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사회의 민주적 구성과 운영을 위한 필수적 공기(公器)로서, 그 의미와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방송은 국가정치를 견제하고, 정치권력을 감시하며, 그럼으로써 민중의 주권에 복무한다. 방송은 정권의 이해관계, 정치적 계산으로부터 반드시 독립해 존재해야 한다. 정권에 종속되고, 정치적 관계에 매몰된 방송은 결코 민중의 이익을 제대로 챙길 수 없다. 방송은 기업의 논리, 상업주의적 판단으로부터 일정하게 떨어져 있어야 한다. 자본에 영합하고, 경쟁의 논리를 추중하는 방송은 결코 사회적 이익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이렇게 국가와 자본이라는 이중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공익적 공간과 공공적 영역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방송이다. 언론자유/자유언론을 매개하면서, 차이와 다양성의 문화적 가치를 표현하면서, 민주적 사회 실현의 막중한 책임을 지는 게 바로 공영방송이다. 우리 언론학자/미디어문화연구자들은 방송계가 처한 현재의 심각한 상황을 더 이상 침묵으로 방관할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지난 2006년, <공영방송 위기 해결을 위한 언론학자/문화연구자 30인 선언> 선언문 중 일부이다. 오늘 당장 같은 선언을 한들 무리가 없을 내용이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그만큼 지난 10년 간 언론의 상황은, 언론 운동은, 언론의 현실은 제자리 걸음은 고사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있는 형국일지도 모른다.

2006년 저 기자회견을 주도했던 3명이 있다. 서강대 언론정보학과 원용진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규찬 교수, 공공미디어연구소 양문석 이사장이 선언자 30인에 속해있었다. 원용진 교수는 얼마 전 문화연대 대표를 맡았고, 전규찬 교수는 2011년 12월부터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양문석 이사장은 방통위원을 거쳐 현재 공공미디어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십 여 년의 세월, 변화가 있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언론운동장’에 머물고 있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운동장’의 침체는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고민을 들을 수 있을까. 13일 오전, 언론개혁시민연대에 문화연대 원용진 대표와 언론연대 전규찬 대표, 공공미디어연구소 양문석 이사장이 모였다. 좌담에 앞서 전 대표는 “같은 편끼리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곤혹스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열정적이었다. 언론운동영역의 ‘후진적 이분법적 사고’와 ‘내부분열’이 운동의 위기를 불렀다는 평가와 함께 공개적인 자리에서 제대로 된 평가와 언론운동을 방향을 점검하고, ‘언론운동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잠시 한국을 떠나 있었던 원용진 문화연대 대표는 좌담 말미 “언론운동,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건 우정의 무대”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언론운동, 2007년 괴물 만나며 정체…의회․제도에 역량 집중했기 때문”

<미디어스> 김완 편집장(이하 김완) : 세 분이 동시에 한 기자회견에 등장한 것은 2006년 <공영방송 위기 해결을 위한 언론학자/문화연구자 30인 선언>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주요 운동진영의 포지션을 맡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언론운동 자체가 부진하다. ‘운동이 있기는 하냐’는 평가도 많다. 왜 이렇게 왔고, 전망과 과제는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이나 정책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보자.

▲ 공공미디어연구소 양문석 이사장ⓒ미디어스

공공미디어연구소 양문석 이사장(이하 양문석) : 김기종 사건을 보며 대중 운동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많다. 역사적으로 보면, 김구 선생의 테러리즘에 바탕 한 독립운동이 당시 대중운동의 걸림돌이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운동노선’을 둘러싼 오래된 갈등이다. 80년 군부시절에는 테러에 맞서는 폭력투쟁에 이외에는방법론 자체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시대적 조건에 맞는 운동의 방법론으로서의 폭력은 합당한 투쟁으로 받아 들여졌다. 김기종은 거기 머물러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87년 이후 본격적인 대중운동이 시작되면서 비폭력 시민운동이 나왔던 것이고 그것이 모든 운동방식의 상식이 됐다. 평화투쟁의 대중운동방법으로 ‘촛물문화집회’가 나왔다. 그리론 이후 새로운 대중운동의 형태들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언론운동에서 봤을 때, 2009년 <미디어법> 반대투쟁을 하면서 국회 진격부터, ‘꽃씨 나눠주기’까지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들이 동원됐었다. 그 후, 모든 게 정체돼 있다. 대중운동을 끌 수 있는 이슈도 현실적으로 없고 대중운동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문화연대 원용진 대표(이하 원용진) : 87년 이후부터 2007년까지의 한 20년 동안 운동과 사람들이 움직여온 걸 보면, 노태우 정권이 있긴 했었지만 그래도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권력에 있었다. 그 속에서 서로 간 딜이 가능한 부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2007년부터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개인적으론 ‘괴물을 만났다’는 생각도 든다. 무슨 수를 써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운동을 형성해 온 숭고적인 아우라가 사라졌단 생각도 든다. 괴물 효과다. 예컨대, 문화연대의 활동은 크게 △정책·제도권 개입, △문화운동, △대안적 삶의 구축 3가지 축으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언론운동은 상당부분 첫 번째 꼭짓점에 기대를 해왔다. 기존 언론을 어떻게 바꾸고 언론인들과 함께 가는 것에 역량을 많이 두고 활동해왔는데 ‘괴물’이 나타나자 확 난감해진 것이다. 다른 영역보다 그래서 언론운동이 더욱 그 괴물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 언론연대 전규찬 대표ⓒ미디어스

