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의 간통죄 조항에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62년만의 변화인 만큼 27일 대다수의 신문들은 이에 대한 평가를 담은 기사를 전면에 배치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헌재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번 결정으로 가족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은 오늘 1면에 간통이 최소한 처벌 대상에서는 벗어나게 됐다는 취지의 제목을 단 기사들을 배치했다. 이 중 <한국일보>는 1면 톱에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자세하게 전하면서 2면에서는 이혼소송 등에서의 위자료 상한선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수사기관이 간통 행위의 증거를 수집해 법원에 넘겼지만 이제는 변호사가 증거를 수집하기 때문에 이혼소송에서 간통증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일보>는 상간자에 대한 처벌이 불가해지면서 이들에 대한 민사소송 역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 27일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1면.

<한국일보>는 같은 면에서 여성단체를 포함한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인권을 존중한 결정”이라며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환영입장을 밝혔지만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경우 “배우자의 부정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선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의 경우 “높은 이혼율을 감안했을 때 간통을 막을 법적 장치를 없애고 개인의 자율에 맞기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함께 전했다. 또, <한국일보>는 이어지는 3면에서 그간 간통죄 위헌 논란에 대한 논의의 과정 등을 자세히 전했다.

<한국일보>의 중도적 스탠스가 잘 드러난 것은 이날의 사설이다. 이날 <한국일보>는 <족쇄 푼 간통죄, 사회 건강성 지킬 보완책 따라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간통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완전히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여성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평등 없이 홀로 설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무엇보다 위자료나 양육비가 형편없이 적은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일보>는 “배우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물론, 자녀 양육권이나 양육 비용을 물리게 하는 법적 장치도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다른 신문들도 간통죄 폐지 문제를 <한국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강조점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동아일보>는 1면 톱과 2면에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자세히 전하고 2면 하단에서는 마지막 합헌 결정 다음날인 2008년 10월 31일 이후 형 확정자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고 전하면서 탤런트 옥소리씨의 예를 거론했다.

▲ 동아일보 27일자 3면.

<동아일보>는 3면 기사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외도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이른바 ‘심부름센터’가 성황을 이룰 거라고 전망하기도 하고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정신적 피해를 안겨준 외도에 대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는 만큼 위자료를 높게 책정할 거라는 관측과 유책 배우자가 형사처벌을 받지 않아 민사재판에서 책임이 경감돼 위자료가 줄어들 거라는 시각이 공존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동아일보>는 “일각에선 간통죄 폐지가 여성에게 불리할 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면서 “간통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남녀 비율 통계가 없어 구체적인 수치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의외로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는 법조계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헌법재판 대상이 된 간통 사건 위헌 청구인 21명 중 14명이 여성이었다”고 쓰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3면 하단에는 위헌 결정 직후 콘돔업체 주가가 상한가를 쳤다는 기사를 배치했는데, 다른 신문과 비교하자면 다소 선정적인 편집이 눈에 띈다.

▲ 조선일보 27일자 2면.

<조선일보>는 1면 톱에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전하고 2면에 <2008년 10월 31일 이후 처벌받은 3000명 ‘주홍글씨’ 지울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결정의 소급적용 여부와 재심절차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조선일보>는 같은 면 하단 기사에서 이번 결정으로 이혼시 위자료가 3000만원에서 5000만원이 될 것으로도 전망하고 있다. 만일 간통죄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다수가 남성이라고 전제한다면 <조선일보>의 이와 같은 공세적 편집은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것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한국 남성 100명 중 37명이, 기혼 여성의 경우 100명 중 6명이 불륜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중앙일보 27일 1면 기사.

<중앙일보>는 이날 1면 톱기사 제목을 <“간통, 국가 개입할 일 아니다”>라고 써서 이번 결정의 자유주의적 측면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3면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민법상 책임이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책배우자가 상대방에게 지급하는 위자료 액수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 등을 자세히 다뤘다. <중앙일보>는 또 “외도 등 유책사유를 재산분할 비율에 반영하지 않고 있는 판례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재산분할 비율 산정 방식이나 액수 등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고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간통으로 인한 이혼 시 양육비 이행을 효과적으로 강제하는 방안도 보완책이 될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보완책을 강조한 전면 기사에서와는 달리 사설에서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 사설에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위헌 심판이 다섯 차례나 이뤄진 점, 논점은 같은데 결론이 뒤바뀌어 헌재의 권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 헌법소원 만능주의라는 관행을 만들 수 있다는 점, 한헙 의견의 논리도 타당하다는 점 등을 한계로 짚었다. 무엇보다도 <중앙일보>는 “가장 큰 문제는 형사처벌이나 형량을 정하는 것은 입법사안이지 헌재의 판단을 구할 사안은 아니라는 점”이라면서 “국회가 시대적 요청을 반영해 새로 입법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다. 그럼에도 입법부는 민감한 사안을 회피하고 자신들의 일을 사법부로 떠넘겼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27일 1면 기사.

이에 반해 <경향신문>은 1면톱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이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논리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2면에서 이미 존재 이유를 잃은 간통죄가 부작용이나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재판소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맥락을 추가로 전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결혼과 성에 대한 인식 변화 등 시대상을 반영한 합리적 판단으로 평가한다”면서 “다만 일각의 우려도 외면할 일은 아니다. 간통죄가 사라짐으로써 성과 관련한 도덕관념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향신문>은 “특히 남성의 외도가 상대적으로 많은 현실을 고려해 민법에서 성평등을 강력히 보장하는 조치가 절실하다”면서 “간통죄 폐지가 혼인의 신성함을 저버려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저선 안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 한겨레 27일자 사설.

간통죄 폐지로 인한 가족적 가치의 퇴조나 성과 관련한 도덕관념의 후퇴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사설에서 우려하고 있는데, 이러 차원의 관점에서 가장 선진적인 논리를 보여주는 것은 <한겨레>의 사설이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이번 헌재 결정은 단지 간통죄라는 하나의 쟁점을 떠나 민주공화국에서 공권력과 개인의 관계라는 법철학적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도 제공한다”면서 “개인은 국가의 결정이라면 내밀한 사생활까지도 내보여야 하는 피동적 존재가 아니라 불가침의 자유와 권리를 지닌 주권자라는 게 헌재 결정의 밑바탕이며, 이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관철돼야 할 헌법 원리”라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는 “헌재 결정은 간통과 같은 성적 사생활의 영역에 국가가 형벌권을 동원하면서까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일 뿐,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파탄시키는 부정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난마저 부인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헌재의 소수의견이 지적한 것처럼 이혼 과정에서 경제·사회적 약자가 보호되지 못하고 자녀의 인권과 복리가 침해되는 일이 빚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날 2면 기사에서 간통죄 폐지에 따른 보완책이 필요하다면서 ‘부부재산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싣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한겨레>의 이날 지면은 간통죄 문제와 관련해 가장 진보적인 시각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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