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활동가에게 물었다. 10년 후에도 인권활동을 지속하겠는가? 할 수 있는 한 지속하고 싶다는 응답이 57.9%(44명) 1위였다. 하지만 지속하고 싶지만 어떨지 모르겠다는 응답이 27.6%(21명) 바로 뒤를 이었다. 두 응답 모두 ‘지속’을 말하면서도 ‘할 수 있는 한’ 혹은 ‘어떨지 모르겠다’라며 확신하진 않았다. 인권활동가들은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입(54.5%, 12명, 복수응답)과 장기적으로 보이지 않는 활동 전망(50.0%, 11명, 복수응답)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인권재단 사람이 최근 발표한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연구>에는 ‘인권’을 위한 삶을 살면서도 정작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인권활동가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드러났다.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활동가들의 활동비 현황과 생활실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 이들의 삶의 조건을 바탕으로 인권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안을 찾아보고자 이번 연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단체와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는 단체에 소속된(41개 인권단체) 유급 활동가들 76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와, 이 중 1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면접으로 이루어졌다.

근로계약서 안 쓴다 81.6%, 4대 보험 미가입 39.5%

76명의 응답자 중 14명(18.4%)만이 근로계약서를 썼고, 나머지 62명은 일할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무려 81.6%나 되는 수치다.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단체의 근로계약서 작성률이 매우 낮다는 자명한 결과를 보여주는데, 이는 근로계약서 작성에 관한 인권단체 나름의 고민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인권재단 사람은 “근로계약서 작성은 고용관계임을 분명히 하여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하기 위해 작성하는데, 인권단체 내에서의 활동가들 간의 관계를 고용관계로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따라붙을 수 있다. 이는 인권활동가를 노동자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많은 인권단체들이 단체의 대표를 명기하고 있지만 단체의 대표가 고용주라고 보기 어렵다. 단체 내 활동가들의 관계도 고용주-노동자의 수직적 구조가 아닌 대표자 역시 순번으로 돌아가는 등 수평적인 활동가 관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근로계약서 작성률이 낮은 배경을 설명했다.

4대 보험 가입률은 사정이 조금 나았다. 57.9%인 44명이 가입돼 있었고, 39.5%인 30명이 미가입 상태였다. 인권재단 사람은 “4대 보험을 적용받으려면 고용주인 대표자와 노동자인 활동가들이 나뉘어져 있어야 하지만 인권단체들 내에서는 활동가들간의 관계를 고용주-노동자로 구분해 보고 있지 않은 경우들이 많기에 4대 보험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적용해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단체 내에서도 많은 논쟁과 토론을 거친다”며 “이런 이유로 4대 보험 가입률도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매일 10시간 일하고 월 107만원, 수당 없다 34.2%, 상여 없다 32.9%

인권활동가들은 규정된 평균 출퇴근시간보다 더 일했다. 규정 평균 출근시간은 오전 10시, 퇴근시간은 오후 6시였으나 실제 평균 출근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었고 퇴근시간은 오후 8시 15분이었다. 9시 45분, 약 10시간씩 일하는 셈이었다.

기본급은 100~125만원 이하가 35명(46.1%)으로 가장 많았고 75~100만원 이하(15명, 19.7%), 50~75만원 이하(11명, 14.5%), 125~150만원 이하(9명, 11.8%) 순이었다. 기본급이 50만원이 안 된다는 응답도 6명(7.9%)이나 됐다. 평균을 내면 97.68만원으로 약 98만원 수준이었다.

여기서 유급 상임활동가와 유급 반상임활동가(주 2~3회 풀타임 근무) 간의 기본급 차이가 존재했다. 전체 응답자 76명 중 상임활동가 65명의 기본급 평균은 106.91만원(약 107만원)이었다. 100~130만원 사이의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다는 응답이 64.6%(42명)로 가장 높았다. 반상임활동가 11명의 기본급 평균은 54.09만원(약 54만원)으로 상임활동가의 절반 정도였다. 상임/반상임활동가 평균(98만원)도, 상임활동가 평균(107만원)도 모두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 116만 6220원(시급 5580원)에 못 미쳤다.

자연히 활동비 만족도도 낮았다. 매우 불만족-불만족-보통-만족-매우 만족을 각각 1~5점으로 환산해 평균값을 낸 결과 2.72점이 나왔다.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답변은 보통(23명, 30.3%)이었고 그 뒤를 만족(19명, 25.0%), 불만족(18명, 23.7%), 매우 불만족(12명, 15.8%), 매우 만족(2명, 2.6%) 순이었다.

수당(복수응답)은 식대 보조(42명, 55.3%)를 받는다는 응답률이 가장 높았고 교통비 보조(16명, 21.1%), 연호봉(10명, 13.2%), 근속수당(8명, 10.5%), 통신비 보조(7명, 9.2%)가 그 뒤를 이었다. 어떤 수당도 받지 않는다는 응답도 34.2%(26명)나 됐다. 월 수령 평균 수당은 12.65만원(약 13만원)이었으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임활동가는 13.09만원, 반상임활동가는 2.5만원이었다.

