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지난 13일 고향 집 인근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널리 보도된 15일 아침 보수언론의 청와대 비판의 수위가 높아졌다. 최 경위는 지난 9일 검찰에 체포됐다가 12일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돼 풀려났으나 검찰은 재차 구속영장을 신청해 압박한 바 있다.

▲ 15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정윤회 문건’ 정국 언론보도를 둘러싼 보수언론끼리의 미묘한 신경전도 있었다. 14일 <채널A>가 최모 경위의 유서에 <조선일보> 기자에 대한 원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자 14일 오후 <조선일보>는 “최 경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 대해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조의를 표한다”면서 “본지가 그동안 보도한 최 경위의 (문건) 유출 관련 혐의 내용은 검찰로부터 확인된 취재 내용이거나 구속영장에 적시된 내용으로, 이는 타 언론들도 보도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15일자 <동아일보> 3면엔 이와 같은 정황을 묶어서 보도한 <崔경위 “조선일보가 주범으로 몰고가 힘들어”>란 기사가 실렸다. ‘정윤회 문건’ 정국에서 <동아일보>는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에 비해 초기에 미온적인 대처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조중동’ 역시 청와대가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인사조치는 검토도 하지 않고 검찰수사만 기다리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5일 <조선일보>는 <갈수록 꼬이는 靑 문건 파문, 人事 쇄신 서둘러 해답 찾아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최 경위의 자살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검찰 수사가 곤혹스러운 국면에 접어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오히려 대통령·여당이 문건을 '허위'라고 몰아세운 것이 검찰 수사에 지침(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는 의혹만 키운 꼴이 됐다”라고 주장하면서, 최모 경위 자살 이후 “문건의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이 사건을 계속 끌고가려는 정치적 동력(動力)이 한층 강화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조선일보> 사설은 “문건의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이 사건을 계속 끌고가려는 정치적 동력(動力)이 한층 강화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새누리당에서까지 국정 농단이란 뒷말이 끊이지 않았던 '문고리 3인방'은 물론 청와대 내부 기강(紀綱)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퇴진이 쇄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들을 감싸고도는 한 어떤 인사를 단행하고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의혹이 해소되기 어렵다. 결단성 있는 쇄신 인사를 통해 보름밖에 남지 않은 임기 3년 차의 문을 열어야 한다”라며 김기춘과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쇄신 인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서 청와대의 입장을 가장 많이 대변했던 <중앙일보> 역시 15일 “이러니 짜맞추기 수사 소리 듣는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검찰 수사와 청와대의 의중을 비판했다. <중앙일보> 사설은 “검찰은 우선 최 경위의 유서에서 제기된 입맞추기 수사 의혹부터 시원하게 밝히는 게 순서다. 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민정비서관실의 제의’가 무엇이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선 짜맞추기 수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비판했다.
▲ 15일자 중앙일보 5면 기사
또 <중앙일보> 사설은 “며칠 전에도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 유출에 대한 자체 감찰 결과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라면서, “청와대의 이런 행태는 도를 넘는 월권행위이자 진행 중인 사건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주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칫 정윤회씨 등 비선(秘線) 실세들의 국정개입 의혹이란 사건의 본질을 희석해 조 전 비서관, 박 경정 등이 주도한 허위 문건사건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처럼 청와대 인사 쇄신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문건에 적힌 실세들의 국정 개입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게 본질이자 핵심”임을 검찰에 요구하는 선에서 그쳤다.
같은 날 <동아일보> 역시 <중앙일보>와 비슷한 수위로 “이재만 특별 대우한 검찰 ‘국정 개입’ 규명할 의지 있나”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검찰이 최 경위를 지나치게 압박한 것이 자살의 한 원인이 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라면서, “수사 과정에서 최 경위와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검찰은 철저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정윤회 씨와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의혹 수사에 대해 “이들이 국정 개입을 한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 힘들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는 문건 유출 수사와는 대조적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이재만 총무비서관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그는 사전 조율을 통해 취재진이 기다리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검찰 청사로 들어갔다. 검찰이 특별히 신경을 써준 덕분이다. 이런 대우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대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부추길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 15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
이어서 <동아일보> 사설은 “이런 식으로 가면 검찰의 수사 결과에 불신을 초래해 국정조사와 특별검사를 부를 수밖에 없다”라며 야당의 주장을 일정 부분 대변했다.
‘정윤회 문건’ 정국이 확산되면서 보수언론의 청와대 비판 수위가 진보언론의 그것에 비등해졌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특히 임기 3년차를 걱정하며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둔 듯한 <조선일보>가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 퇴진론을 적극 제기하기 시작한 상황은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태도가 완고하다는 바로 그 사실이, 보수언론들의 ‘위기론’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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