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노동자의 21.2%는 근로계약서 없이 일한다. 근로계약서를 쓴 76.5% 중에서도 형식적으로 서명만 했고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는 응답자가 33.2%였다. <취업규칙>을 의무적으로 신고하고 직원들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10인 이상의 사업장 가운데 취업규칙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거나 없다는 응답은 50.1%로 절반이다. 1주일 평균 45.8시간 일하지만 휴일근로 보상을 못 받는다는 응답이 44.3%, 연장근로 보상을 못 받는다는 응답이 74.7%에 이르렀다. 임금은 회사의 통보로 결정되는 경우가 58.5%였다. 출판노동자들은 임금(49.5%), 경영 방향(44.1%), 근로시간과 업무강도 등 기타 근로조건(42.3%)에 만족하지 못해 회사를 떠난다. 평균 근속년수는 3.1년에 불과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의장 고태경, 이하 출판노협)는 1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권재단 사람에서 <2015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 발표회 및 집담회>를 열어 출판업계의 노동실태를 공개했다. 지난해 8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출판사에 재직 중인 출판노동자 5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설문조사는 △기본 정보 △근로 계약 △근속과 이직 △임금 △근로시간과 강도 △휴가 △직장 내 성평등 환경 및 성폭력 대응 △일·가정 양립 지원 △노동조합 △그 밖의 설문 등 총 63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판노동자 21.2%,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해

근로기준법 제17조 2항에 따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후 교부된 경우는 65.7%(329명)였다. 근로계약서를 썼으나 받지 못한 경우는 10.8%(54명)이었다. 근로계약서 없이 일한다는 응답은 21.2%(106명)이었고 모른다는 응답은 2.4%(12명)이었다. 근로계약서의 내용을 꼼꼼히 읽고 확인했다는 응답이 43.3%(166명), 형식적으로 서명만 했고 아직 제대로 못 읽었다는 응답이 33.2%(127명), 계약 당시에는 잘 못 봤으나 이후 꼼꼼히 읽었다는 응답이 23.0%(88명)이었다.

▲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 (그래프=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

박세중 출판노협 실태조사위원장은 “조사 결과에 의하면 근로계약서를 쓰고 받은 사람이 66%라는 건데 너무 좋게 나왔다. 제가 알고 있는 현실은 이렇지 않다. 믿을 수가 없다. 최근 <자음과모음> 사태 때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게 드러나지 않았나”라며 “출판노협(노조에 가입돼 있는)에 소속돼 있는 분들이 많이 참가해서 이렇게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14조에 따라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의무적으로 제정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취업규칙>의 경우, 취업규칙이 있고 자유 열람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35.3%(177명)로 가장 많았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응답이 34.1%(171명), 있지만 자유 열람이 안 된다는 응답이 14.6%(73명)였고 아예 <취업규칙>이 없는 경우도 16%(80명)에 달했다.

출판노동자들은 대부분 연봉제 회사(88.4%, 443명)에 다녔으며 호봉제라고 답한 비율은 10%(50명)에 그쳤다. 2013년 연봉을 기준으로 한 임금 분포를 보면 2000만원~3000만원 사이가 45.5%(228명)로 가장 많았고, 3000만원~4000만원 사이가 32.7%(164명), 4000만원 이상이 11%(55명), 2000만원 미만 8.8%(44명) 순이었다. 1년차 평균은 2134만원, 2년차 평균은 2170만원, 3년차 평균은 2427만원, 4년차 평균은 2648만원이었고 5~6년차에 들어서야 2917만원으로 3000만원에 근접했다. 7~9년차 평균은 3185만원, 10~14년차 평균은 3697만원, 15년 이상 근무자 평균은 4134만원으로 상승폭이 크지 않았다.

연봉 최저치를 살펴보니 1년차에서는 1000만원, 2년차에서는 1300만원, 3년차에서는 1400만원 등을 받는다는 응답이 나왔다. 월로 계산하면 1년차는 83.3만원, 2년차는 108.3만원을 받는 셈인데 이는 최저임금 116만 6220원(시급 5580만원을 월 단위로 환산한 금액)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3년차의 경우 116.6만원으로 가까스로 최저임금을 충족한다.

