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한 혼란이 급속하게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가 제때 역할을 하지 못해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을 계속하고 있고 질병관리본부와 국민안전처 등 주무부처의 안이한 대응도 연일 파문에 가까운 논란이 되고 있다. 행정의 무능이 도를 넘어섰단 비판이 제기되는 때,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4일 보수언론은 비판의 톤을 낮추는 데 힘을 기울였다.

<경향신문>은 4일 1면 기사에서 “감염환자 1명에서 시작된 중동호흡기증후군 문제가 ‘대란’으로 번지기까지 정부는 없었다”면서 “국민 불안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국가 신인도가 추락 위기에 놓였지만 정부는 메르스 방역에도, 국민의 ‘불안 방역’에도 모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나온지 2주가 지난 3일에서야 처음으로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한 것은 2주동안 정부의 ‘총력대응’이 사실상 실종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4일자 1면 기사.

<경향신문>은 이날 2면에 자가 격리 의심환자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허술하다는 취지의 기사를 배치했고 3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우여 사회부총리,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행적을 분석하며 정부의 초동대응이 늦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또, <경향신문>은 4면에 메르스 확산으로 지역사회와 재계의 위기감이 확대되고 있다고 썼고 5면에는 정부가 메르스 감염환자가 거쳐간 병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도 정부가 메르스 관련 대응방안을 놓고 우왕좌왕하는 동안 청와대가 한 일이라고는 ‘국회법 싸움’ 밖에 없다면서 “청와대는 국민의 생명이 걸린 메르스 사태보다 국회법 개정안을 더 중대한 일로 생각한 모양이다”라고 꼬집었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은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한겨레>는 이날 1면에 정부가 감염환자의 거주 및 이동지역, 치료 병원 등 메르스 관련 정보를 정부가 공개하지 않아 국민이 혼란에 빠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치했고 3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2주만에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또 이날 4면에 메르스 공포가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치했고 5면에서는 정부가 일선 학교의 휴교 여부를 두고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 한겨레 4일자 1면 기사.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의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발언을 두고 “정부 대응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여러 지시를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믿음을 줄 만큼의 진정성을 느끼긴 어렵다. 지금까지 정부는 뭘 했느냐고 국민은 묻는데, 죄송하다거나 책임을 느낀다는 말 한마디 없다. 몇몇 지시사항에 있긴 하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대책본부 책임자로부터 익히 들었던 내용의 반복이다”라고 비판했다.

▲ 중앙일보 4일자 6면 기사.

비판적인 관점의 기사를 지면에 배치한 것은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는 3면에 자가 격리자가 ‘골프 외출’을 하는 바람에 강남구 대치동의 초등학교 3곳에 연쇄 휴업에 돌입하는 등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치하고 4면에서는 메르스 확진자 30명 가운데 24명이 감염 증세가 나타날 때까지 자가 격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상당수가 증세 발현 뒤에도 보건당국의 통제 범위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또, <중앙일보>는 5면에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메르스 의심환자 격리시설의 이용을 사전통보가 없었다는 이유로 지방공무원들이 거부하는 ‘지역 이기주의’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도 보도했고 6면에는 <대변인실 문 잠근 복지부…불신 키우는 ‘메르스 불통’>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정부가 보안을 이유로 정보를 알리지 않아 혼란이 확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메르스, 최악의 ‘경계’ 단계에 준해 대처할 때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더 이상 중앙정부는 헛발질을 그만하고 메르스 확산을 제대로 관리·통제하는 중심에 서야 한다. 당·청의 신물나는 친박·비박 이전투구나 야당의 친노·비노 계파투쟁도 이쯤에서 중단돼야 한다”면서 경보 단계를 격상시키지 않더라도 대내적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동아일보 4일자 1면 기사.

하지만 나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중앙일보>에 비하면 <동아일보>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다. <동아일보>는 이날 1면에 자가격리 환자 숫자가 1261명에 달하게 되면서 보건당국의 통제가 뚫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들이 이 대목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것과는 다른 관점인 셈이다. <동아일보>는 이날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확인된 다음날 질병관리본부가 운동회를 열었다는 기사를 3면에 작게 배치한 것 외의 정부 비판적 논조의 기사를 지면에 싣지 않았다.

다만,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서 “박 대통령은 보다 일찍 전면에 나서 관련 부처들을 다잡고 사태 수습을 독려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어야 했다”며 “지난해 4월 세월호가 국민 눈앞에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데도 정부가 초동 대처에 실패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때의 리더십 부재 현상이 다시 벌어지지는 않아야 한다. 어제 박 대통령 주재의 긴급점검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일제히 노란 점퍼 차림으로 나서본들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놨다.

소극적인 <동아일보>의 이러한 모습과 비교하면 <조선일보>는 이날 매우 ‘적극적인’ 지면편집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이날 <조선일보>의 지면은 앞의 신문들처럼 정부 비판에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닌, 정권에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려는 의도가 대거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서 의료계와 정부·국민이 ‘계엄령 수준’의 대응을 통해 공포의 확산을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고 2면에는 국민들이 동요할 필요가 없고 의료계가 전면에 나서 메르스 확산에 대응하겠다는 내용의 추무진 의사협회장 인터뷰 내용을 크게 실었다. 또, <조선일보>는 3면에 환자 이동 금지 든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적하며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4면에는 SNS에서 퍼지는 유언비어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의 오병희 서울대병원장 인터뷰를 실었으며 5면에는 각 학교에 휴업을 적극 고려하도록 지침을 내리겠다는 내용의 황우여 사회부총리 인터뷰를 실었다. 이 정도면 거의 ‘관변매체’를 방불케할 정도다.

▲ 조선일보 4일자 사설.

<조선일보>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입장은 사설면에 가서야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이날 <대통령은 ‘방역 獨裁’ 욕 먹을 각오로 과단성 있게 행동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과연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국민이 느끼는 불안감과 일치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방진복을 입고 현장을 방문해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이미 세월호 참사 때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면서 “메르스 사태에서까지 국민으로부터 불신당하면 정권은 회복 불가능한 구렁텅이로 빠져버릴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이날 관변매체를 연상시킬 정도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이유가 이 사설에서 드러난다. 즉, <조선일보>가 판단하기에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해의 메르스 사태에서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리더십의 혼란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리라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조선일보>는 언론으로서 정부의 못난 대응을 비판하기보다는 ‘같은 편’으로서 적극적인 ‘수비수’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언론의 정도가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박근혜 정권이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전향적 접근을 할 수라도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박근혜 정권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도, 보수정권도 모두 불행한 신세가 돼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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