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일부 보수일간지에는 ‘다문화정책은 대한민국의 자살’이라는 전면광고가 버젓이 실렸다. 다문화정책을 인종주의적 시선에서 비판하면서 사실상 이주노동자와 이주아동을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광고에서 다문화정책이 아닌 다른 해법을 찾아보자며 “한국은 통일되거나 북한이 정상국가가 된다면 2300만 명이라는 인구를 추가로 확보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유입시키는 것에 혈안이 되지 않아도”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들은 다문화정책이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해 미래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추진 명분이었지만 실상 “고용 기업 외에는 경제적 손실이 크고 사회 갈등 비용까지 고려하면 더 큰 손실이 예상 된다”고 바라본다. 이렇듯 이들은 정부의 다문화정책을 노동력 확보와 비용 문제로 보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정부의 다문화정책이 결혼이주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동화주의적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인권운동의 시선과 다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들이 이렇게 공격적인 전면광고를 게재한 이유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이 국회에 발의되어 통과될까 우려돼서란다.

▲ 1월 19일자 동아일보 전면광고

이들이 광고에서 주장하는 이주민이나 이주아동의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논할 가치도 없을 정도이다. 그들은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불법체류노동자와 가족과 이들의 고용기업을 정부가 단속하고 이를 지원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규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허위사실도 게재했다. 국제인권기준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금방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이들은 거짓내용을 뻔뻔하게 게재했다.

오히려 협약의 전문에는 “미신고 또는 비정규적 상황하의 이주노동자는 종종 다른 노동자보다도 불리한 근로조건하에 고용되어 있으며,” “모든 이주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이 보다 광범위하게 승인된다면 비정규적 상황의 이주노동자의 고용에 의지하기가 단념될 것”이라고 명시되었다. 또한 협약 제29조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성명, 출생등록 및 국적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으며, 제30조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해당국의 국민과의 평등한 대우를 기초로 하여 교육을 받을 기본권을 가진다고 써 있다. (아쉽게도 한국은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뻔뻔하게 허위사실로 차별을 조장하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말해야 할 처지이다. 그들의 주장이나 논리가 정합성도 없고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주장이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행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담론이 시민들에게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에서 비판받고 있는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그들이 주장한「국적법 일부개정법률안」의 내용과 다르며, 사회적 약자를 챙기는 것은 국회의원의 임무이므로 이는 명백한 정치적 테러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실제 이들은 정치적 압력 행사를 해서 2007년과 2013년 「차별금지법」제정을 막았고, 작년 10월에는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발의한 「인권교육지원법」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해당 법안에 연명한 의원 사무실에 업무를 마비시키는 집단 항의 전화를 걸고 온라인 게시판을 반대 글로 도배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도 이들은 강남,북 권역별 토론회를 혐오발언이 난무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물리적 압박에 정치인들이 굴복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의 임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극우기독교와 보수 정치가 이끄는 혐오의 정치세력화

이러한 극우혐오세력은 에스더 기도운동본부와 같은 극우기독교세력을 한축으로 하고, 엄마부대 봉사단의 주옥순 대표의 이력처럼 뉴라이트 같은 보수정치단체가 한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성소수자, 이주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이거나,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정치세력(기득권세력)을 비판하는 운동이다. 엄마부대 봉사단을 비롯한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욕하고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에 반대하며 성소수자들을 공격한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주민을 공격하는 광고를 낸 단체 중 하나인 대한민국여성연합이 낸 <마녀사냥 언론 호들갑, 조현아 죽이기 그만하자!> 성명은 후자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우익인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약칭 재특회)이 처음에는 재일한국인(재일 조선인)만을 공격하다가 나중에는 원전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공격했던 것과 비슷하다. 이들은 원전반대운동을 좌익이 주도하는 국가파괴활동으로 보고 ‘원전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국민회의’를 만들어 좌익혐오를 주도했다. 인권운동 진영은 이들이 성소수자들을 혐오할 때 이들의 혐오가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갈 것임을, 단지 이들이 호모포비아들만이 아니라 사회를 우경화시키는 혐오의 정치를 이끄는 세력임을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혐오운동의 주축인 에스더기도운동(http://www.pray24.net/)은 스스로의 역사와 활동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거룩한 나라, 북한구원 통일한국, 선교한국’을 위해 기도하는 초교파 기도운동으로 2007년 1월 4일~6일, 7,000 에스더 단식 국가기도성회(장소: 오리최자실금식기도원)에서 3,000여 명의 기도자들이 모여 단식과 함께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운동을 주도적으로 했음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작년 11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동성애조장 국가인권위법 개정 백만인 서명운동’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 법 2조 3항의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지향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1년 8월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만든 인권보도준칙에 포함된 성소수자 관련 부분도 삭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정치화된 종교인 극우기독교세력들은 새누리당 의원들마저 쩔쩔맬 정도로 매우 조직적으로 세력화되고 있다.