임금 결정 방식은 사실상 회사의 통보로 결정된다는 응답이 58.5%(293명)로 절반을 넘겼고, 회사와 개별협상한다는 응답이 25.5%(128명), 노조가 회사와 협상해 결정한다는 응답이 15.4%(77명)였다. ‘회사 통보’라는 응답이 높았던 만큼, 임금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 의사가 반영된다는 응답도 30.7%(잘 +약간 반영 합산)에 그쳤다. 반면 노동자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69.2%(별로 + 전혀 반영 안 됨 합산)로 훌쩍 높았다.

이렇다 보니 현재 임금소득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1.4%(107명)에 그쳤다. 불만족스럽다는 응답(복수응답 가능) 가운데 근로시간과 업무강도에 비해 적다, 업무 숙련도와 경력에 비해 적다는 응답이 각각 38.3%(192명)로 가장 높았다. 생활비로 쓰기 부족하다는 응답이 33.3%(167명), 타사 수준보다 낮다는 응답이 23.4%(117명)였다.

근속년수 3.1년, ‘임금’과 ‘경영 방침 불만’ 때문에 이직 원해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하로 명시해 두고 있다. 하지만 출판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45.8시간이었다. 주 40시간 초과~50시간 이하라는 응답이 53.9%(270명)으로 가장 많았다. 주 50시간 초과~60시간 이하는 11.8%(59명)였고, 주 60시간 초과 근무를 한다는 응답이 1.8%(9명)이었다.

응답자 절반인 50.3%(252명)가 주 1~2회 연장근로를 한다고 답했다. 주 3~4회는 16.4%, 주 5회 이상은 6.0%(30명)였고 연장근로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7.3%(137명)였다. 연장근로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74.7%(374명)로 압도적이었다. 휴일근로의 경우 거의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2.7%(314명)로 가장 높았으나 응답자의 28.3%(142명)는 월 1~2일 휴일근로를 했다. 휴일근로 시 보상받지 못한다는 응답은 44.3%(222명)였다.

이 같은 ‘추가 근무’가 일어나는 원인으로 응답자 44.5%(223명)가 ‘무리한 출간일정’을 꼽았다. 그 뒤로는 비효율적인 업무 시스템 19%(95명), 과다한 잡무 18.6%(93명), 사용자나 상사의 강요 9.2%(46명), 출간 관련 행사 4.4%(22명) 순이었다.

▲ 출판노동자들의 근속년수 (그래프=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

출판노동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3.1년에 그쳤다. 응답자 중 42.5%(213명)가 1년 이상 3년 미만 근속했다고 답했고 3년 이상 5년 미만 근속자는 26.3%(132명), 5년 이상 근속자는 20.2%(101명), 1년 미만 근속자는 11%(55명)였다. 자연히 이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응답이 77.1%였다. 이 중 언제든 기회가 되면 이직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응답이 22.6%(113명), 지금도 열심히 찾고 있다는 응답이 9.0%(45명)였다.

이직 고려 이유(복수응답 가능)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임금(49.5%, 248명), 경영 방향에 대한 불만(44.1%, 221명)이었다. 근로시간과 업무강도 등 기타 근로조건 42.3%(212명), 승진 및 경력관리 25.3%(127명), 인간관계 19.8%(99명), 회사 외적인 이유 19.2%(96명) 순이었다.

법적 의무사항인데도 ‘출산휴가’ 쓸 땐 ‘눈치’, 황당한 해고 통보도

주관식 응답에서는 출판노동자들이 경험한 악덕업주의 행태나 황당한 사연이 더 잘 나타나 있었다.

