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관련 기사가 포털 메인 기사로 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헌데 16일 저녁 온라인 연예 뉴스를 뜨겁게 만든 뮤지컬계 소식이 하나 있었다.

뮤지컬에 아이돌 캐스팅이 한둘이 아닌지라 아이돌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는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임태경이 추가로 캐스팅되고, <킹키부츠>에 지현우가 추가 합류하고, 규현과 양요섭이 <로빈훗>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 정도로는 포털 메인기사에 오르기 쉽지 않은 것.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시작은 원미솔 음악감독의 페이스북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 2014 지킬앤하이드 조승우 ⓒ오디뮤지컬컴퍼니
"늘 그렇듯 매니아들이 많이 모인다는 게시판 사이트에는 내 욕이 들끓었다. 뭐 괜찮았다. 배우가 살아야 나도 살 거 아닌가. 어제 승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오늘 그의 낮 공연에 적용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곡을 끝내고 그(조승우)가 나를 쳐다봤다. 인터미션에 만나서 들었는데 '고마워서'라고 했다. 그런데 조승우가 너무 열 받아서 원미솔을 째려봤다는 글이 오르며 조회수며 쌍욕 댓글이 폭주했다. 이건 정말 웃기다 싶어 승우에게 보내줬는데 그의 반응 또한 전하고 싶지 않다"

페이스북의 글만 보면 조승우가 원미솔 음악감독을 쳐다본 게 누군가에게 째려본 것으로 오해된 것 같다. 하지만 사단은 원미솔의 글에 대한 뮤지컬 팬의 항의글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지점까지만 보면 포털 메인을 장식할 만한 수준의 이슈도 아니었다.

공연무대장치 관계자의, 뮤지컬 팬을 비난하는 원색적인 글이 사태에 기름을 부었다. 아래는 공연무대장치 관계자 가운데 한 명이 남긴 글이다.

"욕하고 인신공격하는 관객은 관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작품을 즐길 줄도 모르는 그냥 양아치들, 자기네들은 모르겠지만 매출 올려주는 봉이기도 하다"

그는 감정적인 부분을 넘어서서 뮤지컬을 사랑하는 팬들을 향해 ‘양아치’, ‘봉’으로 격하게 비하했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관객이 찾아주지 않으면 공연은 적자를 내거나 망하게 되어 있다. 관객들이 뮤지컬을 관람하기 위해 십만 원이 넘는 티켓비를 지불해야, 배우는 물론이고 스태프도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소지가 된 글을 남긴 공연 스태프는 자신의 월급의 원천이 되는 유료 티켓비를 지불하는 관객을 향해 “매출 올려주는 봉”이라고 표현했다.

뮤지컬 관객을 ‘호갱님’으로 격하시킨 이 글에 분노하지 않은 뮤지컬 팬은 없을 터. 이에 <지킬앤하이드>의 제작사 오디뮤지컬컴퍼니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SNS상에서, 일부 스태프들의 예의에 어긋나는 지나친 표현으로 발생한 논란으로 인해,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아껴주시는 많은 관객 분들께 커다란 걱정과 실망을 안겨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라는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상황을 사태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노벨상 수상자 제임스 왓슨은 2007년 영국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흑인은 백인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언급했다. 그 결과 그는 재직하던 연구소에서 인종차별 발언으로 쫓겨난 건 물론이고, 일체의 강의 섭외가 들어오지 않아 자신이 받은 노벨상을 경매에 내놓아야 했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노벨상 수상자도 설화에 시달리면 수습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공연 관계자의 이번 SNS 실언은 뮤지컬 팬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수준을 넘어서서, 집단 보이콧을 걱정해야 할 엄청난 상황에 직면했다. 공연을 사랑해서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는 관객을 ‘봉’으로 착각하는 공연 관계자의 글은, 뮤지컬 팬을 향한 공격적인 발언 수위를 넘어서서 절대로 하면 안 될 발언을 감정에 휩쓸려 했기에 그렇다.

뮤지컬계의 설화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뮤지컬배우 백민정은 “사인회 싫어, 공연 끝나고 피곤한데 방긋 웃음 지으며 ‘재미있게 보셨어요? 성함이?’ 방실방실 얼굴 근육에 경련 난다고. 아이고 귀찮다”라는 글을 SNS에 남겼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뮤지컬 배우 이산(본명:이용근)은 지난 8월 고(故) 김유민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의 40일 단식을 조롱하며 “‘유민이 아빠라는 자’야!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니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라는 맨션을 남겼다가 누리꾼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다.

SNS에 뒷감당하지 못할 글을 남길 위험이 높다면 성시경의 발언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연예인은 SNS를 안 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성시경이나 이승기가 SNS를 몰라서 안 하겠는가. SNS의 위험이 유익함보다 더 크다는 것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안 한다는 것을, 이번 사태의 당사자들은 깨닫기를 바란다. 깨진 장독대를 수습하는 것보다는, 장독대를 아예 깨뜨리지 않는 편이 중요하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