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UN에 보낼 인권규약 이행실태 의견서에서 ‘세월호 참사’, ‘통진당 해산’ 등 사회적 쟁점이 됐던 내용을 대폭 삭제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 배후가 박근혜 선거캠프에서 요직을 지낸 유영하 인권위 상임위원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JTBC <뉴스룸>은 2일 <“박근혜 캠프 출신, 삭제 지시”> 단독보도를 통해 “인권위는 지난달 14일 국내 인권현안을 정리한 보고서를 유엔에 전달했다”며 “전문가 9명과 시민단체 6곳으로부터 65개의 쟁점이 취합됐지만 최종본에는 ‘세월호’, ‘비판 언론에 대한 고소 사건 증가’, ‘통진당 해산’ 등 민감한 쟁점들이 빠진 채 31개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JTBC는 “인권위 2차 상임위원회에서 유영하 상임위원이 삭제를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러한 증언은 인권위 내부 직원으로부터 나왔다.

▲ JTBC 3월2일 리포트

JTBC는 유영하 인권위 상임위원에 대해 “검사 출신으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조직부본부장을 맡은 인물”이라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역시 박 후보 캠프에서 법률지원단장을 지냈다. 현 정권 출범 후 청와대 비서관 하마평에도 올랐으며 지난해까지 새누리당 경기 군포 당협위원장을 역임했다”고 폭로했다. JTBC는 유영하 상임위원에 취재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JTBC는 <인권 보호 대신 정권 보호?> 리포트를 통해 초안에서 삭제된 내용과 의미를 분석했다. 인권위가 박근혜 정부의 인권 문제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이다. JTBC는 “인권위 유엔보고서 초안에서 세월호는 두 차례 언급됐지만 두 항목 모두 삭제됐다”면서 “특히, 세월호 집회를 과도하게 진압했다는 항목은 경찰청 산하의 경찰청 인권위원회에도 문제 의견을 냈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세월호 관련 집회 해산 과정에서 325명이 연행됐다는 내용 등 최신 사례들을 삭제하고 엉뚱하게 초안에는 없던 7년 전 MB 정권 촛불집회 진압을 넣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반인권적 모습을 숨기고 7년 전 사건을 추가한 것은 “인권위가 이번 정부의 문제를 덮으려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고 비판했다.

JTBC에 따르면, 최종 보고서에서 삭제된 34개 쟁점은 △세월호 참사 및 물리력 진압, △비판적 언론에 대한 고소 증가, △모욕죄 적용 남용, △개인정보 수사기관 제공,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채증, △통진당 해산 등이다. JTBC는 “현 정권의 조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던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인권보고서 자문을 맡았던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의 인권위가) 관변단체 수준을 보여준 것”이라며 “인권위 체제와 맞지 않다”고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JTBC 손석희 앵커,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

이날 JTBC 손석희 앵커는 <앵커브리핑> 코너를 통해 “인권위는 정부가 국민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혹시 침해는 없는지 감시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기구”라며 “그런데, 주어진 임무를 거꾸로 수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분량이 많다’, ‘인권위 관여사항이 아니다’ 등의 이유로 사라진 항목은 65건 중 34건으로 절반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손석희 앵커는 “이번 보고서는 2007년 이후 우리나라가 유엔 국제인권규약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판가름할 잣대가 된다”며 “이번에 받는 성적표는 어찌 보면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보수정권이 받는 인권성적표이자 논란 속에 출발한 현병철 인권위의 성적표가 될 수도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손석희 앵커는 ‘역사란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3.1절 박근혜 대통령의 경축사를 언급하며 “필요한 것만 골라서 기억하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이 퇴임식에서 한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 발언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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