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빨리 ‘손 쓴’ 곳은 바로 언론이었다. 정권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언론을 좌지우지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KBS, MBC, YTN, <연합뉴스>까지 두루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냈다. 대통령 특보 출신이라는 점은 공공성과 공익성을 우선시해야 할 ‘공영방송’의 수장이 되는 데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다. ‘공영방송의 ‘인사’가 큰집(청와대)에서 쪼인트 까인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졌고, 보도전문채널 사장에게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에 돋보이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린 민간인 사찰 문건이 밝혀졌지만 정권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정권 출범부터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처리에 난항을 겪고 있던 지난해 3월 대국민 담화문을 내어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며 “이미 수많은 소셜 미디어들과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렇게 ‘순수성’을 강조했던 정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방송장악과 언론탄압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 공영방송 KBS와 MBC에서 일어난 일만 돌아봐도 박근혜 정권 하의 암울한 언론의 민낯을 엿볼 수 있다. <미디어스>는 기자들이 반성문을 올리고 이후 청와대 지시로 보도와 인사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사장이 ‘끌려 내려온’ KBS와, 종편보다 더 친정권적인 방송을 하면서 바른말 하려는 기자와 PD들을 내쫓은 MBC를 통해 공영방송의 현재를 짚어 보았다.

길환영 몰아낸 KBS,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 보다

KBS의 5월은 뜨거웠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세월호 희생자 수를 비교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 ‘항의방문’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최대 인력과 장비를 투입했다는 정부발 자료에만 의존한 채, 팽목항과 진도 체육관에서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비추지 않은 KBS에 분노해 있던 유가족들은 김시곤 전 국장의 발언에 대한 ‘사과’와 그의 사퇴를 원했다. 어버이날이었던 5월 8일의 일이었다.

그날 밤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길환영 전 사장은,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안고 청와대에서 밤샘농성을 진행한 후에야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길환영 전 사장은 9일 오후 3시께 “KBS로 인해 상처받은 유족 여러분께 사죄드리겠다”며 “돌아가면 보도국장 사표를 바로 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도국장의 사표수리를 약속했던 길환영 전 사장을 향해, 예상치 못한 폭탄발언이 나왔다. 김시곤 전 국장은 9일 오후 2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식견도 없이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일 오후 JTBC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는 “길 사장이 이번 세월호 사건뿐 아니라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했다”며 “길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다. 권력은 당연히 KBS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 지난 5월 19일, 길환영 전 사장 출근저지 당시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38기 기자들이 KBS 로고가 박힌 잠바를 입는 것조차 두려웠다며 세월호 보도에 대한 반성문을 쓴 이후 기수별 성명서가 끊이지 않았고, 김시곤 전 국장의 폭로가 나온 당일 KBS기자협회는 처음으로 ‘길환영 퇴진’ 구호를 꺼냈다. 보도본부 부장단이 보직사퇴를 감행했고, KBS기자협회는 19일부터 제작거부를 시작했다. 20분짜리 ‘파행 뉴스’가 속출했고 기자들은 거리로 나갔으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KBS노동조합은 양대 노조 체제 이후 처음으로 힘을 합쳐 파업을 벌여 ‘길환영 퇴진’과 ‘KBS 정상화’를 외쳤다.

길환영 전 사장은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 동문인 백운기 씨를 보도국장으로 앉히고, 회삿돈을 들여 종합일간지에 해명 광고를 싣는 한편, 자신의 사퇴를 주장한 보도본부 부장단을 지역으로 내려보내는 보복인사를 단행하며 버텼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KBS이사회는 7:4로 해임제청안을 가결했고, 청와대는 해임제청안 제출 하루 만에 길환영 전 사장을 신속히 해임했다. KBS 길환영 퇴진 투쟁은 내부 폭로와 직종과 보직을 막론한 노동자들의 단합으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또한 KBS는 7월 28일 조대현 사장이 보궐사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문창극 망언’ 보도는 각종 기자상을 휩쓸었다. 윤 일병 사태 단독보도를 비롯해 밀양 송전탑,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등 평소 ‘금기’와도 같았던 아이템이 KBS뉴스에서 방송됐다. 국내 재벌들의 해외 자산 은닉 시도를 파헤친 <시사기획 창> ‘회장님의 미국땅’, 수원대 사학비리와 대구 황산테러 사건을 다룬 <추적60분>의 보도도 빛났다.

조대현 체제 이후 KBS에서는 정윤회 문건 늑장·축소보도 등 다시 관성적인 보도가 나온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조대현 사장은 길환영 퇴진투쟁에 나섰던 직능협회장과 간부들에게 징계를 내려 ‘5월의 싸움’을 퇴색시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 시작돼 언론계 전반의 연대를 이끌어낸 파업으로 문제인물을 끌어내리고 방송으로서도 존재 가치를 되새긴 KBS의 봄날이, ‘KBS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중요한 사례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길환영 사장이 해임된 후 방송된 KBS <뉴스9>와 시사 프로그램

기적에 기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은 ‘MBC 정상화’

한때 마봉춘이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리며 사랑받았던 MBC는 ‘유사 종편’ 혹은 종편보다 더 친정권적인 방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웃인 KBS가 뜨거운 5월을 보낸 후 ‘잠깐의 봄날’이라도 맛봤다면, MBC는 여전히 어둡고 혹독하며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

▲ 지난 5월 26일 업무방해공판에서 승리한 후 MBC노조 전임 집행부와 신인수 변호사가 기뻐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MBC의 몰락을 감지할 수 있는 신호가 너무나 다종다양해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실 올 한 해 MBC에게 비극만 벌어진 것은 아니다. 법원은 올해 1월 지난 2012년 김재철 퇴진 및 공정방송 쟁취를 내걸고 170일 파업에 나섰던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노조)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언론종사자에게 ‘공정방송은 제1조건’이라는 유의미한 판례를 남겼다. 법원은 잇따라 MBC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MBC노조에 19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건 MBC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고, 지난 5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업무방해 공판에서도 쟁점이 됐던 MBC노조의 ‘업무방해’는 무죄라고 선고했다.

