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시를 받아 보도와 인사에 개입한 것이 드러나 길환영 사장이 불명예 퇴진한 지 1년이 지났으나, KBS의 ‘대통령 보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KBS의 대통령 보도는 대통령 일정을 단순 전달하는 보도가 69.8%에 달했고, 분석과 비판이 중심이 된 기획 취재는 전무했다.

2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주최로 <KBS 수신료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 정홍규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KBS 보도 공정한가? : 불공정의 원인과 과제를 중심으로> 발제를 통해 지난 3월 22일부터 5월 21일까지 최근 61일간의 KBS 메인뉴스 <뉴스9>에 나온 대통령 보도(단신 제외)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3월 22일부터 5월 21일까지 <뉴스9>에서 보도된 대통령 보도는 총 43건이었다. 이는 길환영 사장 체제였던 지난해 1월 1일부터 2월 13일까지 44일 간 대통령 보도가 43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줄어든 수치다. 하루 평균 대통령 리포트 건수는 지난해 0.97건에서 올해 0.70건으로 줄었고 아이템 평균 순서도 지난해 5.33번째에서 올해 5.79번째로 약간 늦춰졌다.

▲ 이날 토론회에서 분석과 비판이 사라진 대통령 보도의 사례로 소개된 4월 15일 KBS <뉴스9>(위), 5월 12일 KBS <뉴스9> 보도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43건의 대통령 보도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았던 것은 대통령 일정을 좇는 소위 ‘동정’ 보도였다. 총 30건으로 전체의 69.8%를 차지했다. 청와대 발표 보도는 7건으로 16.2%, 대통령 발언이 중심이 된 리포트는 6건으로 14%였다. 하지만 대통령에 관한 독자적인 문제제기나 논쟁적인 이슈 제기, 기획 취재나 탐사보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리포트 내용 분석을 위해 대통령/청와대 뉴스 취재 경로와 리포트에 사용된 인터뷰, 녹취 등 사운드바이트의 당사자를 분석해 본 결과는 더 심각했다. 43건 리포트에 사용된 사운드바이트는 총 90개였는데 이 중 대통령 발언이 59건, 청와대 관계자 발언이 10건으로 도합 76.7%를 차지했다. 해외 정상을 비롯한 외국인은 9건, 기업인과 정치인이 각각 5건, 4건이었다. 기타 3건은 대통령의 중학교 은사와 어린이, 총리 내정자였다.

이에 반해 대통령의 업무수행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사운드바이트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청와대 지시로 보도와 인사에 개입해 결국 해임된 길환영 전 사장이 떠나고 새로운 ‘조대현 체제’가 시작되었는데도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을 좇는 보도는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정홍규 간사는 “자사 뉴스를 모니터링하는 공추위 간사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KBS 뉴스가 전임 길환영 사장 때보다 나아진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경제 관련 보도는 비교적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고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면서 기업과 자본에 우호적이고 정책 홍보에 치중하던 전임 사장 때에 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도 “KBS뉴스의 공정성이 나아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받는 것은 KBS뉴스 가운데 정치 보도의 변화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홍규 간사는 “43건의 리포트에 사용된 보도 문장은 모두 304개로 이 가운데 대통령에 대해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문장은 야당의 입장을 전한 단 4문장에 불과했다”며 “한마디로 <뉴스9>는 대통령과 관련된 보도에 한해 언론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권력 감시의 기본적 기능조차 거의 완전히 상실해 청와대 홈페이지나 국정뉴스인 KTV와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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