언론연대 전규찬 대표(이하 전규찬) : 양문석 이사장의 생각에 일부 동의한다. 군부독재가 폭력을 불법적으로 동원해 통치하는 상황에서 폭력투쟁은 정당한 도구였다. 이후, 민주화로 제도적 안정화로 인해 우리는 자연스레로 평화적 저항의 수단을 취하게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역으로 우파 진영에서 오히려 ‘폭력은 정당하지 않느냐’라고 되받아 치기도 한다. 신은미 콘서트를 보라. 김기종 사건이 벌어졌을 때 “테러야”라고 이야기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에 따른 반향’의 공포와 스스로의 주춤함이었다.

양문석 : 진보진영에서 ‘폭력’을 넘어 ‘과도한 테러’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우습다. 김기종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뒤엉켜 있다. <동아일보> 김순덕은 칼럼에서 ‘미국은 왜 분별없는 폭력이라고 정의했을까’라고 오히려 되묻는다. 테러는 보복이라는 수단을 부르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미국의 고뇌에 이입한다. 그게 한국의 언론이다. 87년 체제 이후, 한국의 진보운동은 사실상 물 스며들 듯 의회주의 운동으로 전환되어 왔다. 김대중 정권 이후, 집중적으로 국회를 통해 제도화 시키는 투쟁이 사실상 시민운동의 핵심이 됐다. 야박하게 말하자면, 의회의 보조적 세력으로서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이 자리 잡은게 현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모든 문제는 다 국회로 모이고 관련 법안이 ‘통과 되느냐’, ‘통과 안 되느냐’가 운동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의회운동’은 지난 2002년 민주노동당 중심의 진보운동에서 제도화 가능성을 타진할 때도 있었으나, 실패한 이후 다시 급격히 새정치민주연합에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의 보수화와 맞물리며 그나마 힘 있는 보수야당에 붙게 된 엇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질 싸움 계속해왔다”

김완 : 대화를 좁혀보자. 운동방법론과 시기적인 변화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언론운동으로 좁히면 이중의 수세에 몰려 있다. 의제의 본래적 의미보다는 ‘어떻게 해야 국회나 공론장에서 받아들여질까’를 생각하는 경우가 잦다. 힘의 열위에서 현실적인 수용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사고이다. 예컨대, 언론운동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2000년 초 ‘안티조선’ 운동이 잘못된 것은 거부하며 싸운다는 운동의 본래적 의미에 충실했다면, 지금 그런 주장은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기종 사건은 단적이지만, 전규찬 대표도 이야기했듯 ‘조중동이 어떻게 나올까’에 대한 우려부터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인식 자체가 굉장히 후퇴된 현실이다. 한때, 한국 사회가 대단한 언론민주주의의 장을 가진 것처럼 평가되기도 했는데, 우리의 사고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언론 지형이 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나.

