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1월 23일, 네덜란드 벤로의 숲길에서 불에 그을린 시체가 발견되었다. 심한 구타를 당한 흔적이 또렷한 중장년의 남성이었다. 얼마 후 독일 부퍼탈에서 용의자들이 체포되었다. 그곳의 한 술집에 드나들던 20대 청년 둘, 그리고 31살의 술집 주인이었다. 이들은 극우파였고 스킨헤드였다.

조금 더 자세히 사건에 들어가 보자. 가해자인 청년 둘은 부퍼탈의 한 술집에서 ‘득녀’를 축하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며칠 전 실직한 중장년의 피해자는 이곳에서 술을 마시다 이 청년들과 합류했다. 이들은 한편으로 술 내기를 할 정도로 함께 어울렸지만 또한 신경을 곤두세우는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청년 둘은 이 남자에게 주먹질을 가했고 구타를 행했다. 여기에 술집 주인이 가세해 쓰러진 남자의 몸에 인화성이 강한 술을 뿌리고 불을 붙였다. 이들은 불을 곧 끄기는 했지만, 쓰러진 남자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술집 주인의 차에 실었다. 그리고 부퍼탈에서 한참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벤로에 피해자를 버렸다. 피해자가 숨을 거둔 것이 차에 실리기 전이었는지, 이동 중이었는지 혹은 버려진 이후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경을 넘어서 시신이 발견된 탓에 시신은 곧 화장됐고 당시 이루어진 부검은 사후에 필요로 하는 정보 범위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구타와 폭력의 순간에 “이 남자 유태인이야” “아우슈비츠를 다시 열어야 해” “유태인은 태워 죽여야지”와 같은 혐오 발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애초 이 술집은 주인부터 극우파인, 주로 극우파들이 모이는 곳이라 알려져 있었다. 피해자는 “이 남자 유태인이야”라는 술집 주인의 말에 “그건 아니지만 반쯤 유태인 피가 섞였다”고 응수했다. 범죄의 과정에서 울려 퍼진 혐오 발언이 애초 굳은 신념의 발로였는지 위악의 농담이 섞여 있었는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취중 발언들이란 언제나 일정 정도의 진심을 담고 있으며, 일정 정도 과장과 허세를 두르기도 한다. 과거사 때문에 반 유대주의와 인종혐오 범죄에 특히 엄격한 독일에서, 이 사건이 그저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처리될지, 계획 하에 저질러진 혐오범죄로 처리될지도 법적으로 예민한 이슈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모스 기타이 감독의 카메라는 술집 주변을 지나는 행인들은 물론,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범인들의 변호사, 심지어 범인 중 한 명의 부모까지 만나 그들의 증언을 기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네오 파시스트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인 <부퍼의 계곡에서>(1993)이다. 이 영화는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고 있는 '2015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변영주 감독의 추천으로 상영 중이다. 이번이 국내에선 첫 상영으로, 총 세 번의 상영 중 아직 두 번의 상영이 남아 있다.

▲ (사진=Agav Films)

영화 속 인터뷰이들의 입을 통해 우리는 이 사건의 구체적인 정보들을 다각적인 방면에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계속되면서, 우리는 이들의 증언에서 묘한 긴장을 느끼게 된다. 범죄의 현장에서 혐오 발언이 있었음에도 검찰은 애써 ‘우발적인 사건’이라 주장한다. 범인 중 술집 주인은 독일서 나고 자란 순수 독일인이 아니라 16세 때 독일로 이주한 폴란드계로 드러난다. 그는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었다. 20대 구타자 중 한 명은 발달지체로 사회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장애인이었다.

그런데 아모스 기타이의 카메라는 이 범죄가 인종혐오 범죄였음을 증명하고 가해자들을 고발하거나 비판하는 것보다 다른 데에 더 큰 관심을 둔다. 그것은 오히려 이 끔찍한 범죄가 토대를 두고 있는 어떤 분위기와 정서이다. 그리하여 그의 카메라가 만나는 것은 카니발에서 어울려 놀고 있는 평범한 10대 독일 청소년들이다. 처음엔 쭈뼛거리며 다른 친구의 옆구리를 찌르던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조금씩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다.

자신들이 ‘네오나치’라 불리는 것에 분개하며 “우리는 파시스트지만 네오나치는 아니에요”라고 입 모아 외치는 말들.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고작 18살의 아이가 내뱉는 “무솔리니 시절엔 살기 좋았는데…”라는 회고조의 말. “우리는 인종 혐오자도 아니고 네오나치도 아니에요, 우리 친구들 중엔 아랍 출신이나 이탈리아 출신 친구도 있어요”라는 항변. 저성장 경제에서 기인한 일자리 부족과 삶의 불안,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난민수용소로 향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몫을 빼앗아가고 있으며, 그들은 무례하고 범죄에 해당하는 아무 짓이나 다 할 수 있지만 자신들은 오히려 행동에 제약을 받으며 역차별을 당한다는 것이다. 반유태주의와 인종차별, 혐오범죄가 아직까지 그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은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벌써 20여 년 전 독일의 10대였던 이들의 이야기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화법임을 느낀다. 근자의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여성 일반을 향하는 일련의 주장과 화법들이 이 독일 청소년들의 말과 꼭 닮았다.

