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트 크롤러> 가운데서 사건 파파라치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 분)이 활개 칠 수 있던 건, 시민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건 하나하나가 ‘돈’이 되고 ‘시청률’과 직결되는 황색 언론의 폐해와 맞닿아 있다. 누군가가 교통사고로 피를 흘리거나, 혹은 강도의 총에 맞아 911의 도움에 의지하는 사고 장면 하나 하나는 루이스의 영상이 되고, 루이스가 찍은 자극적인 영상은 시청률에 목말라 하는 지역 방송국 시청률 상승의 견인차가 된다.

피 흘리는 피해자의 고통은 루 블룸의 두툼한 지갑 두께로 연결되며, 자극적인 영상은 타 방송국보다 앞서 특종을 방영하는 방송국의 시청률 상승을 이끌어주는 촉매제가 된다. 누군가의 비극은 사건 파파라치에게는 돈이 되며, 방송국에게는 시청률 상승이 광고와 연관되는 위험한 순환이 <나이트 크롤러>가 담은 세계이다. 이런 가운데 사고를 당한 누군가의 비극이 비극으로 와 닿는 게 아니라 돈으로, 혹은 시청률로 뒤바뀌는 황색 언론의 디스토피아로 치닫는다.

누군가의 비극이 돈과 시청률로 직결되는 <나이트 크롤러>의 시추에이션은 결국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소시오패스’의 탄생에 일조한다. 만일 루이스가 찍은 자극적인 사건 사고 영상을 지역 방송국이 구매하지 않았다면 루이스는 그저 그런 사고 파파라치로 남았거나 아니면 다른 업종으로 발길을 돌렸을 터.

하지만 지역 방송국은 루이스의 사건 사고 영상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만은 않는다. 자극적인 사건 영상을 지속적으로 바람으로 말미암아 루이스가 소시오패스가 되는 밑바탕을 만들어준다. 시청률 상승과 광고 증가라는 시청률 지상주의가 루이스이라는 소시오패스를 탄생하게 만든 자양분이라는 걸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나이트 크롤러>는 루이스 블룸이라는 소시오패스의 탄생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왝더독’,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추에이션도 관찰할 수 있다. 여기에서 꼬리는 루이스고 몸통은 지역 방송국이다. 처음에는 갑을관계가 명확하다. 을은 루이스고 갑은 지역 방송국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 분)이다. 루이스의 영상을 니나가 구매하지 않으면 그만인 갑과 을이었다.

하지만 루이스의 영상이 가면 갈수록 자극적인 영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서 갑과 을의 관계는 뒤바뀐다. 루이스의 자극적인 영상은 이 지역 니나에게 안 팔면 그만이다. 다른 방송국으로 넘겨도 충분히 특종이 될 만큼 파괴력이 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니나는 루이스의 자극적인 영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이제는 니나가 영상의 가격을 정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루이스가 가격을 책정하기에 이른다.

전에는 을이던 루이스가 이전의 갑이었던 니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관계에 다다른다는 건, 꼬리였던 루이스가 몸통인 니나를 뒤흔드는 단계까지 다다랐다는 걸 의미한다. 황색 언론의 시청률 지상주의는 루이스라는 소시오패스의 태동만 촉발한 것이 아니다. 황색 언론 스스로를 을의 위치로 격하하는 왝더독 현상까지 초래하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황색 저널리즘 스스로가 자신을 을로 격하시키는 웃기는 시추에이션을 만들다니, <나이트 크롤러>는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는 재미도 선사라는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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