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분들께 호소한다. 어떻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나. 기자라면 적어도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 경찰이 고의적으로 던진 미끼를 받아 수배자들이 화투판을 벌인 것처럼 기사를 썼다. 현장에 있는 기자분들이 바로잡아 달라!"

6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열린 촛불수배자 강제연행 규탄 및 석방 촉구 기자회견에서는 "검거 당시 수배자들은 호텔에서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다"고 보도한 일부 언론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앞서 경찰은 조계사를 벗어나 경찰의 추적을 받던 박원석·한용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비롯한 촛불 수배자 5명을 이날 새벽 1시50분경 강원도 동해의 한 호텔에서 검거해 종로경찰서로 이송했다.

<연합뉴스>는 오전 9시2분 '촛불집회 수배자들 검거 당시 '화투판' 기사를 송고했으며, 이 기사는 다른 언론사에 의해 다시 보도됐다. 언론들의 '화투판' 보도가 나간 뒤, 인터넷에서는 이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촛불 수배자 가족들이 6일 오후1시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선영
기자회견에서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인터넷에는 이미 수배자들이 화투판을 벌인 것으로 퍼져 있다"며 "정말 호소한다. 기자분들이 동료 기자분들을 꾸짖어 달라"고 촉구했다.

안 팀장은 "<연합뉴스>가 처음 '화투판' 기사를 올린 뒤 조중동이 바로 기사를 사이트에 올렸다"며 "연합뉴스와 연합뉴스 기자는 석고대죄하고, 기자에게 허위 사실을 준 경찰도 같이 석고대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에 연행된 한용진 상황실장의 부인 황정주씨도 "어떻게 '화투판'이라는 되지 않는 이야기로 촛불의 정당성과 정의로움을 부정할 수 있느냐"며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황씨는 "수배자 가족들은 (화투판 보도와 관련한) 명예훼손에 대응할 것"이라며 현장에 있는 기자들을 향해 "사실을 보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황씨는 감정이 격해진 듯 마이크를 잡고 잠시 울먹이기도 했으며, 주변에 있는 다른 수배자 가족들도 눈물을 훔쳤다.

▲ 한용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부인인 황정주씨가 일부 언론의 '화투판' 보도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송선영
촛불 수배자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는 "당시 수배자들은 남자 5명이 쉽게 눈에 띌 것을 우려해 술을 사서 들어갔고, 일부러 호텔 직원에게 화투가 있는지 물어본 것"이라며 "호텔 직원은 화투가 없다고 해놓고 30분 뒤 화투를 갖다 줬고, 3분 뒤 경찰이 현장을 덮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광우병 대책회의는 이날 '화투 조작 경찰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변호사 접견을 통해 확인한 결과 '촛불 수배자 5명이 연행 당시 화투를 쳤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른 악의적 오보임이 밝혀졌다"고 성토했다.

대책회의는 "수배자들이 묵고 있는 방에 화투를 갖다 놓은 것도 경찰이며, 연행 당시 화투를 발견한 것도 경찰"이라며 "이렇게 조작한 화투 사건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제보한 것도 경찰"이라고 비난했다.

연합 '화투판' 보도 이후, 여러 언론 고스란히 '화투판' 보도

연합뉴스의 '화투판' 기사가 나간 뒤 국민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파이낸셜뉴스, 프런티어 타임스, 헤럴드경제, 문화일보 등을 비롯한 많은 언론이 이를 그대로 보도하거나 인용했으며, 대부분 언론이 제목에서 '화투판'을 언급했다. 연합뉴스를 통한 '화투판' 보도는 실시간으로 다른 언론에 의해 재생산되면서 '기정 사실'처럼 보도 되었으며, 조중동을 포함한 일부 언론은 인터넷 사이트에 연합 기사를 게재했다.

연합뉴스는 이후, 낮 12시1분 <박원석 등 촛불집회 수배자 5명 검거(종합)>을 통해 민변 소속 변호사의 주장을 전하며 "검거 당시 화투판을 벌였다는 사실을 적극 부인했다"고만 보도했을 뿐, 당시 화투판에 대한 상황은 언급하지 않았다.

연합뉴스는 이날 기자회견의 주된 내용이 연합뉴스를 포함한 일부 언론의 '화투판' 보도에 대한 규탄이었음에도 <대책회의 "연행 촛불수배자 즉각 석방해야">(오후 2시43분 포털 송고)에서 이를 배재한 채 수배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만을 보도했다. 광우병 대책회의를 비롯한 수배자 가족들이 화투판을 벌이지 않았다고 기자회견장에서 수없이 언급했음에도 이를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날 경찰은 연합뉴스의 화투판 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 확인해 보겠다"고만 말하며, 경찰 관계자가 연합뉴스 기자에게 '화투판' 정황을 알려주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피했다.

▲ 연합뉴스의 '화투판' 보도를 사이트에 게재한 조중동. (왼쪽부터 조선, 중앙, 동아)
조선일보 "좌파 매체 인터뷰, 촛불 수배자 발목 잡아"

경찰이 촛불 수배자들을 검거하게 된 과정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앞서 박원석 상황실장은 지난 3일 서울 신촌 근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경찰은 박 실장의 모습이 담긴 인터뷰 사진에 나온 배경을 통해 인터뷰 장소에 박 실장이 소지품을 놓고 간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후 추적을 통해 결국 검거했다.

경찰이 촛불 수배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것은 오마이뉴스 인터뷰가 아닌, 인터뷰 장소에 박 상활실장이 소지품을 놓고 나온 뒤 확인전화를 건 통화내역을 추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들은 오마이뉴스의 인터뷰가 검거에 단서를 제공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이날 ''언론 인터뷰'가 촛불수배자 검거 단서'에서 "경찰 수사는 한 인터넷 언론이 잠적한 박원석 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을 만나면서부터 급박히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이날 '좌파 매체 인터뷰가 촛불 수배자 발목잡았다'를 통해 "경찰이 이들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것은 수배자 가운데 한 명인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실장이 지난 4일 좌파 온라인 매체인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가 결정적 실마리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와는 달리 <노컷뉴스>는 이날 '신출귀몰 잠적 촛불수배자들 신발 한 켤레 때문에…'를 통해 "경찰이 촛불 수배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 실장의 '신발' 이 있다"며 "박 실장은 잠적 이후 서울 소재 한 카페에서 한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를 했고, 문제는 이 자리에 자신의 신발을 놓고 나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마이뉴스의 인터뷰가 촛불 수배자 검거에 중요한 단서가 됐다는 연합뉴스를 포함한 일부 언론들의 보도는, 다른 언론들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어 파문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관계자 "직접 기자실로 찾아가 물어보라"

한편, <미디어스>는 해당 기사를 쓴 연합뉴스 기자와 통화를 하기 위해 종로경찰서 기자실로 전화 했으나 자리에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 연합뉴스 사회부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관계자는 "경찰이 알려준 대로 썼을 것"이라며 "지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당 기사를 쓴 기자와 직접 통화하기는 어렵다. 경찰서 기자실로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면서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 (경찰서와) 가깝지 않느냐. 직접 종로경찰서 기자실로 연합 기자를 찾아가 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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