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개고기를 먹어봤다’,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1500달러짜리 하트 샤프너 막스 양복을 입으며, 사이즈 11짜리 검은색 신사화 4개를 가지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M.A.S.H’, ‘스파이더맨 코난 책 모아’, ‘애플 맥 컴퓨터를 쓴다’….

10일자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보도한 ‘잘 알려지지 않은 오바마의 50가지’(4면)와 ‘오바마의 진실 50’(A 18면)이라는 기사 내용의 일부분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보도를 정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 동아일보 11월10일자 A18면
지금도 쏟아지고 있는 미 대선 관련 보도에서 간간히 섞여 나오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생활(?) 보도는 매체들의 중복된 사실보도 속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오늘자 두 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오바마의 사생활(?) 50가지 묶음은 도가 지나치다. 연예인들의 사소한 취향(그마저 언론 플레이용일 때가 많지만)까지 흥분한 목소리로 대서특필하는‘연예저널리즘’의 꼬리표를 붙여주기에 충분한 듯 싶다. 주된 관심이 오로지 ‘흥미’로만 모아지는 파파라치의 모습도 엿보인다.

두 신문이 각사의 자매지인 연예·스포츠지를 통해 보도해도 될 만한 기사를 꽤나 편집에 신경써가면서 비중있게 보도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팔릴 만한 정보라면 가리지 않고 상품화하는 상업언론의 속성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대형 사건·사고를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경우, 그 목적은 고상한 독자 알권리가 아니라 단순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웬만한 규모가 아니면 사건·사고라 해도 대부분 단신으로 처리된다. 사건·사고가 아니더라도 이색적인 이야기라면 곧잘 기사화되기도 한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는 유명한 저널리즘 경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기사는 대서특필되지 않는다. ‘해외토픽’이라는 문패를 달고 보도되는 가십기사를 떠올려보면 쉽다.

그래서, 비록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새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이라지만, 이런 가십성 기사가 신문 지면의 머릿기사로 오르는 것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돌발적’ 편집 의도를 추정해볼 수 있는 힌트가 같은 날 중앙일보 지면에 들어 있다.

중앙일보는 정부여당의 ‘오바마 줄대기’ 세태를 비판하는 예영준 기자의 칼럼을 2면에 실었다.

예 기자는 “이제와서 너도나도 ‘오바마 줄대기’에 뛰어드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볼썽사납다. 갑작스레 한국엔 (미국) 민주당 전문가도 많아졌다. 오바마 참모인 아무개와 오래전부터 가깝다는 주장은 점잖은 편이다.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오바마 인맥임을 자처한다면 코미디”라고 꼬집은 뒤 “상대방은 정책 결정의 합리성을 중시하는 미국이다. 그 잣대는 자국의 국익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권인수팀과 국무장과 등 중요 포스트의 지명자와 보좌진 등 공식채널을 통하는 게 정도이자 지름길이다”라며 미국과의 외교채널이 정부 대 정부로써 당당히 가동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 11월10일자 2면

예 기자의 주장에 공감이 갈수록 같은 신문에 실린 ‘잘 알려지지 않은 오바마의 50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문제의 기사는 ‘오바마 줄대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부여당 관계자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아가, 이들 신문 스스로 오바마에 대한 ‘팬덤’ 이미지를 형성하고 싶은 건 아닌지, 그리하여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자신은 여전히 미국과 우호적이라고 과시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한-미 FTA를 둘러싼 극명한 이견을 국회에서조차 모아내지 못하는 정부여당이 과연 예 기자의 주문대로 미국과 정정당당한 외교를 펼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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