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방영한 이희명 작가의 <옥탑방 왕세자>는 300년 전 조선에서 현재로 온 왕세자의 세자빈 살인사건과 진정한 사랑 찾기가 극의 주된 이야기였다. 300년이란 시공간을 둔 과거의 왕세자와 현재의 박하가 나누는 사랑은 시대를 건너뛴 해프닝으로 시작하여, 결국은 '기억'을 매개로 한 절절하면서도 숭고한 사랑으로 마무리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이런 기막힌 사랑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중반부를 점철한 이른바 '세나의 난'이라 질타받은 진짜 세자빈의 악행은 순순한 사랑 이야기에 옥에 티가 되어 <옥탑방 왕세자>의 완성도에 누를 끼쳤다.

2013년 방영된 <야왕>은 최고 시청률 25%를 육박하며 인기를 누렸지만 그 인기의 원인은 '막장'이라 해도 손색없을, 밑도 끝도 없는 주다해의 악행이었다. 박인권의 <대물: 야왕전>을 모토로 시청자들은 그녀의 악행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어설픈 기업물에 개연성이 희박한 악행과 복수의 연속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래서 2015년 이희명 작가가 <냄새를 보는 소녀>라는 웹툰을 원작으로 로코와 스릴러를 융합한 복합장르로 돌아온다고 하였을 때, 복합장르였던 <옥탑방 왕세자>의 미완성도와 역시나 만화를 원작으로 하였으나 '막장'으로 치달았던 <야왕>을 기억하던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이제 7회를 맞이한 <냄새를 보는 소녀>는 '로코'와 '스릴러'라는 양 극단의 장르를 기가 막히게 융합해내는 데 성공한다. 초반 로코와 스릴러 사이에서 갈지자를 걷는가 싶더니, 7회에 이르러 '천의무봉'이란 사자성어처럼 어디가 로코이고 어디가 스릴러인지 구분이 안갈 만큼, 한 시간 남짓의 방영 시간 동안 빠져들게 만들어 버린다.

로코와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

5회 초 레스토랑 셰프 살인사건 수사과정에서 냄새를 쫓다 범인에게 쫓기는 오초림(신세경 분) 앞에 느닷없이 최무각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오초림의 힌트 하나로 대번에 대마초를 키우는 꽃집과 셰프를 죽이는 범인을 찾아내는 사건 때만 해도 '입수사'가 아닌가 싶게 최무각에 의해 마무리되는 사건이 어설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사건의 흐름이 6회 백숙집 비밀의 방에서 되풀이되면서, 이제 이것은 어설픔이 아니라 <냄새를 보는 소녀>만의 독특한 클리셰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마치 일본만화 명탐정 코난에서 사건의 정황이 펼쳐지고 그 모든 것이 코난의 정리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매회 해프닝처럼 제시되는 사건은 만화처럼 가볍게 최무각(박유천 분)의 정리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다. 그 사건을 통해 만담도 하고 사건도 해결하기로 약속한 최무각-오초림 커플의 활약이 '주'가 되는 것이다. 사실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능력'에 기반한 사건 해결이기에 과학수사로서 애초 어패가 있는 설정을 가볍게 풀어가며, 오히려 그 과정에서 두 연인의 썸인듯 썸이 아닌 '로코'적 관계에 방점을 찍는 것이 <냄새를 보는 소녀>만의 장치이다.

사건 수사에 함께한 오초림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느끼자 그녀를 사건에서 배제시키려는 최무각의 무심한 듯한 한 마디는 그 어떤 연인의 보살핌보다 은근하고, 그런 최무각의 걱정에 ‘최순경님이 나를 지켜주면 되잖아요’라는 오초림의 대답은 직설적인 사랑 고백보다도 짜릿하다.

이제 7회에 이르러 최무각은 그렇게 지켜달라는 그녀에게, 내가 옆에서 위험하지 않게 해주겠다며 화답한다. 남자친구는 아니라고 뻔뻔하게 고개를 젓지만, 함께 밥을 먹고 현장 검증한답시고 '뽀뽀'까지 해버리는 이 커플의 알콩달콩 썸은 '수사'를 타고 기가 막히게 진행된다,

1회적 사건을 넘어선 복선

하지만 이 무감각-초감각 커플의 사건 수사가 그저 연애의 진행을 위한 보조 수단만은 아니다. 6회 포상으로 간 닭죽집에서 '라면' 냄새를 매개로 밝혀낸 '비밀의 방' 사건은, 이후 세프 권재희의 비밀의 서재가 보이면서 그저 1회성 사건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7회, 초림의 친구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되어 최무각-오초림 커플이 수사하게 된 '인천 차이나타운 알리바이 사건'의 한편에서, 천백경을 죽인 권재희의 치밀한 알리바이 조작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뜬금없이 등장한 자잘한 사건들이 의미심장한 커다란 '바코드 연쇄 살인'의 복선으로 등장하며, 이후 그 사건들이 권재희의 사이코패스적 악행을 밝히는 데 결정적 단서로 자리매김할 것을 드라마는 예고한다.

