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유일하게 2연패 이상을 당하지 않은 팀은 1위 두산 베어스나 2위 삼성 라이온즈가 아닌 한화 이글스이다. 매 경기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승부를 연출하며 팬들을 중독시키고 있는 한화 이글스는 5월 1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펼쳐진 넥센 히어로즈와의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올 시즌 최대 고비를 맞이하였다.

올 시즌 3연전 시리즈에서 단 한 차례도 스윕을 당하지 않았고, 이에 당연히 2연패 이상을 당해보지 않았던 이글스였지만, 5월 17일 경기에서는 경기 초반 무려 6-0으로 밀리면서 스윕 탈출은커녕 대량 실점의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다.

무려 일주일 사이에 세 번이나 선발 등판한 안영명이 3회에 조기 강판한 가운데 이글스는 이동걸, 김기현, 구본범, 정대현 등 특유의 벌떼 불펜 작전을 구사하여 히어로즈에게 더 이상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7회부터 필승 계투조 원투펀치의 선발주자인 박정진이 등판하기 이전까지 이글스는 불펜 물량공세를 통해 대량실점의 위기를 넘어갔다.

▲ 한화 김경언이 6대 3으로 뒤진 9회말 동점 3점 홈런을 날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6-0에서 이글스는 3회말과 4회말에 각각 2점과 1점을 만회한 후, 필승 계투조가 등판한 직후인 7회부터 1점씩 야금야금 쫓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8회말에 추격의 득점이 된 이용규의 번트 타구는 히어로즈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절묘하게 뚫는 진기명기 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6-5 한 점차로 뒤진 9회초 수비에서 김성근 감독은 마무리 권혁을 투입하여 추가 실점의 여지를 봉쇄하고 9회말 공격에서 반격을 노린다. 끝까지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감독의 의지가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파된 듯, 이글스는 9회말 공격에서 선두타자 김경언이 히어로즈의 간판 마무리 손승락으로부터 극적인 동점홈런을 뽑아낸다.

시즌 10번째 이글스파크를 가득 메운 홈팬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된다. 이글스는 9회말 공격에서 투수 권혁이 타석에 들어서는 진기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권혁은 2사 만루 상황에서 손승락을 상대로 3-2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지만 아쉽게 삼진으로 물러선다.

▲ 한화 마무리 투수 권혁이 17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과의 경기에 9회말 타석에 들어서 있다. ⓒ연합뉴스
찬스를 무산시킨 뒤에 곧바로 위기를 맞이한다는 속설답게 이글스는 10회초 수비에서 권혁이 제구력 난조로 고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삼진과 범타를 이끌어내면서 권혁은 투혼의 40구를 쏟아낸다.

이글스는 10회말 공격에서 선두타자 정근우가 중전안타로 출루하면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찬스를 맞이한다. 결국 1사 만루의 절호의 찬스를 맞이하고 타석에서는 넥센에서 트레이드되온 허도환이 들어선다. 과연 허도환이 친정팀을 향해 비수를 꽂을 수 있을지 공 하나하나에 이글스 파크를 가득 메운 야구팬들과 중계를 시청하는 모든 팬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3-2 풀카운트에서 허도환은 놔두면 볼이 되는 높은 공에 방망이를 갖다 댔으나 인필드 플라이로 물러난다.

이대로 찬스가 무위로 끝나면 경기의 흐름은 히어로즈로 넘어올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이날 경기에서 3안타 경기를 펼친 강경학은 상대 투수 배힘찬과 끈질긴 승부를 펼친 끝에 풀카운트에서 높이 들어오는 공을 잘 참으면서 극적인 승부에 정점을 찍는다.

사실상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던 승부를 기어이 뒤집는 저력을 발휘한 한화 이글스의 중독야구는 어김없이 위력을 발휘하였다. 이글스는 39경기 만에 시즌 20승을 달성하는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6월이 넘어서야 시즌 20승을 겨우 달성하던 시절과는 완전히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17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10회 연장 끝에 밀어내기 득점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사진은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김성근 감독의 투수 기용을 두고 혹사 논란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비상식이 상식을 지배한다는 등의 독설이 깃든 표현으로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폄하하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만큼 전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다양한 복안을 짜낼 수 있는 감독이 과연 KBO리그에 얼마나 존재할 것인가.

'야신' 김성근 감독의 독한 야구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쫄깃한 재미를 선사하면서 팬들의 중독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 보는 재미를 고취시키는 '마리한화'의 중독성 넘치는 야구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선발투수진의 안정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탈보트, 유먼, 배영수, 송은범 등이 제 몫을 해주지 못하면서 이글스는 의도치 않게 매 경기 접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 현재 이글스의 야구는 강한 마인드를 통해 육체의 피로까지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근성의 컬러이다. 그러나 시즌을 치르다 보면 반드시 고비가 오게 될 것이다. 결국 선발진이 안정되어야 도미노처럼 벌어지는 불펜 떼 등판이 자제될 수 있다.

'마리한화'의 중독성 넘치는 야구는 야구 보는 재미를 배가할 뿐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마인드와 행동이란 어떤 것임을 몸소 느끼게 해준다.


대중문화와 스포츠는 늙지 않습니다(不老). 대중문화와 스포츠를 맛깔나게 버무린 이야기들(句), 언제나 끄집어내도 풋풋한 추억들(不老句)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루세의 不老句 http://blog.naver.com/yhjmania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