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가 피습당했다.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미 국무부는 즉각 성명을 내고 “폭력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반응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리퍼트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쾌유를 빌었다. 백악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National Security Council)는 “오바마 대통령이 리퍼트 대사와 그의 아내 로빈에게 깊은 염려를 전했고 빠른 쾌유를 기원했다”고 밝혔다.

서울 한복판에서 외교관에 대한 테러가 벌어지는 것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그 자체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건이 이미 벌어졌고 이로 인한 정치적 효과는 이제 연쇄반응처럼 일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문제는 국내외를 아우르는 파장을 불러올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용의자가 경찰에 제압돼 건물 밖으로 끌려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의 이념적 동기로 지목될 '민족주의', 진보세력에 미칠 여파는

1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하겠지만 테러의 동기가 이념적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범인은 범행 직후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반대 구호를 외치는 등의 행위를 했다. 이러한 행위와 다른 여러 맥락을 통해 짚어보면 이 테러가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자행됐음이 분명해보인다. 국내에서 이런 형태의 민족주의는 진보세력 내의 한 분파로서 성장해온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후 상황은 이 맥락과 관계없이 흘러가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4월 재보궐선거가 목전에 다가와 있다는 점은 우려를 더욱 깊게 한다. 보수언론과 박근혜 정권의 입장에서는 범인의 이러한 성향에 대한 공격을 극대화해야 할 필요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미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 사건 때문에 다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우려와 이 사건으로 인한 당혹감을 묶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배후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즉, 새누리당은 그 ‘배후’가 ‘북한’이나 ‘종북세력’이지 않겠느냐고 바로 묻고 있는 셈이다.

배후가 '종북' 아니냐고 묻고 나선 새누리, 새정치에게 미칠 영향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4월 재보궐선거에서 “무원칙한 야권연대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이 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념적 성격이 강한 이슈가 떠오를 경우 보수적 유권자들은 문제가 되는 그 ‘이념’의 범위에 새정치민주연합까지 포함시켜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 당장 4월 재보궐선거에서의 야권연대 성사 유무와는 관계없이 2012년 당시 통합진보당과의 관계나 태도를 기준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정치적 비난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런 정치적 맥락은 정권이 주도하는 ‘공안정국’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상황을 정권이 의지를 갖고 밀어 붙일 경우 이 사건 뿐만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사건이 함께 맥락화될 수 있다. 민주노총이 예고하고 있는 총파업이나 진보정치세력들의 재편논의에서의 잡음,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이 총체적으로 묶여 '되치기' 당할 수 있다.

국제 외교도 상당히 불리해질 수 밖에 없어진 정부의 곤혹

문제는 외교적 차원에서도 불거질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등과 일정한 외교적 마찰을 빚어왔다. 지난 2일 미 국무부 웬디 셔먼 차관은 “동북아 외교관계에 있어 한중일 3국은 모두 책임질 위치에 있다”, “과거사는 덮고가는 게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거듭해왔고, 미국이 이 때문에 대중국전선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한미일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판단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무부 차관이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이 용기 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은 미국의 바람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언론이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한국 소개 문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부분이 삭제됐다고 보도한 것 역시 각국 간의 외교적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가 피습당한 이번 사건의 이념적 성격이 강조될 경우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가 더 분명해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반미국가’처럼 비춰지는데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미일 3국간의 협력 강화가 외교적 현안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이럴 경우 중국이 경계하고 있는 사드(THAAD) 도입과 같은 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으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발언권이 이전보다 약화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으리란 점이다.

▲ 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대북·대중 군사적 대결 격화시키고 남북대화를 가로막는 오바마 행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리퍼트 대사 피습으로 미국이 쥐게 된 선택지, 오바마의 선택은

오바마 행정부 입장에서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개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만한 유인이 있다는 것 역시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이란 핵 협상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지속적인 갈등을 빚어왔다. 현지시간 3일 네타냐후 총리는 미 의회의 상하원합동연설에서 북한이 IAEA 사찰에도 불구 핵무기 개발을 지속한 사례를 언급하며 “지금의 핵 협상으로는 이란의 핵무장을 막을 수 없다. 이란 핵무장이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협상은 아주 나쁜 협상이다. 나쁜 협상을 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등의 발언을 내놓았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를 그야말로 ‘직격’하는 것으로 이란과의 핵협상을 통해 국제정치적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리퍼트 대사의 피습을 고리로 관련 여론을 주도하며,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조기에 종료시킨다는 부수적인 선택지를 얻게 된 셈이다. 만일 오바마 행정부가 한미일 동맹의 강화를 의미하는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고 북한 핵문제에 대한 보다 강경한 입장을 천명하게 될 경우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로 의회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될 수도 있다. 북한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이란 역시 핵협상 이후에도 잘 통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이는 다시 국내정치에 대한 영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한미일 동맹 강화와 이로 인한 사드 배치, 대북 강경책 추진 등이 현실화 되면 이 과정에서 야권은 정권과 마찰을 일으키며 이념적 함정에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에서도 파탄적 결말을 맞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기예라고 할만한데, 이러한 역량을 야권이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어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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