사건만이 아니다. 극중 등장하는 각종 상황들조차 의미심장한 복선으로 자리매김한다. 동료 형사와 헬스장 트레이너가 공모한 살인 사건에서 시작하여, 최무각이 거리에서 산 인형으로 이어진 1+1의 설정, 그리고 자신에게 준 인형에서 최무각이 동생에게 전하는 목소리를 듣고 되물리는 과정에서 등장한, '어느 게 진짜고 어느 게 덤'이냐는 질문은 결국 같은 최은설이지만 두 사람이게 되는 오초림과 최무각의 동생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나인 듯 보이지만 결국은 둘인, 애초 최무각에게는 자신의 동생만 진짜였고 오초림은 덤처럼 등장하지만,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본말이 전도될 수밖에 없는 사건의 본질을 드라마는 빈번하게 암시한다. 그 어떤 우스운 상황도 그저 지나칠 수 없는 묘미를 가진다.

리메이크를 넘어선 창작

<냄새를 보는 소녀>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취 작가의 동명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원작으로 한다. 이 웹툰이 드라마화 된다고 했을 때 반기면서도 가장 많은 우려를 표명했던 이들은 바로 웹툰의 애독자들이었다. 심지어 이 웹툰이 '로코'화 된다고 했을 때 반기를 들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된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고스란히 느끼기는 힘들다. 웹툰이 로코화된다고 했을 때 애독자들이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원작이 가지는 음습한 분위기에 기인한다. 냄새를 보는 여주인공은 부모님이 죽은 기억은 물론, 그 과정에서 괴물처럼 변해버린 자신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 중 '냄새를 보는 능력'만을 가지고 기억을 잃은 오초림으로 돌아온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한결 가벼워졌다. 원작은 원작만의 재미를 가지고 있지만, 드라마로 하기엔 어두운 분위기를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일소해 버렸다.

소녀만이 아니다. 지금 극의 중심을 이끌어 가고 있는 '바코드 살인 사건'의 범인 권재희는 웹툰의 '콜렉터'편과 유사하다. 만화 속 콜렉터는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받은 학대를 타인의 삶을 기록하고 그를 죽이는 범죄를 통해 보상받고자 한다. 드라마 속 권재희는 그 기록을 '책'으로 대신한다. 만화 속 콜렉터는 어두운 지하도 구석에 아지트를 마련했지만, 잘 나가는 셰프 권재희는 그의 집에 비밀의 방을 만들었다. 만화 속 한없이 어두웠던 공간을 화려한 셰프의 레스토랑과 집으로 드라마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또한 웹툰에서 미처 그려지지 않은 듯했던 남자 주인공의 설정은, 거기에 동생을 바코드 연쇄살인으로 잃고 감각조차 잃은 사연을 통해 사건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웹툰에서 양념처럼 등장한 잃어버린 강아지 찾기 등의 사건이, 권재희 셰프의 애완견 뭉치를 오초림이 찾아주는 스토리로 역시나 적절하게 쓰인다. 분명 원작의 어느 곳에선가 만날 수 있는 설정들이 마치 풀어헤친 퍼즐이 새로운 그림을 완성하듯,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로 재탄생된다.

이렇게 이희명 작가는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이희명 표 로코와 스릴러의 완벽한 융합물 <냄새를 보는 소녀>로 재탄생시켰다. 함께 만담도 하고 수사도 하는 최무각-오초림 커플은 매회 사건에 뛰어들면서 야곰야곰 사랑도 키워가고, 거대한 바코드 연쇄 살인의 실체에 다가가는 중이다. 물론 7회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된 연쇄 살인범 권재희의 악행이 이희명 작가의 전작처럼 완성도에 폐가 될까 우려는 되지만, 7회 정도의 절묘한 배합이라며 이번에는 이희명 작가를 믿어보고 싶어진다. 부디 마지막까지 정진하여, 로코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는 어려운 시도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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