카메라는 이제 독일에 살고 있는 터키계 이주민들을 만난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차별과 폭력, 두려움에 대한 증언이 이어진다. 느닷없이 집안에까지 들이닥치는 침입과 위협, 언제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적개의 눈초리. 그러나 이들은 이미 독일에서 오랫동안 삶을 영위에 온 탓에 고향에 돌아가도 그곳 역시 낯선 타지일 뿐 정착할 수 없다.

반유태주의에 입각해 훼손된 유태인들의 묘비석을 훑던 감독의 카메라는 영화의 마지막, 아마도 벤로의 숲길로 짐작되는 숲을 훑는다. 그 위로 부퍼탈 술집 살인 사건을 서술하던 검찰과 사건 용의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의 내레이션이 얹힌다. 감독의 의도는 명백하다. 당장 벌어진 사건은 자신이 반쯤 유태인이라 밝힌 남자에 대한 린치와 살인이었지만, 제2의 부퍼탈 사건은 언제고 반복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유대인뿐 아니라 터키인과 제3의 나라에서 온 다른 이주민일 수 있다. 가해자는 앨비스 프레슬리와 록음악 혹은 헤비메탈을 좋아하고 저녁엔 또래들과 축제나 놀이터를 어울려 다니는 평범한 이웃 아이들일 수 있다.

20여 년 전 독일에서의 사건을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기록했던 이 감독이 우려하던 그 상황들은 비단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반복될 만한 사건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리고 최근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부퍼탈 사건과 샤를리 엡도 사건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샤를리 엡도 사건은 흔한 서방세계 백인들의 공격이 아닌, 그들에 대한 ‘역공격’의 형태를 띄고 있다. 철저히 계획된 ‘테러’였던지라 사상자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이민자 2, 3세대가 범인이었던 데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의 구호까지 빌렸다. 그만큼 복잡한 결과 맥락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퍼탈 사건에서 과연 우리가 가해자는 강자이고 피해자는 약자라 손쉽게 가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샤를리 엡도 사건은 또한 어떠한가? 정반대의 면모와 위치를 지닌 듯 보이는 부퍼탈 사건과 샤를리 엡도 사건은 실상 공통의 뿌리와 연원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유럽의 정세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만을 가지고 있던 우리 입장에서는 현재 쏟아져 나오는 담론의 양과 속도를, 그 깊이를 채 따라가지 못한 채 헤맬 수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러하다. 독일에 거주하는 지인의 증언에 의하면 그곳에서도 일반적으로 그렇다 한다.

근심스러운 것은, 20여 년 전부터 유럽 전역에서 우려해 온 일련의 현상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먼 나라 남의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에서도 썼듯, 20년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 속에서 이제는 우리에게도 굉장히 익숙해진 화법들과 마주친다.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는 점차 늘어가며 거리에서 이들을 보는 일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다문화 정책은 위태로운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주민들을 향한 혐오와 적개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소위 진보적이라는 커뮤니티 내에서도 다문화 아동을 위해 발의된 법안이 말도 안 되는 왜곡과 모함을 당하며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더욱이 현재의 한국은 이주민뿐 아니라 여성 일반을 향한 극심한 혐오의 말들이 넘쳐나는 사회다. <한겨레> 이재훈 기자가 지적하듯 모두가 피해자를 자처하는 가운데 모두가 모두에게 혐오와 분노와 적대를 드러내는 사회, 그게 지금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 벌써 93년에 선을 보였던 이 영화가 단지 과거의 기록일 뿐 아니라 현재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곧 다가올, 아니 이미 “우리 곁에 도래한 미래”에 대한 근심을 담은 암울한 기록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족. 이 영화를 만든 아모스 기타이가 이스라엘 국적으로 가졌다는 이유로, 이 영화가 ‘반유태주의 린치에 대한 즉각적인 시오니즘의 반응’이란 편견을 손쉽게 얻는 광경들을 목격했다. 나는 이러한 편견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과 감독의 의도를 왜곡하고 간과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프랑스 아르테, 영국의 채널포티비 등의 국영방송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의 공적 제작지원을 통해 만들어졌다. 감독 아모스 기타이는 그의 반시오니즘 성향 때문에 이스라엘에 출입을 금지당한 소위 ‘반체제 인사’였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반유태주의적 기반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경제적 양극화와 소외 계급의 증가, 그들의 분노를 인종혐오로 부추기는 극우의 확산, 깊어가는 증오와 적대 가운데 이로 인해 계속해서 발생하는 폭력들에 대한 깊은 우려와 성찰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가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적이고도 다각적으로 시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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