상여금(복수응답)은 명절 상여를 받는다는 응답이 60.5%(46명)로 가장 높았고 휴가 상여(15명, 19.7%), 기타 상여(10명, 13.2%) 순이었다. 상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2.9%(25명)이었다. 연간 총 상여금은 평균 36.38만원으로 월로 환산했을 때 약 3만원 수준이었다.

인권단체에서 갖추고 있는 복리후생제도(복수응답) 중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제도는 연월차 휴가제도(57명, 75.0%)였다. 안식년제도는 68.4%(52명), 활동가 교육지원은 56.6%(43명), 병가는 56.6%(43명)이었고 정기건강검진(11명, 14.5%), 기타(12명, 15.8%), 장학제도(1명, 1.3%)가 그 뒤를 이었다. 복리후생제도를 전혀 갖추지 않았다는 응답은 11.8%(9명)이었다.

10년 후에도 인권활동가로 살 수 있을까

인권활동가들의 노동 환경은 녹록치 않았다. 기본급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고 수당, 상여, 복리후생제도 모든 면에서 취약했다. 빚이 있다는 응답자는 33명으로 43.4%에 달했고, 생활비 보조를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26명(34.2%)이나 됐다. 수입보전을 위해 다른 일을 해 봤다는 응답자는 48명으로 63.2%를 기록했다.

심층면접에서도 인권활동가들은 ‘품위 있는 삶과는 거리가 먼 경제적 어려움’과 ‘지나친 노동시간’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경북지역 인권일반단체에서 일하는 D 상임활동가는 인권교육 센터 들에서 행사 때문에 참여 여부를 묻는다고 전화가 왔는데 카드빚 독촉전화인 줄 알고 받지 않았다고 털어놨고, 서울 반전평화단체에서 일하는 A 반상임활동가는 “부양가족이 없고 월세를 낼 필요가 없으니” 자신의 상황은 나은 거라며 “60만원으로 어떻게 살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B 상임활동가는 “오전 10시 출근해서 19시까지여도 제일 애매한 게 저희는 19시 이후에 회의들이 많아지는 것”이라며 “퇴근 시간이 정확하지 않다. (19시 이후의 회의는) 야근이라고 볼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서울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G 상임활동가는 “근로기준법에 있는 건 지키자고 하지만 실제로는 월차를 거의 못 쓴다. 하루라도 아프면 안 된다”며 “긴 활동시간에 제대로 된 휴식시간을 갖지 못한 채, 활동가들의 활동경력이 많아지면 활동가들의 에너지는 쌓이기보다 소진되고 만다”고 털어놨다.

이렇다 보니 인권활동가들은 10년 후에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한 지속하고 싶다는 응답이 57.9%(44명)로 1위였다. 지속하고 싶지만 어떨지 모르겠다는 응답이 27.6%(21명), 반드시 지속할 것이라는 응답이 9.2%(7명)였다. 전혀 지속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자는 1명(1.3%)에, 무응답자는 3명(3.9%)였다.

이 중 지속하고 싶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고 한 응답자에게 이유(복수응답)를 묻자 생활 유지가 어려운 수입 때문이라는 응답이 54.5%(12명)로 압도적이었다. 장기적으로 활동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11명, 50.05), 노동시간이 길고 개인시간이 너무 부족하다(6명, 27.3%),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일 자체가 너무 어렵다(5명, 22.7%)는 응답이 이어졌다. 기타 응답자(9명, 40.9%)는 ‘나이에 비해 활동할 수 있는 건강상의 조건이 될지 모르겠다’, ‘노후 준비가 불가능한 구조다’,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인권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일도 필요하다’ 등의 답변을 했다.

인권활동가로서의 활동을 지속하고 싶은 이유(복수응답, 51명)를 살펴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라는 응답이 74.5%(38명)로 가장 높았다. 일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 및 자부심(32명, 62.7%), 주변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16명, 31.4%), 장기적인 비전과 전망이 있기 때문(11명, 21.6%), 다른 일자리가 없어서(2명, 3.9%) 순이었다. 기타 응답자 3명은 ‘경제적 이유’, ‘삶이기 때문’, ‘조직적으로 함께 느끼는 책임을 활동으로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권활동가들은 적정 활동비를 165.92만원(약 166만원)이라고 답했다. 인권활동가들은 또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생활비 보전을 위한 지원(32명, 42.1%), 안식년 제도와 같은 유급재충전의 시간 확보를 위한 지원(26명, 34.2%), 개인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보조(26명, 34.2%), 주거비 부담 지원(22명, 28.9%), 재충전 및 휴가기간의 경비지원(16명, 21.1%)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활동가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은 인권운동의 지속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인권운동의 사회적 의미 공유 및 확산을 위한 방안 모색 △인권활동가 지원을 위한 사회적 기금 마련 △향상을 위한 교육기회 마련 및 네트워크 강화 △공적지원 서비스 마련을 위한 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해결방법을 개인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과 대안이 필요한 만큼 사회구성원 모두가 인권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자로, 후원자로 참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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