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내 말 좀 들어봐? 이거 그린라이트지?"
"뭔데, 뭔데?
"아이스크림 집에 갔는데, 여직원이 두 배나 많이 퍼주는 거야"
"응, 그거 원 플러스 원 행사하는 거야“
개구리 개그극단 대표 왕자방(정찬우 분) 앞에서 오초림과 최무각이 벌인 만담 개그의 한 토막이다. 진지한 두 사람과 달리, 극단 대표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그런 식이라면 다가올 품평회에서 꼴찌를 하고 극단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런 대표의 으름장에도 시종일관 진지한 오초림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개그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런가 하면 오초림의 만담 파트너로 본의 아니게 무대에 오른 최무각은 1회에 이어 2회에도 게걸스런 먹방을 선보인다. 무감각한 그가 커피 전문점에서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는 정도는 약과다. 1회 편의점 강도를 만나기 위해 불침번을 서며 그가 먹은 것은 새우탕 사발면 서너 개에 커피 두 잔, 핫바 등이다. 2회에 그의 먹방은 업그레이드된다. 짜장면 서너 그릇, 볶음밥에 이어 짬뽕 두 그릇, 마지막 입가심으로 탕수육을 더한다.
개그에 빠진 오초림
1회, 최은설이었던 시절 오초림은 그녀의 눈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른바 이 드라마의 중심사건인 '바코드 살인사건 해녀 부부 살해 사례'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하지만 범인으로부터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의식을 되찾은 그녀에겐 최은설이었던 때의 기억이 없다. 대신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집요하게 개그를 추구한다.
극단 대표는 오히려 최무각에게는 '바보 같지만 연기의 재능이 있다'라는 코멘트를 덧붙였지만 정작 선배들의 심부름조차 마다않고 열심인 오초림에게는 별 코멘트가 없다. 시청자가 보기에도, 애지중지하는 개그 아이디어 노트는 물론 오초림에겐 별 재능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에게 개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며 절박하게 말한다. 그것도, 2015년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장소팔 고춘자'의 개그를.
극 중 오초림의 개그는 오초림과 최무각을 이어주는 메신저로 등장한다. 파트너를 잃은 오초림이 자신의 만담 파트너를 얻기 위해 최무각의 수사 파트너를 자원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레 그들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든 '바코드 살인 사건' 수사에 첫 발을 들인다.
전의를 불태우는 무감각남 최무각의 먹방
오초림의 개그가 그녀의 전사와 삐끗하게 맞물린다면, 최무각은 2회에 이른 지금, 수사를 한답시고 다섯 날 밤을 새다 정작 범인 앞에서 잠이 들어버리고, 무식하게 많은 음식을 먹어대는 무감각한 설정에 대한 이렇다 할 설명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유일한 가족, 그래서 동생을 거침없이 '내 새끼'라 부르던 동생 바보, 그런 동생이 자기 눈앞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절규했던 그 장면만으로도 그의 무감각이 이해가 된다.
결국 그의 이런 외로움, 혹은 그의 다른 표현인 범인에 대한 전의는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 과정에서, 그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랑으로 풀릴 수밖에 없다.
결국 오초림의 개그에 대한 집착이나 최무각의 채울 수 없는 허기는 현재 그들이 처한 '트라우마'의 다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기억을 하건 못하건, 그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고로 한순간에 잃은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그 트라우마의 표현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고 정반대의 정서에 빠져들거나, 아예 감각 자체를 망각해 버린다.
최무각의 무감각과 오초림의 초감각은 정반대의 양상으로 드러나지만, 결국 그들의 비정상적인 감각은 그들의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육친을 잃은 슬픔이 그들을 '초감각'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건 후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 시절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혹은 놓여난 듯하지만 결국은 거기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그저 선남선녀의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 같은 <냄새를 보는 소녀>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은 가족을 상실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놓여날 수 없는 두 남녀의 치유이다.
심지어 2회 초반은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설정을 설명하기 위해 30분에 걸쳐 남녀 주인공의 설왕설래로 드라마를 채워갔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온전히 두 배우의 합만으로 드라마의 매력을 만들어가는 <냄새를 보는 소녀>.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과거의 상처를 정반대의 양상으로 그려내는 박유천, 신세경이 그려내는 무감각남과 초감각녀이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