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부가 다가온다. 복싱 매치를 앞두고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심쿵'(심장이 쿵쿵뛴다)해본 적이 실로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직접 경기가 시작되는 장면을 보게 되면 전율이 돋을 기세이다.

5월 3일 낮 12시(한국시간)에 펼쳐질 메이웨더(38세, 미국)와 파퀴아오(37세, 필리핀)의 세기의 맞대결 개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5체급을 석권하고 통산 47전 47승 무패(26KO)를 자랑하는 메이웨더와 통산 64전 57승(38KO) 2무 5패에 무려 8체급을 석권한 파퀴아오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세계 복싱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위대한 복서들이다.

대한민국에서 복싱의 인기는 7080시절의 이야기로 박제되어 있다. 그나마 UFC가 인기를 모으면서 격투기 스포츠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세기의 대결 대전료 합계가 무려 2,698억 원에 다다르는 만큼, 전 세계적으로 복싱의 인기는 UFC와 레벨 자체가 다르다. 필자의 유년기 시절 복싱은 최고 인기 스포츠 중 하나였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홍수환, 박찬희, 김태식, 김환진, 김철호 등이 세계 챔피언에 오르면서 한국 복싱 인기의 씨앗을 뿌렸다면, 그 씨앗은 80년대 중후반 장정구와 유명우에 이르러서 화려하게 만개하였다.

KBS에서는 장정구의 세계 타이틀 매치를, MBC에서는 유명우의 세계 타이틀 매치를 전담 중계 해줬는데, 이들의 경기가 중계되는 날이면 주말 시내가 한산할 정도였다. 장정구와 유명우 외에도 박종팔, 김지원 (영화감독 김지운의 친형) 등이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면서 복싱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복싱의 인기는 급격하게 사그라졌다. 헝그리 스포츠의 이미지와 늘 위험을 달고 살았던 복싱이란 스포츠의 특성으로 인해 점점 복싱에 입문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이제 대한민국 남자 복싱의 경우 세계 챔피언이 전무한 실정이다. 그러나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세기의 대결이 대한민국 복싱에 새로운 전환점의 불씨를 조금이나마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국내든 국외든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면 그만큼 그 스포츠에 대한 인지도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세기의 대결을 앞두고 그동안 필자의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던, 인상 깊었던 복싱 매치들을 떠올려 본다.

1.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타이틀매치 4차 방어전 (장정구 vs. 도카시키 가즈오, 1984년 8월 18일)

▲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가 1984년 8월 18일 도까시끼를 라이트훅으로 1라운드에 첫 다운을 뺏고 있다. << 연합뉴스 DB >>
3차 방어전을 고전 끝에 어렵게 이겨낸 장정구의 4차 방어전 맞상대는 당시 한국 킬러로 군림했던 일본의 도카시키 가즈오였다. 당시 국내 챔피언들은 5차 방어전을 넘기는 것이 상당히 드문 상황이어서 장정구가 과연 4차 방어전을 이겨낼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서는 분위기였다. 트레이너 교체, 무리한 체중감량 (무려 14kg) 등 장정구를 둘러싼 상황은 홈에서 방어전이 펼쳐진다는 것만 제외하곤 아무 것도 우호적인 것이 없었다.

우려 속에 시작한 경기는 초반부터 생각지도 못한 난타전으로 전개되었다. 도전자 도카시키는 1라운드부터 저돌적으로 장정구를 링으로 몰아붙이고 소나기 펀치를 퍼부었다. 그러나 장정구는 굶주린 매처럼 예리하게 웅크리고 상대를 응시하다 강력한 라이트 훅으로 도카시키를 다운시킨다. 역대 국내 선수의 복싱 경기 중 코너에 몰려 있다가 강력한 한 방으로 상대를 제압시킨 장면은 아마도 이 경기가 유일할 듯싶다. 상당히 인상적인 반격으로 다운을 뺏어낸 장정구는 시종일관 난타전으로 일관하다가 마침내 9회 상대를 링위에 드러눕히면서 모든 이들의 우려를 뒤엎고 통쾌한 4차 방어에 성공한다.

장정구의 모든 테크닉과 저돌성이 한꺼번에 발휘되면서 한국 선수 킬러 도카시키의 재기를 봉쇄한 통쾌한 한판 승부였다.

2. WBC IBF 미들급 세계 타이틀 매치 (마빈 해글러 vs 슈거레이 레너드, 1987년 4월 6일)

대머리에 강렬한 인상으로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이며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았던 마빈 해글러는 당시 미들급 세계 최강자였다. 듀란, 헌즈 등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해글러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쓸려갔다. 이 무시무시한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는 당시 은퇴 후 3년 만에 링 복귀를 선언한 슈거레이 레너드였다. 빠른 스텝을 이용한 전형적인 아웃복싱을 구사하고 경기의 흐름을 지배하는 영리함이 돋보이는 레너드. 하지만 3년 만에 글러브를 다시 낀 그가 당시 정점에 올라서 있던 해글러를 과연 얼마나 견뎌낼지는 미지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내심 레너드가 이기기를 응원했다. 무지막지한 해글러는 그다지 정감 가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레너드는 알리 이후 가장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스타 중에 스타였다. 영화로 비유하면 '록키4'에서 한동안 글러브를 놓았던 록키가 자신의 친구의 복수를 위해 무시무시한 복서 드라고와 다시 한 판 승부를 펼치는 설정과 다를 바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레너드는 특유의 빠른 스텝과 빠른 주먹 영리한 경기운영으로 교묘하게 해글러를 교란시켰다. 해글러는 우직하게 레너드를 쫓아 다녔지만 별 실속을 챙기지 못하였다. 한 때 레너드를 코너로 몰아 붙였지만 레너드는 로베르토 듀란이나 토마스 헌즈처럼 해글러에게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코너에 몰리자 특유의 속사포 펀치로 도리어 해글러를 밀어 붙였다. 엄청난 운동량을 바탕으로 레너드는 12라운드 내내 치고 빠지는 영리한 복싱을 구사했다. 힘겨운 승부였다. 하지만 철벽과도 같은 해글러를 상대로 12라운드를 버틴 자체가 기적이었다. 배심원들도 사람인지라 고삐 풀린 야수를 상대로 영리하게 위기를 넘겨낸 레너드의 기지에 더 많은 점수를 매겨 주었다.