전규찬 : 우리 세 사람이 모여서 ‘언론운동’을 논한다면 ‘답도 뻔할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그러나 이 논의를 해야 할 책임도 분명 있다. 한국사회에서 운동이란 무엇인지, 좌파란 무엇인지에 대해 사실 우리끼리도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독재정권 시절 ‘거점을 확보해서 이긴다’는 것이 승리의 레토릭이었다면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펼쳐진 싸움에서는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구조와 체제, 동력과 싸워야 했다. ‘이긴다’는 고사하고 이길수 없고 계속해서 수세일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지난 10년은 그래서 내내 ‘그나마 있던 것을 지키는 싸움’이었다. 처음부터 지는 게임이었다는 얘기다. 지난 10년의 운동은 국가를 장치로 인정하고, 대의제도라는 형식을 존중하고 참여하면서 정치라는 툴로서 공공의 영역을 시민과 국가 사이에 만들어내는 합작의 작업 과정이었다. 언론운동이 그랬다. 비판하면서도 완전히 빠지지 못하고 참여하면서 그걸 계기로 공공섹터를 지키려는 정책/제도적 중심적 운동이었다. 그걸 두고 외부에선 언론운동은 계량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수세적이었지만 의미 있는 부분도 있었고 이 부분에 대한 재평가는 필요하다.

▲ 문화연대 원용진 대표ⓒ미디어스

원용진 : 운동의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의회 중심의 정책으로 싸워나가는 한편, 사회 공공성 확대시키기 위한 흐름도 같이 존재했다. 하나의 흐름은 아니었다. 물론, 더 강한 쪽이 어디냐고 봤을 때는 의회 쪽이 더 빠르고 강하게 움직였다. 민주화된 정권이라고 이야기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도 의회나 제도는 공공성 테제를 덜 다뤘다. 그렇게 제도와 의회주의의 손을 잡고 싸워온 것이 2007년 괴물과 만나면서 끊기게 되고 난항을 겪으면서 공공성 투쟁과 의회도 약화되며 현재로서는 출구를 못 찾고 힘들어 하고 있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언론운동 내에 두 가지 트랙의 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지금 언론 공공성 운동은 어디쯤 와 있는가 말이다.

전규찬 : 두 개가 중요한 축인데 나눠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공공성은 사방으로부터 달려드는 자본의 공세로부터 일정 영역을 사수해야 하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제도라는 것이었다. 필수적으로 법을 통해 막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공공의 영역을 탈취해 자본에 건네려는 정부의 전략과 자본이 정부를 무력화시키는 전략과 움직임이 동시에 상당히 기민했다. 우리가 공공성 확대를 위해 불가피하게 대의제도에 참여를 기획했다면 그쪽은 우리가 들어갈 대의제라고 하는 것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기민함을 보인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과 제도들도 개조할 수 없을 정도로 와해시켰다. 서로 빠르게 움직였는데 지난 10년 동안의 속도전에서 운동이 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MBC지키기에 매달렸기 때문에 상실감도 더 큰 것”

양문석 : 공공성을 지키고 또 한 편으로는 강화시키는 싸움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본다. 대표적인 게 MBC다.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공영방송 MBC와 KBS가 국가권력에 의해 무참히 장악되는 모습을 봤다. 반면, 상대적으로 SBS와 JTBC는 달랐다. 요새보면 ‘역시 JTBC’라는 평가가 진보적 블록에서도 쉽게 나온다. 공적 영역은 선이고 사적영역은 악이라는 이분법은 2014년 본격적으로 무너지게 된 것이다. 언론 진영의 공적 영역이 형편없이 무너지면서 ‘그나마 SBS와 JTBC’가 된 것이다.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앞으로 공공성 사수와 사적영역의 확산 저지 싸움을 어떻게 정당하게 끌고 갈 것이냐, 합의와 평가가 필요한 대목이다.

원용진 : KBS와 MBC를 필요이상 비하할 건 아니다. 다만, 공유지로 인식하는 부분을 좀 더 발굴하고 개발할 필요는 있다. 최근 상황을 보면, 공영방송에 너무 매달리고 집중했기 때문에 상실감이 더 커지고 염세적으로 되는 부분이 있는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발상을 바꿔, JTBC나 새로운 케이블사업자 그리고 인터넷에 있는 다양한 공유지에 관심을 좀 더 기울이고,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으로 볼 순 없을까. 물론, KBS와 MBC를 버릴 순 없다. 다만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이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국제사회주의혁명(ISR)을 주장했던 이들의 슬로건 가운데 ‘각자 상황에서 열심히 싸우자’가 있는데, 지금 상황은 그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수세적이지만 각자 상황에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가 운동에서 할 수 있는 지점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양문석 : 지상전이 아닌 진지전의 제안 같은데, 언론 운동엔 청원 운동의 오랜 관성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언론운동 차원의 평가와 정리가 필요하다. 떠밀려 가듯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자는 안 된다. 운동이 떠밀려 모든 방식을 ‘청원운동’으로 바꾸고, 의회 의존의 존재들이 되면서 시민사회가 독자적 영역이 아닌 부속물로서 전락해갔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있는 기반에서 진지전을 펼치자’고 선언을 할 것이라면 왜 진지전이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술적 채택이 있어야 하고 선언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 것이 없이 계속 떠밀려 가면서 그렇다고 합리화만 하면 새로운 운동을 모색할 수 없다.

