 모험이다. 지상파 3사가 서로 시청률을 나누어먹던 시절에는 굳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방송은 9시 뉴스, 10시 드라마, 11시 예능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고정화됐다. 뉴스 시청률 싸움이 가속화되면서 8시뉴스라는 새로운 도전이 이어진 바는 있지만, 그럼에도 ‘10시 드라마, 11시 예능’은 거의 불문율처럼 이어져 내려왔다. 시청자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지상파 방송의 편성에 따라 9시에는 뉴스를 보고, 10시에는 드라마를 보며, 11시에는 예능을 봐야했던 것이다.

하지만, 틈새시장을 겨냥한 비지상파방송의 활약으로 인해 공고했던 지상파방송의 편성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KBS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예능드라마 <프로듀사>가 금요일과 토요일에 자리잡은 것은 바로 지상파의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사실, 이 시간대는 tvN에서 <삼시세끼>를 편성하여 재미를 본 시간대다. 비록 시간대는 다르지만, <미생> 역시 금-토 저녁시간을 노리면서 새로운 황금시간대를 발굴한 바 있다. 그간 지상파 방송에서 주말 드라마를 토요일과 일요일에 편성했던 것에 비춰보면 도전과 모험임에 틀림없으며,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었던 셈이다.

주말 드라마에 대한 개념을 ‘금-토’로 바꾼 비지상파방송은 평일 ‘10시 드라마’에 대한 공식마저 깨뜨리려 하고 있다. 바로 지상파 방송에서 드라마를 방영할 때, 비지상파방송은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맞불’을 놓고 있는 것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tvN <집밥 백선생>은 각각 지상파방송의 드라마와 경쟁하며 3~4%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나름 선전하고 있다.

이로써 시청자에겐 선택이 폭이 넓어졌다. 플랫폼 시대에는 저녁 10시만 되면 무조건 드라마를 봐야 했지만, 콘텐츠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능과 드라마 중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지상파방송이 비지상파방송을 따라 편성전략을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비지상파방송에 계속해서 시청자를 빼앗기고 있는 만큼, 지상파 방송 역시 새로운 도전과 모험에 나설 수밖에 없다. <프로듀사>가 금토 드라마로 편성되면서 재미를 보고 있듯, 머지않아 지상파방송에서도 10시 예능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채널과 시간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쟁해야 할 매체와 채널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콘텐츠’ 그 자체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 힘을 뒷받침할 수 있다면 10시 예능, 11시 드라마라는 파격 편성도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비지상파방송의 활약은 불문율처럼 굳어진 지상파 방송의 ‘10시 드라마’ 공식을 깰 수 있을까? 콘텐츠 시대로 돌입한 방송환경이 지상파방송의 편성전략을 어떻게 바꿀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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