“현재는 육아휴직이 가능해졌지만 맨 처음 육아휴직을 받는 사람은 대표와 아주 어렵게 논의를 진행했다. 우선 대표는 남자라서인지 육아휴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계속 휴직 기간을 줄이자고 종용했다. 논의 끝에 법으로 강제하는 규정이라서 휴직 신청을 거부했을 시 대표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서야 마지못해 육아휴직을 허락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휴직 이후 복귀할 경우 일자리를 보장해 줄 수 없다며 은근히 해고 협박을 하기도 했었다”

“회사 내 평직원 중에는 기혼 여성이 아예 없다. 편집장, 실장, 과장을 제외하면 사내 여직원의 평균 연령은 20대다. 적어도 5년 이상 이러한 인적 구성이 지속된 걸로 안다. 여직원의 임신에 관련된 복지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회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차가 오래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임신하면 퇴사, 퇴사 후에는 외주자 혹은 경력 단절을 떠안고 재구직’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말로는 휴가를 보장한다면서 대체인력은 구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휴직 중 기존 동료들의 업무강도가 소화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해지는데 이로 인해 복귀하고 나면 인간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자진해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대형 교과서 출판사에서 3개월 정도 급여를 체불당했다. 이는 사원급에 해당한 것이고 과장급 이상은 6개월 정도까지 체불당하는 경우가 공공연하게 발생했다. 퇴직금 역시 밀린 급여와 함께 지급되지 않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여 겨우 받아낼 수 있었다”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빈번히 발생하던 일이다. 모든 직원 임금 체불로 사장이 회사에 출근하지도 않던 기간이 있었다. 그래서 편집부 상사가 개인 사비로 임금의 반을 먼저 지급해 준 일도 있었다”

“예전에 10명 정도 규모의 출판사에서 일할 때 사무실 이사를 하루 앞둔 날 아침에 회의가 갑자기 소집됐다.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에게 사장은 회사가 어려워 다 같이 이사하기가 어려우니 사장과 경리 1명만 이사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당장 업무를 정리하고 짐 싸서 나가라고 했다. 한 달 월급 더 주는 걸로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면서. 그날 대부분의 직원이 동시에 백수가 됐다. 사장이 힘들어서 내린 결론이라 해서 대응이고 뭐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 뒤로 4개월 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 놓고 살았다. 출판계에서 월급도 떼이고 출산휴가 중에 해고당하고 또 저렇게 떼로 해고도 당해 보았다”

“이전 회사에서 회사 매출 하락과 상사와의 불화를 이유로 하루 만에 해고를 당했다. 해고예고수당은 받았지만 당일 해고라는 게 쉽게 사라지는 상처는 아닐 수밖에”

“회사 측에서 먼저 퇴사를 요구하며 사직서를 쓰라고 종용했다. 정규직을 해고하면서 졸속으로 만든 6개월짜리 허위 계약직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서명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고, 한 달 월급을 주겠다며 회유했다. 이 두 가지 모두 그 서명과 무관히 이미 보장된 권리인데, 회사가 대단히 배려를 해 주는 듯 거짓 생색을 내며 회유와 협박의 도구로 사용했다. 당사자가 해고 통지서를 요구하자 사장이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대표는 자신의 금전적 수익이 줄어들면 여직원부터 해고했다. 표면적으로는 회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해고를 거부하면 반말과 고성을 일삼았다. 한 동료의 경우 부당해고 소송까지 진행해 승소했으나 정직 처분을 내리고 수 개월간 괴롭히기도 했다”

조사에 참여한 출판노동자들은 경력이 올라갈수록 그 수가 적어졌다. 경력 5년차 이하라고 답한 비율이 53%(265명)였다. 한 자리수를 유지하던 %는 16년차 이후로 넘어가자 급격히 하락했다. 16년차 0.4%(2명), 17년차 0.4%(2명), 18년차 0.4%(2명), 19년차 0.2%(1명), 20년차 0.2%(1명), 22년차 0.2%(1명), 23년차 0.4%(2명), 24년차 0.2%(1명)로 16~24년차 사이 노동자 비율은 총 2.6%에 그쳤다. 응답자의 94.8%(475명)가 정규직이었으며 76.6%(384명)가 여성이었다. 연령대를 살펴보면 30대가 58.3%(292명)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20대(35.3%, 177명), 40대(6.4%, 32명)가 이었다. 응답자의 83.2%(417명)가 다니는 회사에 노조가 없다고 말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동조합협의회는 1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권재단 사람에서 <출판노동 실태조사 보고서 발표회 및 집담회>를 열어 출판업계의 노동실태를 공개했다. 사진은 이날 집담회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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