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이데이에 2015년 방송 첫 발을 내디딘 <SNL 코리아>는 최근 시즌과 엇비슷하리라는 관측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여의도 텔레토비’ 같은 고강도 시사 풍자 콩트를 감행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이에 <SNL 코리아> 제작진과 작가, 크루는 보다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바로 이전 시즌처럼 영화와 드라마를 포맷으로 패러디를 구축하되 김준현과 리아, 정연주, 고원희와 같은 신선한 피를 수혈받는다는 전략으로 시청자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이전 시즌과 같은 노골적인 퀴어 개그는 그다지 관찰되지 않았으며, 크루 클라라를 통해 사골 곰국처럼 활용하던 ‘19금 개그’는 정상훈이 유세윤의 물건을 보고는 “우리 아들 고추가 작은데 그게 우리 집안 내력”이라고 하는 장면, 리아가 김준현에게 “물티슈랑 차가 무슨 관련이 있나요?”하는 정도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풍자의 수준은 이전 시즌보다 깊어졌다고나 할까. 14일 방영분 한 회만 시청하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SNL 코리아>는 ‘여의도 텔레토비’와 같은 정치 풍자는 포기한 대신에 ‘압구정역 백야’와 같은 풍자 코미디는 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대놓고 정조준하고 있었다.

‘압구정역 백야’는 조나단(김민수 분)이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고 병원에서 불귀의 객이 된다는 드라마 <압구정 백야>의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조나단의 아내 나르샤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검은 옷을 입은 상주가 되고 신동엽과 정명옥, 이세영이 조나단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이때 느닷없이 나타난 안영미는 신동엽과 정명옥, 이세영과 나르샤에게 나타나 “당신들은 드라마 속 인물”이라고 귀띔한다. 드라마 속 캐릭터라는 걸 믿지 않는 신동엽과 정명옥. 이에 안영미는 신동엽에게 담배를 피워보라고 권유한다. 어이없어하면서 신동엽이 담뱃불을 붙이려고 하지만 신동엽은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등장하지 못해서다. 정명옥 역시 특유의 욕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는데, 이 역시 드라마에서는 욕을 하는 장면이 방영될 수 없어서다.

자신들이 드라마 속 캐릭터라는 걸 깨달은 신동엽과 정명옥에게 안영미는 자신을 오로라공주라고 소개하며 "그 작가님 이름을 말하시면 안 돼요. 작가님이 눈치 챌 수 있어요"라며 임성한 작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에 신동엽은 “우린 다 죽었어”라고, 정명옥은 “드라마계의 데스노트”라고 응수한다.

안영미는 신동엽과 정명옥에게 죽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우선 집안의 거울을 전부 없애라고 한다.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서 왕여옥(임예진 분)이 거울을 보다가 유체이탈로 숨을 거둔 장면을 패러디했다. 이어 안영미는 웃으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소피아(이숙 분)가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웃다가 돌연사한 장면을 패러디한 대사다.

안영미의 거듭된 경고에도 이세영은 웃다가 죽고, 정명옥은 속이 터져 죽자 이번에는 신동엽의 눈에서 느닷없이 레이저가 발사된다. <신기생뎐>에서 귀신에게 빙의된 아수라(임혁 분)을 패러디한 개그다.

나중에는 신동엽과 한재석, 강유미와 나르샤 모두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콩트는 결말을 맺는다. 나르샤를 죽음으로 이끈 택배기사 권혁수는 “드라마 단역 배우도 살아있는 생명이라고요”를 외침으로 <오로라 공주>에서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대사를 패러디하기에 이른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을 10명 이상 죽음으로 하차시킨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세계를 웃음으로 포장하여 신랄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엔 인명 경시의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 드라마 속에서 무려 12명이 유명을 달리한 <오로라 공주>는 그 제목이 무색할 만큼 임성한 작가의 데스노트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신기생뎐>에서는 빙의라는 임성한 작가의 초자연적 취향을 거침없이 투영했다.

이러한 임성한 월드를 <SNL 코리아>에서 과감하게 건드렸다는 건 콩트 ‘압구정속 백야’에서 SNL 크루의 연이은 죽음으로 웃음을 제공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임성한 월드의 문제점을 환기하게 만들어주는 시사도 분명하게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이전 시즌처럼 대놓고 섹시 코드와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던 일차원적 수준의 개그에서 보다 한 단계 발전해서 TV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정조준하고 희화화하겠다는 SNL 제작진의 의도가 읽혀진다.

임성한의 드라마에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등장인물의 생명쯤은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는 인명 경시 풍조가 깔려있다. 이쯤 되면 오원춘이 한 여성을 두부 조각처럼 이백 조각낸 뉴스를 보며 역겨워하는 것만큼이나 임성한의 드라마 속 인명경시 풍조를 역겨워해야 하는 게 정상일 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임성한의 드라마는 시청률에 있어서만큼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바로 시청자들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이다.

앞으로 그의 드라마 속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지, 혹은 어이없는 샤머니즘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뉴스에서 그의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한 번이라도 더 회자되면 시청자는 궁금해서라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찾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욕하며 보는 드라마, 시청자가 보아주지 않아야 자극적인 소재가 더 이상 발 붙지 못할 텐데, 지금의 한국 드라마 풍토는 시청률 지상주의=막장이라는 우려할 만한 공식이 힘을 얻고 있다. 힘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탄력까지 받기에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최근 <압구정 백야>의 시청률이 동시간대 타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비해 얼마나 탄력 받았는가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를 끊임없이 기용하는 방송국의 태도에도 우리 시청자가 경계의 태도를 늦추면 안 된다. 지금의 임성한 작가와 같은 드라마 작가의 작품이 시청률로 고공행진한다면 앞으로 제 2, 제 3의 임성한 작가가 방송가에서 태동할 수 있다.

더욱 문제인 건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다수의 등장인물이 죽어나가는 등 얼마든지 끔찍한 설정을 해도 눈감아 주겠다는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만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막장 드라마가 더 이상 시청률로 이어지지 않아야 드라마에서 막장 시추에이션이 근절될 텐데, 우리나라 드라마계는 시청률을 담보로 임성한의 막장 월드가 그 어느 때보다 비대해지는 기이한 현실로 치닫고 있다.

이런 작가와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를 <SNL 코리아>가 첫 회부터 용감하게 건드렸다는 점만으로, 이번 시즌 <SNL 코리아>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걸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동성애 코드와 섹시 코드로 사골 곰국 우려먹듯 일관하던 <SNL 코리아>의 이전 시즌와 달리, 분명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단 걸 강렬하게 보여준 콩트가 ‘압구정역 백야’라고 평가하고 싶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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