김재철 전 사장 체제에서 숱하게 일어났던 부당 전보 및 정직에 대해서도 법원은 잇따라 ‘부당했다’는 답을 내렸다. MBC가 MBC노조의 파업이 정당했다는 1심 판결 후에도 해직자들을 방치하자, MBC노조는 근로자 지위 보전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인용해 해직자들 복직을 명했다.

문제는 강경하고 꼿꼿한 MBC의 태도다. MBC는 자사 메인뉴스에서 <언론사 파업, 공정성 내걸면 합법? 논란 부른 판결>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내 법원의 결정에 딴지를 걸었다. 해직자들은 이렇다 할 업무도 받지 못한 채 일산MBC 201호로 나가고 있다. 파업 참가자를 최대한 배제하고, 데스크급 기자까지 외부에서 수혈해 빈자리를 채웠다. 법원 판단을 수용하지도 이행하지도 않으려는 MBC와 MBC의 인사와 징계의 부당함을 법적으로 확인받기 위한 MBC노조의 법정공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민간잠수부의 죽음을 세월호 유가족 탓으로 돌렸던 5월 7일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MBC 기자들 스스로 ‘보도 참사’라고 할 만큼 불공정보도는 더 잦아졌고 한층 더 편향적으로 변했다. 민간잠수사의 죽음을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의 조급증 탓으로 몰았던 리포트를 시작으로, 유가족이 발의한 법안에는 있지도 않은 의사자 지정 및 배상금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보도 등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를 폄훼하고 왜곡하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해 왔다. 최근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두고는 ‘반기업 정서는 안 된다’며 훈수를 뒀다. 자사 보도자료를 베낀 인터넷 기사를 그대로 받아 ‘오보’를 내 비웃음의 대상이 된 것은 덤이다.

반면 정권이 민감해 하는 보도에는 누구보다 몸을 낮췄다. ‘MBC뉴스만 봐서는 정윤회 문건 파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자조가 나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자사 보도의 잘된 점을 칭찬하고 한계를 비판하는 MBC노조 민실위 보고서는 보도국에 아예 리포트 작성의 기본 원칙을 알려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MBC는 지난 10월 조직개편과 인사를 단행하며 ‘회복불능’의 정점을 찍었다. 김재철 사장 때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쪼개진 시사교양국은 안광한 사장 들어 아예 자취를 감추게 됐다. 30년 전통의 교양제작국이 사라졌고 예능1국과 협력제작국 아래의 ‘부서’로 전락했다. 한학수, 이우환, 이춘근, 조능희 등 <PD수첩> 출신 PD뿐 아니라 20년차 부장급과 젊은 기자들까지 제작현장에서 쫓겨났다. MBC는 12명의 교육발령자들을 농군학교에 보내려다 안팎의 거센 비난으로 일정을 철회하기도 했다.

▲ 지난 10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교양제작국 해체를 비판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인사권을 무기로 회사에 비판적인 구성원들을 찍어내는 강력한 MBC 앞에, MBC 문제점을 지적하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건강한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외부 언론과의 전화통화조차 회사 허락을 받아야 가능한, 언로가 틀어막힌 MBC에서는 한 줄기 빛조차 발견하기 요원하다. 최장기 파업 이후 기약 없는 고난의 세월을 보낸 MBC노조도 내부 동력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결국 밖에서 나섰다. 언론·문화·예술·노동계 등 40여개 단체가 모인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MBC 정상화를 대신 외치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지난 23일 공대위가 주최한 <해직언론인 복직 기원 연대의 밤>에서 나온 일갈은 ‘답 없는’ MBC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2012년 MBC에서 정년퇴직한 최용익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공동대표는 “후배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도 알고, MBC가 이미 조직적으로 파괴된 현실을 잘 안다”면서도 “저는 MBC 출신이지만 이런 식의 MBC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MBC의 몰락은 이미 수치로도 입증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진행한 <창립5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MBC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0.7%에 그쳤다. KBS(12.9%), JTBC(7.9%), YTN(4.8%), SBS(2.5%) 등 주요 방송사에 한참 못 미치는 순위였다. 시사IN 조사에서는 신뢰한다는 응답(5.9%)보다 불신한다는 응답(6.8%)이 높았다. 미디어미래연구소의 2014 미디어어워드에서는 신뢰성, 공정성, 유용성 어떤 부문에서도 10위권 내에 순위를 올리지 못했다.

김재철 전 사장 이후 MBC 경영진들은 매우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봉춘으로 사랑받았던 자신들의 과거를 ‘좌편향됐던 시기’라고 부정하며 지금이 더 공정한 방송을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불공정보도와 인사 전횡을 지적하는 ‘보기 싫은’ 구성원들을 유배 보내거나 징계한다. 외부에서 나오는 비판은 철저히 무시한다. ‘MBC 조직개편, 인사에 왜 온 동네가 시끄러운지 모르겠다’거나 ‘노영방송이 그리운 진보단체’라고 맞받으면 그만이다. 내년이라고 달라질까. 안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

언론노조는 <연대의 밤> 행사를 전하며 “산타할아버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썼다. 내부 개혁도, 정권 교체도 먼 상황에서 MBC를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오직 ‘기적’만이 필요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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