레너드는 3년 만에 인생 최고의 경기를 펼치면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였다. 아웃복싱의 매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경기로 기억에 남는다.

3. 헤비급 통합 타이틀 매치 (마이크 타이슨 vs 제임스 더글라스, 1990년 2월 11일)

▲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AP=연합뉴스)(자료사진)
'핵펀치' 마이크 타이슨은 당대 최고의 헤비급 복서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한때 헤비급을 호령했던 홈즈, 스핑크스 같은 강자들도 타이슨 앞에서 고목나무처럼 고꾸라졌다. 그의 핵펀치를 견뎌내는 것은 100도가 넘는 끓는 물에 몸을 담그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당시 개장한 지 3년차가 되었던 일본 도쿄돔 특설링에서 펼쳐진 마이크 타이슨과 제임스 더글라스의 헤비급 통합 타이틀 매치는 그 여느 승부처럼 초반에 싱겁게 마감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도전자 더글라스는 의외로(?) 오래 버텼다. 5라운드가 지나도록 승부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타이슨도 좀처럼 특유의 핵펀치를 가동하지 못하였다. 뻔한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TV를 켜놓고 딴짓을 할 정도로 중계방송에 집중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경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8회 타이슨의 어퍼컷에 더글라스가 나가떨어지면서 승부는 당연히 마감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카운트를 세는 심판이 상당히 뜸 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8을 세는데 거의 20초가 넘게 걸리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카운트를 다 세자마자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렸다. 타이슨은 더 이상 경기를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8라운드를 마감하였다.

한 번 다운된 더글라스는 오히려 독이 오른 듯 9회부터 타이슨을 맹렬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어느덧 타이슨의 눈가가 퉁퉁 부어오르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결국 10회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중계를 보면서 "어?" "어?!" "어!!!" 하는 외마디 탄성을 연달아 외치게 되었다. 천하의 타이슨이 다운을 당한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캔버스에 쓰러진 타이슨이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경기는 마감되었다. 도쿄돔의 대이변이 펼쳐졌다. 개장 3년차를 맞이한 도쿄돔은 확실하게 존재감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Greatest upset in the boxing history" 당시 중계를 담당하던 캐스터의 멘트처럼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변이 도쿄돔 한복판에서 펼쳐졌다.

37경기 연속 무패가도를 달리던 타이슨은 이 경기 이후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후 그의 인생행보는 파란만장의 연속으로 점철되었다. 새로 챔피언에 등극한 더글라스도 예상치 못한 승리에 너무 도취되었는지 자기관리에 실패하고 1차 방어전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더 이상 재기에 나서지 못한다.

타이슨의 전성시대가 1980년에서 박제되는 순간이었다. 예상보다 너무 일찍 그의 전성시대는 마감되었다.

4. WBC 플라이급 세계 타이틀 매치 (키티카셈 vs 장정구, 1991년 5월 18일)

1988년 15차 방어전을 마지막으로 타이틀을 자진반납한 장정구는 가정 문제만 아니었다면 20차 방어전까지도 충분히 치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1989년, 1990년 두 차례 세계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이미 전성기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장정구는 한 체급 올려 플라이급에 도전하였다. 1991년 5월 18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챔피언 키티카셈(태국)을 불러들인 장정구는 이전보다 훨씬 절실함을 담아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5회 두 차례, 11회 한 차례 다운을 뺏으면서 장정구는 착실하게 점수를 쌓아갔다. 12회만 버티면 다시 챔피언 벨트를 거머쥘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12회 종료 50초를 남기고 장정구는 예상치 못한 펀치에 그만 링 위에 쓰러진다. 한 번 다운 당한 후 장정구의 체력은 사실상 고갈되었다. 기세가 오른 키티카셈은 장정구에게 소나기 연타를 퍼붓고 결국 심판이 경기를 종료시키고 만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50초만 버텼으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었던 장정구는 너무도 아쉬운 나머지 회한의 눈물을 링 위에 쏟는다. 그 장면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장정구의 인생 마지막 승부는 그렇게 마감되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복싱 경기들을 정리해보니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이 확실히 복싱의 전성기였음을 느끼게 된다. 오랜만에 스포츠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세기의 대결은 과연 어떻게 펼쳐지게 될까.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모두 상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덤비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탐색전이 오래 지속된다면 메이웨더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파퀴아오는 어떻게 해서든 판정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중반 이후에 과감한 승부를 걸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두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저돌적인 파이터로 명성을 떨쳤던 박종팔의 말처럼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선수가 패하게 될 것이다. 결국 누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잘 쏠 것이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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