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재즈음악은 들을 때마다 늘 감미롭기만 하다. 주말 저녁, 분위기 좋은 재즈 바에서 칵테일 또는 와인 한 잔과 함께 뮤지션들이 직접 연주하는 감미로운 재즈음악을 들으면 그 순간만큼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런 감미로운 소리의 이면에는 그 누구도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쉽게 인식하기 힘들다. 영화 '위플래쉬'는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스크린을 수놓으며 귀의 감각을 달콤하게 만들지만, 화면은 시종일관 심장 박동 비트를 끝도 없이 증대시키고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등장하는 군인들이 느끼는 듯한 처절함이 채색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어릴 적부터 즐겨 다룬 드럼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꿈을 안고 음악 명문 셰이퍼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타고난 열정과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는 앤드류는 교내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플래쳐 교수(J.K 시몬스)에게 우연히 눈에 띄어 밴드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플래쳐 교수에게 발탁된 그 순간 앤드류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달콤한 상상에 빠져들게 되고, 때마침 자신이 눈여겨보던 니콜(멜리사 베노이스트)에게 데이트 승낙을 받는 겹경사를 얻는다. 하지만 달콤한 상상의 유효기간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전쟁터 같은 생존경쟁의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제자들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플래쳐 교수의 탁월한 지도력의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폭언과 학대가 도사리고 있었다. 단 한 박자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Not My Tempo" (내가 원하는 템포가 아니야)라는 한 마디로 단호하게 끊고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견디기 힘든 모욕과 폭언으로 자신의 눈높이에 올라설 때까지 단원들을 몰아붙인다.

밴드 합류 첫날 플래쳐 교수를 통해 상처를 받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고 모든 일과를 드럼 연주에 쏟아 부은 앤드류는 심지어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된 니콜에게마저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하며 더욱 독하게 자신을 다그친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실수로 인해 도리어 메인 드러머의 기회를 얻게 되고, 자신의 처절한 노력을 통해 마침내 원하는 꿈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된다. 하지만 플래쳐 교수는 앤드류의 승승장구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다른 템포의 곡을 더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또 다른 경쟁자 라이언(오스틴 스토웰)을 밴드로 불러들여 앤드류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든다.

앤드류의 정상을 향한 집념은 점점 광기에 가까워지고 급기야는 중요한 컨테스트를 앞두고 초조함과 불안이 폭발하면서 결국 플래쳐 교수와 정면 출동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플래쳐 교수가 아끼는 제자의 죽음 뒤에 감춰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중심을 이끄는 두 명의 인물 앤드류와 플래쳐의 관계는 강렬한 드럼의 비트 박동수처럼 치열한 긴장을 조성한다. 폭력과 폭언을 동반하여 자신의 눈높이로 제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려는 독한 리더십의 플래쳐에 맞서 오로지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손바닥이 찢어질 정도로 치열하게 드럼 연주에 몰두하는 앤드류의 집념과 처절함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이 영화가 주는 매력은 일반적인 영화에서 보던 중심인물들 간의 갈등 이후의 아름다운 봉합과정이라는 보편적인 공식을 거부하고 끝까지 허를 찌르는 반전을 거듭하는 부분이다. 특히 플래쳐의 변화무쌍한 대처를 보다 보면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이다.

결국 자신의 꿈을 접는 듯이 보였던 앤드류가 아버지와의 포옹 이후 연약하게 물러남을 거부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가 플래쳐 교수 밑에서 혹독하게 연마했던 재즈곡 'Caravan'의 심장이 터질 듯한 강렬한 비트의 드럼 연주를 진행하는 장면은 극한의 전율을 선사한다. 자신을 몰아붙이고 끝까지 매장하려 했던 플래쳐 교수에 대해 강렬한 연주로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앤드류. 플래쳐 교수도 결국 앤드류의 신들린 연주에 감화를 받고 결국 두 사람은 처절함과 강렬함이 묻어나는 드럼 비트 속에서 화해의 눈빛을 교환한다. 가히 소름 돋을 만한 화해 씬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자문하게 된다. 삶이란 게 결코 쉬운 것은 아니구나, 그리고 리더십의 올바른 해답에 대해서도 자문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를 꼽는다면, 플래쳐 교수가 이 세상의 영어 단어 중 가장 쓸모없는 두 단어를 꼽는다면 바로 'Good Job'이라고 앤드류에게 얘기하는 장면이다. 사기를 복돋운다는 명목으로 매사 'Good Job'을 연발하면 더 이상 전설적인 재즈 연주자는 탄생할 수 없고 혼이 빠진 '스타벅스 재즈 모음집' 같은 수준 이하의 재즈 음악들만 쏟아지게 된다는 그의 대사를 들으면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곳, 내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도 과연 내가 얼마나 나의 발전을 위해 독하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리더십의 방향은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플래쳐 교수를 연기한 JK 시몬스는 이 영화만 보고 있으면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콧수염을 달고 나온 완강한 고집불통 편집장의 모습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동작 하나하나에 플래쳐 교수란 사람의 색채를 불어넣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최고의 일등 공신이다. 그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긴 오스카의 선택은 이견을 달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들린 드럼 연주 연기로 영화에 혼을 불어넣는 차세대 신성 마일즈 텔러의 연기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지난해 많은 인기를 모았던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을 로맨스 판타지라면 영화 '위플래쉬'는 '미생'의 음악영화 버전에 비유할 수 있다. 근래 들어 모처럼 숨어 있는 맛집을 찾은 듯한 희열과 뿌듯함이 느껴지는 영화 '위플래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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