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적 지위 상실이 다시 한 번 유력해졌다. 헌법재판소가 28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서울고법이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8대 1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전교조가 해직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교원노조법 제2조를 위반하였다며 2013년 10월 전교조를 합법적인 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노조 아님’ 통보를 한 바 있다. 교원노조법 제2조는 초·중·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교사가 해고됐을 경우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고 재심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경우에만 조합원이 유지된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법해석이다.

전교조는 이에 반발해 해직교사 역시 조합원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주장을 분명히 하며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해 고용노동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전교조의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정신청을 받아들였고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까지 전교조의 법적지위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2심 재판부 역시 고용노동부의 손을 들어줄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구체적인 논리는 법외노조통보는 행정당국의 재량에 달린 문제이며, 처분이 적법한 재량의 범위에 해당하는지 문제는 법원이 판단할 수 있도록 돼있으므로 교원노조법 제2조 자체가 교원의 노동조합 결성 및 단결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전교조가 법적지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법원에서의 싸움에서 이기거나, 입법부를 움직여 법 조항을 바꾸거나, 정권을 교체해 행정당국의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는 수밖에는 없다.

결정에 참여한 헌법재판관 중 김이수 재판관은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김이수 재판관은 교원노조법 2조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입법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이를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으며, 산업별·지역별 노조에 해당하는 전교조의 특성상 다른 직종으로의 변환이 쉽지 않은 해직교원이나 구직 중인 교사자격소지자의 가입을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없고, 정치활동과 쟁의권에 있어 일정한 제한을 받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며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주장했다.

김이수 재판관의 이러한 입장은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통보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모순되며, 한국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인 1996년 ‘결사의 자유’가 미보장됐다는 회원국들의 지적에 전교조 합법화와 해고자 노조가입 허용 등을 사실상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답변을 OECD에 보낸 것과도 충돌한다는 일각의 지적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전교조 관계자들이 헌법재판소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근거가 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 자체의 법적효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법·입법·행정의 전 영역에 걸쳐 심화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적 성향이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2016년 정년 60세 시행을 앞두고 노동자의 동의 없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날 오후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를 열었지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 200여명이 행사장을 점거해 무산됐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은 “사용자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상당한 협의 노력을 했으나, 노조가 대안 제시도 없이 논의 자체를 거부할 경우에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통해 쟁의권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는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취업규칙의 개정은 직원 과반수나 노조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 일반적인데, 정부 주장은 바로 이 부분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내용이다.

박근혜 정권이 ‘반노동적’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례는 이것 뿐 만이 아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27일 고용노동부의 ‘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 지도 계획’에 대해 ILO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다음달 ILO총회 기간에 한국정부를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 지도 계획’은 인사 및 경영권에 대한 노조의 동의를 규정하고 있는 단체협약에 대한 현장지도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시정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고용노동부의 계획에 대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해고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사용자의 인사권, 경영권 남용으로 노동자는 배치전환, 해고 남발 등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논란은 앞서의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논란과 거의 같은 맥락상에 위치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 추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3년차 국정의 주요 과제로 ‘4대부문 개혁’을 언급하면서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공공·노동·금융·교육 부문에 대한 개혁 의지를 밝혔는데 이 ‘개혁’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가 연일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정권이 ‘반노동적’적 성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앞서 언급했듯 사법부 역시 정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구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가 독립기구이기는 하지만 법관의 자격을 갖춘 사람을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에서 뽑는 경력판사 지원자들을 국가정보원이 접촉해 사실상 면접을 벌여왔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국정원이 지원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해 세월호 사건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견해를 묻고 SNS 활동 등에 대해서도 추궁을 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은 이와 같은 활동에 대해 판사 임용자 신원조사와 대면조사 모두 법적인 근거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하였으나, 지난 2005년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라 국정원의 신원조사에서 ‘사상검증’과 관련된 부분이 제외됐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아울러 경력판사 지원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신원조사 자체가 삼권분립을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 또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다수당이 여당인 새누리당이고 이들과 협상해야 할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노동권과 관련한 모든 의제를 방어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는 점을 돌아볼 때, 결국 이와 같은 흐름들은 입법·사법·행정의 전 영역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밀려나고 있는 상황을 보여 준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러한 ‘후퇴’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뤄질지 가늠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절망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직접 나서는 것이 유력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조직들의 부진과 진보정치세력의 지리멸렬도 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야권과 시민사회세력의 비상한 대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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