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일간지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달라진 모습’에 일제히 시선을 고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이 아닌, 500미터 떨어진 무려 위민1관에 가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진행하고 수석들과의 토론 내용을 공개하기로 한데에서 ‘변화와 소통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27일 3면.

<조선일보>는 이날 3면에 <스타일 바꾼 박 대통령…직원 업무동 찾아가고 수석회의 공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와 같은 평가를 내렸다. <조선일보>는 청와대 영빈관, 경호동, 위민 1·2·3관 등이 묘사된 지도까지 배치하며 26일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특보단 및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인사를 나누며 10여분간 티타임을 가지며 제주도, 커피, 망고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우문현답’이라는 사자성어를 갖고 농담을 하며 27분 동안 15개의 질문을 던지는 등 달라진 모습을 한껏 과시했다.

<중앙일보> 역시 대통령의 달라진 모습에 집중했다. <중앙일보>는 같은 사실을 이날 6면 기사에서 다루면서 “대통령과 참모들의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정치권 안팎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는 설명을 그대로 전했다. <동아일보>도 4면에 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박 대통령 국정스타일 바뀌나”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연말정산 논란과 어린이집 문제를 화두로 삼은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50대 이상과 주부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안이기 때문”이라고 해설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추이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수석비서관회의를 위민1관에서 한 것과 수석비서관들에게 질문을 좀 많이 했다는 것 정도를 갖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의 변화를 논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족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보수언론도 마지못해 박근혜 대통령의 변화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일부 비판적 시각을 더하고 있다.

▲ 동아일보 27일 사설.

<동아일보>는 위의 기사에서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토론 결과를 보면 해당 분야 수석 이외에 다른 수석이나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통령특별보좌관단(특보단)이 추가 의견을 제시한 게 없다. 박 대통령과 해당 수석 간의 질의응답만 있을 뿐 실제 토론은 없었다는 얘기”라면서 “박 대통령이 수석과 특보단 등 참모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회의 분위기를 만드느냐가 국정 스타일의 변화를 재는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또,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특보단을 좌우에 앉도록 예우하며 “각 수석들과 긴밀히 협조하라”고 한 데 대해 비판했다. 특보들이 직접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수석들과 일을 하라고 하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자칫 잘못하면 특보가 수석비서관 위의 옥상옥이 될 수 있고, 특히 이명재 특보의 경우 우병우 민정수석과 짝을 맞추어 ‘검찰 다잡기’에 나설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될 거라는 우려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대통령이 굳이 회의 때만 비서동을 찾을 게 아니라 아예 참모들 방과 대통령이 방이 맞닿도록 촘촘한 구조로 집무실 배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대통령이 수석들과의 토론 내용을 공개하기로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토론 장면이 중계된다고 해서 불통 논란이 불식되는 건 아니다”라면서 대통령과 특보들 간의 대화가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 27일 사설.

<조선일보> 역시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이제라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쪽으로 변화를 시도한 것은 긍정적”이라면서 “문제는 이런 움직임에 대한 국민의 점수가 아직은 높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신년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문고리 비서관’ 들을 감싼데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인사와 조직개편을 여전히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각 부처 간부 인사는 물론 산하기관의 인사와 사소한 정책 결정 권한을 이양하고 야당과도 대화를 갖는 모습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보수언론의 이러한 스탠스를 보면 어떤 ‘곤란함’이 느껴진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뭔가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게 명백한 상황에서 이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스케일의 소박함에 마냥 칭찬만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과 문건 유출 사건의 여파가 큰 상황에서 겨우 이 정도의 그림으로 ‘언론플레이’를 시도하는 청와대와 정권에 대한 답답함도 반영됐을 것이다.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주목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행보’ 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연말정산 대란에 대해 사과하면서 지방교부세와 교육재정교부금에 대한 개혁을 시사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이 발언을 오늘 1면 톱에서 다루면서 “결국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 지원을 줄이는 ‘지방재정 쥐어짜기’를 통해 재정적자를 메우겠다는 뜻”이라면서 이런 해법은 지자체의 반발만 부를뿐 대규모 세수결손을 메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본격적인 증세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경향신문 27일 1면.

<한국일보> 역시 대통령의 이 발언을 1면 톱에 다루면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에도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상당수 지자체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사실상 도덕적 해이로 폄하하는 것이어서 적잖은 반발이 예상된다”며 “교부금의 상향조정을 요구하며 누리과정 예산 등에서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시도교육청의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일보>는 최근 고조된 ‘우회 증세’ 논란이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고집한 결과라며 향후 증세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겨레> 역시 2면에 관련 기사를 싣고 위의 두 신문과 유사한 논조를 펴고있다.

그러나 보수언론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해당 발언을 가볍게 다루고 있어 편집과 논조에 있어서 차이를 보였다. <중앙일보>는 6면 하단에 상대적으로 작게 박근혜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다룬 기사를 배치했다. <동아일보>는 5면 무상보육비를 줄이자는 취지의 기사 하단에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다룬 기사를 배치했다.전체 편집의 상태로 볼 때 특정한 맥락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아예 대통령의 이 발언을 3면 하단 <박 대통령, 담당 수석들에게 27분동안 질문 15개 던져>라는 작은 기사의 안에 넣어버렸다. 기사의 내용에서도 단지 발언했다는 사실만 전하고 있을뿐 교육청이나 야당의 반발은 반영돼있지 않다. 이래저래 합리적으로 대통령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수언론의 모습이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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