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모임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국민모임은 29일 영등포구 문래동 한 폐공장에서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국민모임은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신학철 화백, 최규식 전 의원 등을 공동대표로 하는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해 공식적인 창당에 이르는 첫 번째 단계에 시동을 걸었다. 김세균 교수는 대표 취임사를 통해 “다른 진보세력과 힘을 합쳐 4·29 재보선에서 중요한 성과를 올리고 진보 세력을 결집시켜 9월 이전까지 창당을 완료하겠다”며 “내년 총선에서 기필코 20석 이상을 얻어 야권 교체를 실현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2017년 정권교체를 실행하겠다”고 주장했다.

국민모임의 창당발기인대회에는 진보정당인 정의당과 노동당을 비롯해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노동·정치·연대’도 참석해 연대 의사를 내비쳤다. 이로써 그간 진보진영의 주요 관심사가 돼왔던 진보정당 간의 재편 논의가 새롭게 힘을 얻게 됐다. 다만 이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4·29 재보궐선거 출마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어 논란이 예고된다.

▲ 2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폐공장에서 열린 국민모임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임종인 전 의원(오른쪽 두 번째 부터), 김세균 상임공동대표, 정동영 전 의원 등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세균 교수 등 국민모임 주요 인사들은 그간 정동영 전 장관에게 서울 관악구을 선거구 출마를 강권해왔다. 국민모임이 사실상 조직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장담하는 대로 9월 이전 창당을 완료하고 힘있게 정치행보를 해나가려면 4·29 재보궐선거에서의 성과가 반드시 필요하다. 애초 이들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영입을 통해 재보궐선거에서 ‘위력’을 보여주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천정배 전 장관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바람에 그러한 구상의 실현은 어렵게 됐다. 때문에 정동영 전 장관이라도 출마를 해서 존재감을 보여야 이후 진보진영의 통합과 이를 동력으로 한 2016년 총선대응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정동영 전 장관은 기존의 불출마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은 국민모임 결성 제안 당시 재보궐선거 불출마 의사를 밝힌데 이어 김세균 교수 등의 설득이 이어지던 지난 26일에도 그간의 의사를 철회할 뜻이 없음을 거듭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여전히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일단 출마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전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할 수 없을 거라는 지적이다.

문제는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가 국민모임에 의석 하나를 추가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석을 추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모임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 재편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좌측에 존재하는 세력을 하나로 묶는 것을 핵심 전망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 역시 이를 이룰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해당 지역구에는 정의당 이동영 후보와 노동당 나경채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이후 상황에 따라서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가 오히려 진보진영의 개편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동영 전 장관이 출마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어찌됐건 결단을 한다면 나름대로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시선은 다소 어정쩡한 느낌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9일 당 대표 취임 5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표는 “50일간 마늘과 쑥만 먹었다”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려면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 문재인 대표의 이와 같은 발언은 2012년 대선 패배를 반성적으로 평가하며 변화와 혁신의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변화와 혁신의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다시 돌아보면 문제가 좀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문재인 대표는 최근 유능한 경제정당과 안보정당을 표방하며 이어가고 있는 행보에 ‘우클릭’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수권정당이 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능력을 진보 보수의 문제로 볼 수 없다”면서 앞으로도 유사한 기조의 행보를 이어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제1야당이 단지 우클릭을 했다거나 또는 좌클릭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가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 대표는 유능한 경제정당과 안보정당을 내세워 통합진보당 사태를 통해 제기되는 ‘종북책임론’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새누리당이 4·29 재보궐선거를 통해 이러한 프레임을 전면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보면 불가피하며 타당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2012년 대선의 패인으로 ‘좌클릭’이 꼽히는 상황에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중도적 행보를 끊김없이 이어나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행보가 자칫 잘못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왼쪽에서 정계개편을 시도하고 있는 국민모임 등에 명분을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4·29 재보궐선거에 정동영 전 장관이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당이 다시 불길을 살리려 하는데 다른 불씨를 만들겠다고 ‘호호’ 바람을 불어대는 것을 국민들께서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국민모임을 통한 유의미한 정계개편의 가능성은 없다는 현실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정배 전 장관을 영입하지 못하고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에 명운을 걸고 있는 현재 국민모임의 스탠스를 보면 이런 지적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9일 국회 의원동산 사랑재에서 가진 취임 50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이 진보부터 중도까지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왼쪽 또는 오른쪽 자리는 항상 빈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진보를 포괄하기 위해 좌클릭을 하면 새누리당이 중도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정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렇다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중도를 포괄하기 위해 (상대적인) 우클릭으로 전환하면 이번에는 좌측에서 ‘중도를 취해서는 체제를 개혁할 수 없다’는 명분을 들고 나오는 세력이 탄생하는 걸 막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전면적인 선거연합이나 야권연대와 같은 ‘선거구 나눠먹기’ 등의 공학으로 귀결되지 않더라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중도를 취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진보정치와의 정치협상을 도모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한 전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요 인사들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해산 이후 이러한 점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상황 때문에 진보정치와의 역할분담과 협력은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진보정치는 비록 야당을 교체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는 있으나 2002년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약화돼있고, 바로 그런 이유로 전술적으로 유연해져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50일째 고수하고 있는 ‘중도화’에 더불어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정치행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민모임의 창당작업은 바로 그 필요성을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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