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만 신났다”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과 관련한 국회 마비 상태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KT규제법’이라고 일컬어지던 유료방송 합산규제법의 12월 임시국회 처리가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사실상’이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는 새누리당이 야당의 요구대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부르는 국회 운영위원회 개최에 합의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새누리당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리 만무하기에 현실적으론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무산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홍문종, 이하 미방위)는 17일 오전9시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담은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전병헌 의원)과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홍문종 의원)을 심의하고 2시 상임위를 열어 의결할 계획이었다. 국회 안팎에서는 29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졌다. 그렇지만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이 기어이 발목을 잡았다.

▲ 12월 17일 오전 9시 미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유료방송 합산규제법안을 심의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미디어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춘 불러야”…새누리당, “진실 밝히는 건 검찰 몫”

새정치민주연합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출석하는 국회 운영위원회를 개최를 요구하며 전 상임위 일정을 보이콧했다. 이날 오전 새정치민주연합은 <비선실세 국정농단과 청와대의 검찰수사 외압 규탄 결의문>을 채택했다. 요구안은 △청와대 하청 수사 중단, △의혹해소를 위한 운영위 소집 및 청문회 개최, △김기춘 비서시래장과 이재만·정성호·안봉근 '문고리 권력 3인방' 사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수용 등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정윤회게이트, 청와대 비서라인의 십상시 게이트”라며 “그런데 (대통령비서실 소관)국회 운영위를 하지 않고 무슨 국회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서 원내대변인은 “(국회에)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 최 경위를 죽음으로 몰고 한 경위를 회유했다고 이야기 나오는 민정수석, 민정비서관실 모두 나와야 한다”며 “운영위를 열지 말고 다른 상임위만 여는 일은 국회 사상 없었다”고 비판했다.

반면,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 운영위 소집에 응해주지 않는다면 전체 상임위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며 “힘들게 얻은 귀중한 임시국회 시간을 허투루 허비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권 대변인은 “진실을 밝히는 일은 검찰의 몫이다.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실규명 운운하는 것은 ‘국회실세 의정농단’”이라고 주장했다. 권 대변인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제활성화 민생안전 법안을 볼모로 정략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국회 미방위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가 무산됐다. 17일 이후 새누리당 소속 미방위 홍문종 위원장을 비롯해 권은희·류지영·배덕광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장병완·정호준·최원식 의원이 IT기업 방문을 목적으로 중국 출장이 잡혀 있다. 여야 합의로 확정됐던 오늘(17일)이 아니면 본회의가 잡힌 29일 전까지 유료방송 합산규제법 처리는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임시국회 무산되면 새누리당이 곤란”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방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 중에서는 ‘유료방송 합산규제법’ 처리를 위해 상임위를 열어야 하다는 입장을 가진 의원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검찰이 청와대가 고지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윤회 문건' 수사결과를 내놓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야당의 단합된 행동이 필요하다는 데에 입장을 같이 하며 물러선 것으로 전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한 관계자는 “국회 운영위 또한 법안심사를 하고 법률을 처리해야하기 때문이라도 회의를 열어야 하는 게 맞는 게 아니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거부하는 이유는 비선실세 이야기가 주되게 나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원 등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미방위 차원에서는 물론 상임위를 열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분들도 있는 건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당 차원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12월 임시국회가 무산되면 손해는 새누리당이 볼 수밖에 없다”며 “결국에는 새누리당이 국회 운영위 개최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당초 30여개 경제활성화 및 민생법안의 ‘연내 처리’를 추진했었다. 29일 본회의가 무산될 경우 더 곤란하게 되는 쪽은 새누리당이라는 얘기다. 비선실세 의혹을 새누리당이 '방어'할 경우, 새누리당에게도 불리할 것이기에 상황이 반전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계산도 있다.

물론, 유료방송 합산규제법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아직 시간이 있다는 입장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KT가 1/3 규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100만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며 “물론, KT의 가입자 상승폭이 크긴 하지만 다른 유료방송사업자들도 영업을 같이 할 것이기 때문에 당장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보고 있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다. 아직은 여유가 있기에 비록 이번에 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최성준 위원장 또한 지난 국회에서 “KT가 1/3규제(33%)를 받기까지는 100만 가입자 여유가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문제는 역시 시간이다. KT가 결합상품을 활용한 공세적인 영업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느냐는 명확치 않다. 다시 공은 새누리당에게 돌아갔다. 새누리당 미방위원들은 위원장인 홍문종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유료방송 합산규제법 처리에 미온적이다. 야당의 ‘상임위 보이콧’이 내심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끝까지 시간이 새누리당의 편일까? 청와대 비선실세의 인사개입은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의혹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로 만들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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