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방송된 휴먼 다큐 사랑은 작년 늦은 가을 속절없이 유명을 달리한 고 신해철 씨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늦은 밤 한 시간가량 전파를 탄 신해철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쉬이 기사를 쓸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내가 아는, 혹은 내가 좋아했던 신해철이라는 제 3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넘어, 그로 인해 많은 기억들이 소환됐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빈자리

방송 말미, 한 해가 지나고 봄이 되어 신해철의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 입학식 구석에 선생님의 한 사람으로서 내 친구가 앉아있었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듯한 때꾼한 눈을 하고, 그렇게 선생님의 모습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간 내 친구. 그 친구의 남편 역시 신해철씨가 유명을 달리하던 그 무렵 세상을 달리했다. 신해철 씨가 황망하게 세상을 등지고 같은 병원에서 장례가 치러졌을 때, 공동체와 같은 작은 학교의 학부모님이라 문상을 가려했으나 차마 얼마 전 남편을 보낸 그 병원에 다시 발길을 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하던 친구였다. 그렇게 내 친구와 친구의 두 아들도, 신해철 씨의 아내와 아들, 딸 두 아이들도 작년 가을 든든한 울타리 같은 아버지를 잃었다.

<휴먼다큐 사랑- 단 하나의 약속>은 신해철 씨가 부재한 가족들의 일상을 다룬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집, 아버지가 함께하지 못하는 일상이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직은 어린 아이들은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늘 옆에서 '물고 빨고' 하던 아버지 대신 거실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아버지 영정 앞에, 늘 '아빠'한테 하던 대로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군것질 중 하나를 나눠주고, 카드를 그려주고, 아빠와 함께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고한다.

내 친구네 집도 마찬가지다. 역시나 거실에 커다란 아버지의 사진이 놓여있다. 신해철 씨 가족에 비해 아이들이 제법 큰 친구네 아이들도, 부재하는 아버지가 있는 듯이 스스럼없이 아빠가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남편의 죽음 이후 집을 옮긴 가족. 정리를 하고 왔다는 친구네 이삿짐에서 끝도 없이 이제는 없는 아버지의 물건이 나온다. 하지만 가족 중 그 누구도 이제는 '소용없는 아버지의 물건'을 버리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꾸역꾸역 이고지고 온 그 '아버지'의 짐에, 여전히 이 집에 함께하는 부재한 아버지의 온기를 느낀다.

남편의 부재

아이들의 일상이 '부재'에 대한 실감이라면, 남은 어른들의 몫은 부재한 아버지를 대신하려는 '임무'로 가득 찬다.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졸지에 한 집안 가장이 된 신해철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신해철의 아내란 의연함으로 대신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속절없이 무너져 버린 슬픔이 그녀의 누선을 버티게 하지 못한다. 늙으신 부모님들이 마음아파 하실까봐, 아이들이 골라 준 옷이 막상 태워지는 걸 보면 이별을 가슴 아파할까봐, 식구들이 안 보는 사이 조용히 홀로 남편의 옷을 태우는 그녀에게서 한 가정을 함께 이끌어갈 동반자를 잃은 사람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림프암을 앓아 결혼을 기약할 수 없었던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는 사람. 결혼 5년 만에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을 얻고 포토 갤러리를 온통 딸과의 사진으로 채워 아내의 시샘을 받던 사람. 재발한 아내의 병에 지옥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던 남편은 그 아내를 지켜주지 못하고 먼저 갔다. 그리고 이제 지켜주겠다던 남편 대신, 아내는 남편의 생전에 연예 활동이 뜸했던 가정 경제를 생각해 시작했던 일을 늘려간다.

출장이 잦아진 엄마의 부재를 버텨주는 건 남편의 부모님이다. 아들이 죽고 80평생 피웠던 담배를 끊었다는 아버님. 뇌출혈 후유증으로 거동이 편치 않는 아버님은, 그래도 당신이 건강하게 오래 버텨서 아들 대신 손주들을 돌보겠다고 하신다. 아들을 잃은 상실감보다, 홀로 방으로 올라가는 며느리가 안쓰러운 시어머님은 며느리를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다고 하신다. 그렇게 남은 어른들은 아이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서로서로 애를 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아들의 입학식 날, 특별한 예식처럼 치러지는 입학식에서 아버지가 손을 잡고 선생님께 아이를 인도하는 순서가 있다. 아빠의 손을 잡고 해맑게 등장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신해철의 작은 아이는 엄마가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아이는 다행히 의연하게 선생님의 품으로 달려갔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 자리에 함께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고모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남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애써도 함께할 수 없는 가족의 자리는 황망하다.

며칠 전은 친구 큰 아들의 생일이었다. 모처럼 치킨이나 먹자고 간 저녁, 알고 봤더니 큰 아들의 생일이란다. 친구가 가져 온 케이크의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조촐한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 그 누구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함께한 객도, 엄마와 아들들 그 모두가 느끼는 '부재'의 한 자리를 안다. 아마도 아빠가 함께했더라면, 굳이 객이 끼어야 할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함께했었더라면 케이크에 치킨이 없어도, 평상시와 같은 평범한 저녁이었더라도 가득 찼을 저녁이, 한 상 가득 음식이 있어도 어딘지 허전하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열심히 일하는 엄마, 자신의 몫을 다하고자 열심히 공부하는 큰 아들, 허전한 가족의 빈틈을 메우고자 노심초사 애쓰는 작은 아들, 그렇게 의연하게 자신의 몫을 다하며 애쓰는 가족들은 웃는 낯으로 여느 하루처럼 그날을 보낸다.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하여

작년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며 신해철이 <snl>에 나와서 유희열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오래도록 기억의 뒷머리를 챈다. 그간 독설처럼 쏟아놨던 자신들의 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유희열이 물었던가? 그에 대해 신해철은 자신이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니, 세상에 대해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융통성 있는 해석을 하게 되었다는 입장을 풀어 놓았었다. 그렇게 '아버지'로 살아갈 날을 기대했었는데, 그런 아버지 '신해철'의 빈자리가 여러모로 아쉽다.

<휴먼다큐 사랑> 신해철 편을 보다, 바로 전 주까지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벌집 쑤시듯 들쑤셔 놓은 '세월호 1주기 행사'가 떠올랐다. 신해철이 살아있다면, 냉정하고 매정한 우리 사회에 대해 그 누구보다 가슴아파하고 엄정한 비판의 날을 견지했을 텐데. 하지만 세월호 1년, 바다로 사라진 수 백병의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을 '아버지' 신해철도 이 자리에 없다. '지겹다'는 세간의 반응에 분노할 사람마저 잃었다. 사회적인 분노는 세월호 때나 신해철 때나 다르지 않았지만, 1년이 되어 반년이 되어 어느새 그런 문제들은 저마다 자기 사는 문제에 치어 과거지사가 되었다. 심지어 그를 수술했던 병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소식은 오리무중이다. 단지 그의 죽음은 그를 아꼈던 팬들의 추억으로, 그리고 가족의 몫으로 남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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