원용진 : 야당이 얼마나 무능한지 알게 되면서 청원운동이 안 된다는 건 이제 다 알게 된 것이 아닌가.(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에 기댔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게 ‘야당을 혁신하자’는 정도의 주장인데 그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야당의 볼모가 될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야당과의 관계에서 발을 빼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규찬 : 야당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주의해야 한다. 청원운동을 조롱하는 순간 그 부메랑은 무력화된 저널리스트들와 시민운동이 감수해야 할 부분으로 돌아온다. 양문석 이사장이 ‘채택’을 이야기했는데, 그걸 할 운동장이 한국사회에 작동이나 되고 있는 것인지 회의적이다. 전략을 채택하고 수정할 수 있는 장이 없는 것이 문제다. 보수야당의 무력함보다 더 무력한 표상을 우리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논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합의를 위해서 한 가지 더 필요한 작업이 있다. 그 평가를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현 정권까지의 7년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의 상황을 만난 건 노무현 정권 때였다. 노무현 정권 당시 또한 신자유주의가 쓰나미처럼 밀렸다. 그때 우린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그때 운동진영에서는 공공성이라고 하면 계량적으로 이야기를 해버렸고, 제도라고 하면 후진운동이라고 했었다. 언론운동에서 또한 내외에서 ‘갑질’이 있었던 것이다.

▲ 미디어스 김완 편집장ⓒ미디어스

김완 : 이명박 정부 초기 MBC라고 하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분명 있었다. 내부의 역학관계를 따져봤을 때, 어떤 사장이 와도 쉽게 망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MBC는 내부적 견제를 위한 장치들을 가장 활발하게 갖춘 방송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물론 아니다. 조중동에서 한때 노영방송이라고까지 하던 MBC였는데, 노조가 투표소를 회사에 설치하지 못할 정도다. MBC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3년 정도 밖에 안걸렸던 것 같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권위주의적 질서를 그대로 두고 선의를 가진 사람이 들어가면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오인을 했던 것은 아닐까. 확장하면 한국사회 운동 자체가 ‘인적 교류’를 통한 돌파만 방법론으로 갖고 있었으면서도, 지난 10년 간 역량을 착각 했던게 아닐까. 원용진 교수의 말대로 괴물을 만나자 그 때 그게 다 드러난 게 아닐까.

전규찬 : 지금의 체제라고 하는 신자유주의는 이미 DJ때 부터였다. 변화는 이미 DJ정권 이전에 시작됐다. 노무현 정권은 그 변화가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 낸 게 아니라 그저 수용하면서 ‘내 선수’를 심어 넣으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러면서 제도적 안정화도 못 만들고 보수에게 반격할 빌미도 주고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공공성의 제안은 말하자면, 그 안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찾아내고 그걸 기반으로 사회 거버넌스를 따내는 지혜로움의 제안이었으나 노무현 정권이 반대했었다. 단적으로, FTA를 ‘국익’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이익과 차이를 수렴해서 합의적 모델을 내야한다는 주장이 깡그리 무시됐다. KBS 운영모델 또한 사장 선임방식을 재구성해보자는 제안이 ‘내 사람 심기’에 밀려났다. 그런 점에서 2007년이 중요한 분기점일 수 있지만, 운동은 DJ와 노무현 정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최근 한때, 혁명을 이야기하시던 분들이 진보정당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정당을 꿈꾸자며 ‘국민모임’을 만들었다는 점은 그래서 징후적으로 매우 놀랍다. 최소한 “쏘리”는 하고 가던가(웃음) 그런 태도 자체가 없다.

양문석 : 반성하라는 것인가. 내가 “쏘리”를 해야 할 위치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떠밀려 갔다’는 점에서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떠밀려 가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돌아보니 너무 멀리 가버렸다. 어느 새 주변의 운동가들이 어느 국회의원들과 어느 정도 친한지가 힘 인양 사고하고 있다. 이런 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제대로 제동 걸지도 못했다.

전규찬 : 여기는 “쏘리”해야 할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웃음)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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