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민주영(장소연 분)의 오빠를 폐인으로 만들고, 봄이의 삼촌 서철식(전석찬 분)을 다치게 만들고 좌절감에 빠뜨린 사건. 그들의 노조를 와해시켰던 한송의 대표 한정호(유준상 분)가 뜻밖에도 비서, 운전사, 찬모, 집사들의 파업에 봉착한다. 겉으로는 의연하게 '며칠 쉬세요. 아니 쭉 쉬어도 좋고'라고 하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안해하고 배은망덕하다며 분노한다.

한정호 집안 을들의 파업

22화 엔딩, 파업의 불똥은 결국 봄이에게로 떨어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한정호 부부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이종 수혈이라 정당성을 부여한 봄이를 만나 결혼을 하고 봄이의 친정 식구들을 만나면서, 한정호 일가의 황태자 한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싫었지만, 그래서 아버지의 돈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한인상. 하지만, 그의 세상에서 아버지를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지만, 아버지와 달리 사는 방법이란 게 그가 자라왔던 세상에선 고작 방탕한 소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건 싫었던 한인상이 봄이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가진 것 없지만 똑 부러진 봄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봄이의 가족을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때로는 그 가족들이 너무 순진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들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고, 봄이 삼촌 서철식과 민주영 오빠의 대산노조 사건까지 도달하게 된다.

아버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은 한인상, 그가 감지한 것은 더 이상 아버지의 방식으로는 운영되기 힘든 세상의 변화이다. 민주영이 기획하고, 서철식이 앞장서고, 거기에 윤제훈(김권 분), 유신영(백지원 분) 변호사가 밀어주는 '연대'의 힘이다. 그리고 그 모반을 한인상은 대산노조 문건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법리적 정당성'을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불똥은 뜻밖의 곳으로 튄다. 일은 자기 자식이 벌렸는데 옆의 사람 뺨을 치는 식이다. 따지고 보면 한인상 자각의 도화선을 지핀 것은 '한정호의 부도덕한 일탈 행위'인데, 권위를 상실한 남편 대신 나선 최연희(유호정 분)가 내린 결론은 집안의 군기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 옛날 선대에 입혔던 메이드 복장을 다시 입게 하고 식사 시간에 시립하는 식으로 '과거 회귀'적 훈육 분위기를 만들고, 인상 부부와 손주에게 아침 문안을 받는 형식적 권위가 최연희가 내세운 해법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져, 그 불똥이 튄 일하는 사람들이 전과 같지 않다. '고생했어. 내가 신경 좀 쓸게'라면 고개를 조아리던 이비서(서정연 분)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토를 단다. 복고에 불만을 표명하던 사람들은, 급기야 자신들이 한송 트러스트라는 인력 회사에 고용된 직원 신분임을 깨닫고 그 계약 관계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최연희가 시도한 것은 리버럴했던 주인과 일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그 예전 전근대적 주종관계로 되돌림으로써, 주종, 부자간의 권력 구조를 공고히 하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최연희의 시도는, 한씨 집안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더 이상 이 집안의 '노예'가 아니라 계약 관계이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 대리인인 한송이 정작 자신들과의 계약 과정에서 얼마나 불합리한 계약을 체결했는지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두 가지 길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 하나는 예전처럼 말 잘 듣는 을들로 돌아가 주인이 던져주는 '떡고물'을 기대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쥐꼬리만큼이라도 정당한 대가를 받는 계약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의 기로이다. 거기서 이들의 결정은 추동한 것은 '사람다움'이었다. 굴욕적인 복장과 치욕스런 행동을 요구하는 명령에서 벗어나, 정당한 인간 대 인간의 계약 관계 정립을 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22회에서 보여지듯 파업으로 귀결되었다.

떡고물대신 정당한 계약 관계!

한송의 대표와 대표 부인이 기꺼이 떡고물을 던져주겠다는 사람들의 반격, 이 해프닝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결국은 떡고물보다 ‘인간다움’의 보상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 하나요, 그 과정에서 드러난 한정호네 을들과 박선생, 그리고 인상 부부의 결합으로 상징되는 '연대'가 또 하나이다. 서철식의 보상으로 대변되는 법정 투쟁의 시작 역시 마찬가지다. 드러나는 것은 보상이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것은 정당한 권리찾기를 위한 투쟁이요,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여러 사람들의 '연대'라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소>는 밝힌다.

하지만 그런 '연대'와 '파업'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양비서(길해연 분)와 김비서(이화룡 분)의 모호한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 믿을 수 없는 연대 세력도 있고, 봄이 아버지와 언니의 불안한 태도에서 보여지듯 '갑'을 내재화한 '을의 불안이나, 내 자식의 안위를 앞세우는 친족의 우려 역시 걸림돌이다. 파업에 나섰지만 집안의 장 담글 걱정이 자꾸 솟아오르는, 어느새 갑의 가족이 되어버린 삶 역시 쉽지 않다.

그런 '을'들의 복잡한 태도와 달리, 파업을 맞닥뜨린 한정호 부부의 태도는 일관적이다. 그들에게 을은 벌레만도 못한 존재요, ‘감히’ 자신들을 불편에 빠뜨린 괘씸하고 배은망덕한 존재일 뿐이다. 말로는 그들의 투쟁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뒤돌아서 보이는 그들의 태도에 '자비'나 '이해'의 기색조차 없다.

블랙코미디로서의 불편함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블랙코미디로서 <풍문으로 들었소>가 중반을 넘어서며 보이는 것은 불안함과 불편함이다. 천진난만한 한정호 부부인가 싶더니, 일하는 사람들과 자식의 반발에 ‘벌레 보듯’ 반응하는 그 부부에게 마음을 주었던 시청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난감해진다. 아니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갑인 한정호가 너무 우습다. 그의 인간성은 얕고, 그가 벌이는 일들은 유치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 대리인이 그럴 수 있는가 싶은데, 아버지 아니 그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이어진 부를 물려받은, '갑' 중의 '갑'의 실체는 어쩌면 한정호에 가장 흡사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그들이 실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신분제처럼 얽어매어진 을들이 손발처럼 움직이며, 또 기꺼이 그들의 편에 합류한 엘리트들이 '갑' 중의 '갑' 한정호란 존재를 만들어주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드라마는 낱낱이 폭로한다. 이는 주말드라마에 나오는 폭압적인 '갑'들의 행태에서 비롯되는 불편함과는 또 다른 이질적인 불편함인 것이다.

그렇다고 '을'이 한결 같은 것도 아니다. 황태자 한인상의 모반도, 그런 한인상을 부추기는 듯한 똑똑한 봄이에게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한정호 집안에서 벌어진 파업에, 봄이의 미래를 두고 충돌하는 봄이네 집안 식구들의 마음처럼 시청자들의 마음도 이리저리 갈라진다. 바로 그런 불편함과 어정쩡함,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갑을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노리는 지점일 것이다.

이 관계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라. 지금 당신의 존재는,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냐고 말이다. 혹시나 당신은, 그간 한정호 부부를 가족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한정호네 을들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냐고 드라마는 슬며시 묻는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