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애초 ‘준비된 총리 후보자’라며 50년 된 엑스레이 사진까지 들이밀던 자신감도 ‘청문회’가 다가오며 소용이 없어지는 분위기다. 그간 다소 호의적이었던 제1야당도 뒤늦게 ‘강공모드’를 예고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신문 지면에도 갈려 각기 다른 지면편집으로 이어졌다.

▲ 한겨레 29일 1면 기사.

29일 <한겨레>는 1면에 이완구 후보자의 땅투기 의혹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차남에게 증여된 경기도 성남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 이완구 후보자가 직접 개입했고 지인에게 토지 구입을 권유한 후 장모를 통해 다시 사들인 점 등에서 추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완구 후보자 측은 두 필지 중 한 필지만 매입하려 했으나 소유주가 두 필지 모두 매도하기를 원해 친구에게 매입의사를 확인한 것에 불과하며, 이 과정에 직접 개입한 것은 2000년 귀국한 장인이 전원주택을 지을 부지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땅은 신도시개발 덕을 봐 가격이 10배 가까이 뛰었기 때문에 장인, 장모를 활용한 땅투기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은 이날 6면에 이완구 후보자와 관련한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이완구 후보자가 2003년 서울 강남구의 타워팰리스 아파트를 샀다가 6개월만에 되팔아 거액의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것인데 이완구 후보자는 시세 10억원의 아파트를 6억여원에 사서 같은 가격에 되팔았다고 신고했다. 이 부분에서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액수만 놓고 보면 마치 시세차익을 전혀 얻지 않은 거래로 비춰지지만 시세가 10억원인 것과 이마저도 반년만에 1억원 가까이 가격이 올랐을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하면 최소 수천만원 상당의 양도소득세를 탈루했을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완구 후보 측은 재산등록 시점에 계약금과 중도금만 납부한 상태였고 둘의 합게가 6억원 가량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 역시도 완전히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한겨레 29일자 5면 기사.

특이한 것은 <한겨레>가 이날 5면에 직접 제1야당에 대한 비판을 따로 게재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현장에서’라는 코너를 통해 애초 새정치민주연합이 이완구 후보자에 대해 우호적 반응을 보이며 제대로 된 검증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을 당시 “정치인 출신 총리라는 점에서 주목한다”, “모처럼 정치인 출신 총리가 나왔다. 청문회 합격하면 예행연습 필요 없이 바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반응한 바 있다.

<한겨레>는 비록 제1야당이 당시 별 문제가 없으리라는 판단으로 ‘덕담’을 건넨 것이라 하더라도 차남 병역면제, 땅 투기 의혹, 장남과 차남의 재산 의혹, 후보자 본인의 논문 표절 등 의혹이 쏟아져 나왔는데도 늦고 무딘 대응을 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인사청문특별위원 참여를 꺼린다거나 충청도 표심을 의식해 충청권 의원을 배제한다는 등의 뒷말이 나온 바 있다. <한겨레>는 “공직후보자면 모두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야당이 정치인 출신이라서 충청권 인사라서 ‘봐주기’를 하는 걸 새정치라 할 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정 신문이 특정 정당을 겨냥해 직접적으로 이런 식의 ‘코치’를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제1야당이 이완구 후보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온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봐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보수언론의 경우 이완구 후보자 관련 의혹을 소극적으로 다루거나 아예 외면하고 있어 더 문제다.

▲ 중앙일보 29일자 8면.

<중앙일보>는 이날 8면 이완구 후보자가 차남에 증여한 토지 매입에 관여했다는 기사를 하단에 작게 배치했다. 이완구 후보자 측은 성남 땅의 차익과 관련해 “세금을 합해 13억원 가까이 들었는데 14년 만에 20억원이 됐다. 이게 투기였는지는 알아서 판단해 달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완구 후보자가 땅을 구매할 때는 실거래가를, 현재 가격을 말할 때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실제 차익은 더 클 수 있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29일자 5면 기사.

어쨌든 <중앙일보>는 작게라도 이완구 후보자 관련 의혹을 다루기는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완구 후보자 관련 의혹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이완구 후보자 관련 의혹을 다룬 기사를 단 한 개 작게 배치했는데 이마저도 제목을 <닷새만에 ‘이완구 검증’ 포문 연 야당>으로 달아 사실상 ‘눈에 띄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편집을 선보였다. 앞으로 문제가 심각해지면 <조선일보>가 맨 앞에 나서서 이완구 후보자를 검증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이날 편집은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비춰진다.

더 황당한 것은 <동아일보>다. <동아일보>는 8면에 이날 지면의 유일한 이완구 후보자 관련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다리 아픈 자식 얼굴 공개…참담”>이다. 이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제기되고 있는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히 그리고 정확하게 해명했는데도 사실과 다르게 국민에게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 비애를 느낀다”는 이완구 후보자의 항변을 전했다. 이완구 후보자는 땅 투기 의혹에 대해 “증여세로 5억5000만원을 넘게 내고 투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벌써 팔아 치웠어야지”라고 답했고 “2011년 세금을 떠안는 조건으로 증여를 받은 둘째 아들이 한꺼번에 돈을 낼 수 없어 10% 이자를 물어가면서 연부연납하고 있는데 세상에 이럴 수 있느냐”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포기한 것을 넘어서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모습이 돼버린 것이다. 다른 언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완구 후보자는 “장가도 안 간 자식 신체부위를 공개하면서까지 내가 공직에 가기 위해 비정한 아버지가 됐다”며 눈물까지 흘린 것으로 전해진다.

▲ 동아일보 29일자 5면 기사.

이완구 후보자가 지고 있는 임무는 박근혜 정권의 입장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정홍원 총리 사퇴 의사 이후 안대희 후보자와 문창극 후보자가 낙마했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 세 번째 총리 임명 시도인 셈이다. 만약 이완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마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완구 후보자는 무조건 총리가 되어야만 한다. 다행히 여당이 국회 다수를 점하고 있으므로 청문회까지만 잘 마치면 임명동의안 처리에는 큰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보수언론이 조용한 것은 이 청문회까지의 과정을 크게 키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언론은 이렇게 권력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걱정해준다. 대통령이 늘 행복해 보이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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