국가(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인종주의와 혐오

국가인권위원회는 과거 “테러방지법 반대”(2002), 사상전향제도 개선요구(2002), 이라크전 파병 반대(2003), NEIS 인권침해 소지(2004), 동성애물 청소년노출 허용(2004년), 병역거부 인정(2005),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2006), 광우병 시위진압경찰 징계(2008), 군대내 동성애보장 의견제출(2010) 등 국가와 국민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선도한 기관으로, ‘인권’을 사회주의 이념 구현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왔다는 비판을 받는 곳이다.

-교육살리기운동연합에 실린 성명서 <유승민 의원의 ‘인권교육지원법’발의를 시민은 반대한다> 중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atrobas&logNo=220167656674)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작년 「인권교육지원법」안을 반대하는 성명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와 국민이익에 반하며 인권을 사회주의 이념구현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시로 든 사례들은 유엔자유권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에서 수없이 권고했던 인권현안들이다. 그들은 ‘인권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기에 이로부터 발생하는 인권침해에는 관심이 없다.

이들이 광고의 제목으로 삼았던 ‘대한민국의 자살’은 프랑스의 보수적 저널리스트 에릭 제무르가 쓴 ‘프랑스의 자살(Le Suicide français)’을 비유한 고에도 나왔듯이 에릭 제무르는 프랑스가 관용정책으로 이민자가 증가해서 프랑스가 망하고 있다고 보았다. 인종주의는 국가주의를 바탕에 두며 경제위기와 불안한 사회에서 증가한다. 2010년 한국인이 러시아 스킨헤드집단의 인종혐오주의로 구타 사망했던 일도 여기에 해당한다. 경제위기로 삶이 각박해질 때 그 증오와 분노는 쉽게 정부와 기득권 세력이 아닌 낯선 소수자들인 이방인-이주민에게 향하게 된다. 경제를 살리려면 이주민-외국인이 사라져야한다는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논리가 쉽게 수용된다. 정부는 이러한 인종혐오를 규제해야 하지만 오히려 경제위기에 대한 불만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부추긴다. 이것이 혐오의 정치가 확산될 수 있는 배경이다.

그런데 이들의 인종주의는 유럽의 인종주의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非)백인인 (가상의) 민족주의자(인종주의자)들은 모든 비(非)한국인을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 같은 빈곤국’에 의한 순수혈통주의의 훼손이다. 인종주의가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닮아있다.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이주민에 대한 공격을 꾸준히 해온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에는 미국 같은 백인들의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종종 올라온다. 이들이 이주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배경은 생물학적 순수혈통주의가 아니다. 푸코가 짚었듯이 현대의 인종주의는 하나의 인종(집단)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내부의 일탈적 성원들(성소수자, 에이즈감염인, 빈곤층, 반정부운동 등)을 공격하는 양상을 띤다. 이렇게 혐오의 정치와 인종주의는 만난다. ‘다문화정책반대 카페’에 있는 “주권국가의 국민들은 외국인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 이유 있고 정당한 혐오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글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흐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수단체가 동원한 사람들로만 봐서는 안 된다. 이들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탈자들인 사회적 소수자들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국가주의를 팽창시키고 있는 보수정권 아래에서 혐오의 정치는 성장하기 좋다.

혐오세력에 소수자들이 함께 맞서야

혐오세력과 인종주의가 커갈수록 우리 사회의 인권정책과 제도는 후퇴하고 인권담론은 왜곡되기 쉽다. 혐오는 다른 집단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다. 혐오는 때로는 호모포비아로, 제노포비아로, 때로는 좌익포비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뿌리는 같다. 작년 겨울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발호했다면 이제 이주민에 대한 혐오가 발호하고 있다. 따라서 인종주의에 맞선 싸움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 우리는 최근 독일 드레스덴에서 성소수자들이 보여준 인종주의 맞선 연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극우 성향 반이슬람단체인 페기다(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 약칭 PEGIDA)가 벌이는 월요시위가 세를 확대되자, 독일의 진보적 시민들은 ‘나치 없는 드레스덴’ 외치며 인종주의와 혐오선동에 맞선 집회를 벌였다. 이때 독일의 LGBT커뮤니티도 거리에 나와 함께 했다.

나아가 퇴행적 혐오운동에 맞서기 위해 경계를 넘나드는 연대의 기획을 세워야 할 때다. 평등과 인권의 정치라는 공론장을 만들고 그것을 정치적 힘으로 전화시켜 혐오의 정치를 중단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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