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유리한 정국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4·29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성적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 유리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리얼미터가 4월 22일 MBN의뢰로 4·29 재보궐선거 4개 지역 19세 이상 유권자를 대상으로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서울시 관악구 을, 인천 서구·강화군 을, 광주 서구 을 선거구에서 각 후보들이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펼치고 있고 경기 성남 중원구의 경우 새누리당 후보가 우세한 상황인 것으로 조사됐다.

▲ 2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가 경기도 광주시 성령교회 앞에서 교인들에게 인사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인천시 강화군 강화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강화 50년생 체육대회'에서 시민을 향해 손을 흔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을의 경우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33.9%, 무소속 정동영 후보가 29.8%,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28.1%의 지지율을 얻었고, 인천 서구 강화군 을의 경우 새누리당 안상수 후보가 45.8%, 새정치민주연합 신동근 후보가 41.7%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광주 서구 을의 경우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37.9%, 새정치민주연합 조영택 후보가 36.2%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경기 성남 중원구의 경우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가 46.0%, 새정치민주연합 정환석 후보가 35.0%의 지지를 얻고 있다. (최종 응답자 서울 관악구 을 521명, 경기 성남 중원구 503명, 인천 서구·강화군 을 502명, 광주 서구 을 501명. 유선 등재·비등재 임의걸기(RDD) 자동응답 방식. 응답률 서울 관악구 을 2.2%, 경기 성남 중원구 1.9%, 인천 서구·강화군 을 3.4%, 광주 서구 을 3.4%. 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서 ±4.3%p~4.4%p. 자세한 결과 및 문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이러한 결과를 종합하면,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이 4개 선거구에서 ‘전패’를 기록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단순한 수치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의 추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당 소속 후보들이 상승세에 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으나 초미의 관심사인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서 더 이상 야권에 유리한 소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은 향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후보들이 이러한 상승세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애초에 4개 선거구 모두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 쉬운 승부를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바닥 여론을 점검해보면 이러한 판세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의 ‘물타기’가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 보수세력은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라는 돌발변수에 대해 참여정부 시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았다는 점을 집중 거론하며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또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중에 비춰진 이완구 국무총리의 3천만원 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독대해 직접 거취를 언급하는 나름대로의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데 성공했다. 핵심지지층이 새누리당을 지지할 명분을 잃지 않도록 하는데 사실상 성공한 것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이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선전해내지 못했고 오히려 새누리당의 특별사면 함정에 걸려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까지 했다. 문재인 대표가 집권세력의 ‘물타기’ 시도를 비판하고 특검 도입을 언급하는 등 나름대로의 승부수를 던지기는 했으나 정국을 뒤집을 수 있는 반전의 계기까지는 마련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보수언론은 “법무부 권한”, “기억나지 않는다”는 등의 문재인 대표 발언 하나 하나를 꼬투리 잡고 성완종 전 회장의 특별사면 의혹에 대한 집요한 군불때기로 일관하면서 이를 종편을 통해 확대 재생산하여 보수층의 여론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데 성공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한 호텔에서 열린 K팝과 함께하는 한·브라질 패션쇼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남은 기간 동안 일어날 일들을 전망해볼 때 여전히 긍정적인 상황이 별로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 부담스러운 부분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한 이후 29일 전에 이 문제에 대한 그 ‘값비싼’ 사과라도 한 마디 하게 되면 이 사건으로 인한 보수세력의 혼란은 사실상 정리되고 이후 상황 역시 정권에 의해 ‘관리’되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검찰의 경남기업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간 상태에서 언제 어떤 내용이 언론에 흘려질지 모른다는 점도 불안요소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4·29 재보궐선거 2곳 이상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문재인 대표 체제는 2016년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패배하는 경우 문재인 대표 체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2016년 총선의 공천권을 둘러싸고 계파 간 내분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 ‘유리한 상황에서도 승리하지 못했으면서 작은 이득을 두고 또다시 자기들끼리의 경쟁에 몰두한다’는 이미지가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궐선거에 패배하는 경우 이후 문재인 대표가 어떤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가 관건이 된다. 당 내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내 쟁점을 대선으로 옮겨가는 것을 고려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공천에 대해서는 초계파적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유력 대권후보들 간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의 당 내 계파 갈등이 대권주자들 간의 흥미로운 경쟁구도로 소화될 수 있다.

▲ 4·29재보선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6일 서울 관악구 삼성산 천주교성지 앞에서 유권자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서울 관악구 을에 출마 중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을 필두로 한 제3세력의 움직임에 대한 전략 역시 수립할 필요도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이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견제 행보 외에 어떤 진보적 비전을 보여줬는지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으나 정동영 전 장관이 사실상 주도한 ‘국민모임’을 필두로 정치세력 간의 재편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7년 이전에 국민모임과 정의당을 중심축으로 한 제3세력이 형성되는 경우 이들이 대통령 선거에 대응하게 되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바다. 문제는 큰 변화가 없는 한 2012년 대선에서 확인된 것처럼 2017년 대선 역시 ‘초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3세력이 내세우는 대선후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취하려면 그 이전에 정치적 전망에 대한 어떤 공유나 신뢰가 형성돼있지 않으면 안 된다.

2012년 총선에서처럼 2016년에 ‘야권연대’를 통한 정치연합을 시도하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 그런 전술을 ‘미봉적’ 차원에서 구사하는 것은 보수언론의 악선동과 ‘통합진보당’을 연상하는 대중들의 ‘오해’에 시달리게 될 뿐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을 세우고 이에 따른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것이다. 유력 대권주자이기도 한 문재인 대표가 조기 등판하는 바람에 이 모든 과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됐다는 부분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지도력을 보여준다면 문재인 대표의 야권 전체의 대권주자로서 위상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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