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10주년 특집의 시작은 여느 기념일 방송과 비슷했다. 오디오 꺼 버리고 싶은 멤버, 조명 주고 싶지 않은 멤버, 김태호 PD가 가장 아끼는 멤버 등 10년 세월 동안 말할 수 없었던(?) 스태프들의 진심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후 멤버들이 각자 3위로 뽑힐 만한 앙케이트를 만들고, 실패할 경우 항공권을 포함한 모든 경비를 자비 부담해 해외→국내 음식 배달, 국내→해외 음식 배달을 해야 하는 에피소드가 펼쳐졌다.

▲ 25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무한도전> 10주년을 맞아 때 빼고 광 내 수트를 차려입은 다섯 멤버들은 으리으리한 기념 세트장을 뒤로 한 채 본인이 3위 안에 들기를 바라며 앙케이트 결과 공개를 기다렸다. 시청자들의 단결된 뜻 덕이었을까.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 모두 3위만 아슬아슬하게 비껴가 다 같이 해외 배달을 할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무한도전> 10주년 특집의 진짜 시작은 그 다음이었다. 시청자들이 뽑은 최악, 최고의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멤버들이 가장 고생했던 무인도 특집(2007년 6월 23일, 30일 방송)이 1위에 선정된 것이다. ‘설마 10주년 방송에서 정장까지 차려입은 채로 섬에 던져지겠어?’ 하는 멤버들의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그리 멀지 않은 노들섬에서 촬영하나 했더니 밴, 헬기, 배까지 육해공 교통수간을 모두 거치고 나서야 다다랐다. <2015 무인도 특집>이 진행될 인천 옹진군에 위치한 상공경도에.

3D의 종착역, 생고생의 끝판왕 ‘무인도’로 가다

벌써 8년 전인 2007년 6월에 방송된 <무인도 특집>은 <무한도전> 초반 에피소드였던 기차와 달리기 겨루기, 청도 소싸움 등에서 나타났던 ‘무모함’을 극대화한 편이었다. 시청자들이 가장 다시 보고 싶은 특집 1위에 포함됐을 때, 제작진 스스로 ‘3D의 종착역, 생고생의 끝판왕’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특집이었다.

그런데 10년 동안 내공이 쌓인 멤버들도 꼼짝 못할 만큼 난이도가 더 올라갔다. ‘10주년 방송에서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소소하게 한다며!’라는 불만이 폭주하는 가운데에서도, 제작진은 멤버 5명과 촬영을 위한 카메라감독 6명만 남겨둔 채 ‘제작진 도움 없이 살아남기’라는 미션을 내린다.

▲ '파라다이스가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김태호 PD의 사탕발림에 분노하는 정형돈

바닷가에는 굴 천지고, 뒷산에는 칡 천지라는 ‘맞는 말’인데도 왠지 얄미운 김태호 PD의 안내는 간명했다. “여러분들 자존심이 걸린 문제고요. 시청자 분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특집이 바로 <무인도 특집>이었으니까 여러분들이 생존하시면 되겠습니다” 정 힘들면 흰 돌로 S.O.S.를 치라는 김태호 PD는 초고추장을 선물한 채 유유히 멀어져갔다.

극한상황 속에서 멤버들은 짜증과 괴로움을 표출하며 의도치 않은 웃음을 만들어냈다. 눈에 보이는 먹을 것이라고는 세트장에 매달려 있는 코코넛만 보이는 상황. ‘야 양아치야!’라는 불만이 절로 나왔지만 도리가 없었다. 파티장에는 무척 잘 어울리지만 소라와 굴을 캐기 위해 바위 사이를 훌쩍 건너고 칡을 구하러 산을 오를 때에는 성가시기만 한 정장을 입고서 생존을 위해 움직였다.

안전모, 목장갑만 보아도 ‘오, 멋있는데?’ 라며 안도하고 굴과 바늘로 낚시대를 만들어 무모한 낚시에 도전하는가 하면, 동물의 똥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물체를 발견했을 때 잘하면 고기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화색을 띄는 것이 무도 멤버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흰 돌 운반보다는 소라 찾기에 여념이 없었던 정준하는 시청자들의 야유와 원성을 샀던 ‘김치전 사태’를 다시 한 번 보여줬고, 뜻하지 않게 산, 들, 바다를 헤매고 다니는 채집 과정은 하마터면 묻힐 뻔했던 <생태계 생생생>이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고기 한 마리나 잡힐까 싶은 박명수의 어설픈 낚시 도전은 tvN <삼시세끼>를 패러디한 <명수세끼>로 거듭났다. 말 그대로 박명수가 무인도에서 세 끼를 해결해 먹는 내용이다.

늘 중심에서 <무한도전>을 이끌어 가는 유재석까지 “왜 이런 데에 양복을 입고 오라고 하냐!”고 짜증을 낼 만큼 막연한 미션 제시에 무도 멤버들은 하소연과 짜증으로 괴로움을 표현했지만, 미안하게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무도 멤버들이 “편집 아름답게 하지 마라!”, “아름다운 음악 깔지 마!”, “(편집 이상하게 하면) 우리가 또 즐기는 것처럼 나갈 수도 있어!”라고 경계하는 장면에선 웃음은 물론 10년 동안 쌓인 내공까지 느낄 수 있었다.

정준하의 수트를 희생해서까지 낑낑대며 흰 돌로 S.O.S.를 쳤던 멤버들은 혹시나 초코바와 라면이라도 얻어낼까 벼르고 있었지만, 김태호 PD는 멤버들이 가장 최후의 식량으로 생각했던 코코넛을 지목하며 “농장 주인 허락을 받았으니 코코넛을 먹어도 됩니다”라고 응수했다.

다음주 예고에서 코코넛이라도 따 먹기 위해 애쓰고, 동굴 탐험도 서슴지 않는 멤버들은 <무한도전>의 초창기 정신(?)인 무한이기주의를 아낌없이 보여주며 더욱 더 흥미로운 <무인도 특집> 2편을 기대하게 했다. 시청자들이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 하필 멤버들이 가장 고생했던 편 중 하나인 <무인도 특집>을 다시 보고 싶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 초창기를 추억함과 동시에,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거기에 ‘빅재미 큰웃음’을 선사했던 <무한도전>의 초심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던 것은 아닐까.

▲ 유재석이 <무한도전> 제작진들에게 '작위적(!) 편집'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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