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희가, 클라라 양이 분한 역할인 난희가 신상품 티팬티라고. 진동이 있는 팬티를 테스트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나도 고마운 얘기라 말씀 드리는 건데.”

방송인 클라라가 영화 ‘워킹걸’로 본격적인 영화배우 데뷔를 선언한 뒤 네티즌의 화제가 된 첫 기사 헤드라인이 정말 가관이었다. ‘워킹걸 감독 “클라라, 성인용품 빌려가더니 신음소리 녹음해와.”

남편과의 섹스보다 업무성과가 좋을 때 쾌감을 느끼는 어느 워커홀릭 커리어우먼이 이별 통보를 당하고 섹스샵 오너이자 엔조이 세계의 전도사인 난희를 만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은밀한 이야기. 영화 ‘워킹걸’, 이 작품에서 클라라는 조여정과 더불어 성인용품 CEO인 주인공 ‘난희’ 역을 맡았다.

<전날 저는 많이 고민을 했죠. 왜냐면은 어쨌든 실제로 그건 있지는 않아요. 그냥 그러니까 영화적으로 고안해낸 장치니까요. 그런데 본인이 그 진동에 맞춰서 어떤 식으로든지 느낌을 느끼는 연기를 해주셔야 되는데 그걸… 어떻게 이걸 해야 될까. 이걸 어떻게든지 찍어야 되는데. (고민하는 와중에) 그런데 그 전날 저한테 오시더니 저희가 (성인용품 소재의) 영화를 찍다보니까 소품으로 그런 (성인 기구들이) 많이 있잖아요. 어느 한 기구를 빌려가도 되겠냐고. 그래서 그거를 빌려 가셨어요.>

갖은 성인용품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고안한 ‘진동 티팬티’를 입고 오르가즘을 느끼는 신을 연출해야 하는 감독의 고민이 무색하게, 클라라 본인이 성인 용품을 빌려가도 되겠냐고 묻고 다음날 이 기구를 사용해서 신음소리를 녹음해 왔더라는 말을 참 해맑게 하더라는 클라라와의 일화를 감독은 제작 보고회 현장에서 역시나 참 해맑게 얘기했다. 그 당사자를 한 치 건너 두 치 옆에 앉혀두고서 말이다.

최근 손예진이 영화 ‘해적’으로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해적을 본 나로선 그저 무난한 연기라고 생각했기에 이 결과를 얻은 것은 그녀의 연기가 아니라 여자 해적으로 분해 험상궂은 액션을 해야 했던 그녀의 고생을 치하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소감 또한 고생의 노고로 채워졌고. 이처럼 영화는 여배우의 노출이나 고생에 너그러워서 클라라의 헐벗은 고생 또한 불타는 연기 열정이라 극찬받아 마땅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낀 감정은 그저 불편함에 가까웠다. 이런 은밀하고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대중에게 노출시켜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용해야 했을까 싶었던 거다.

고백하건데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클라라 본인 또한 이 민망한 미덕을 공개하는 데 동의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다. 클라라는 야한 것에 별반 쑥스러움을 타지 않는 캐릭터로 굳어졌었고 그 누구보다 화제를 즐기는 사람이었으니까. 방송인으로서 별반 정체성 없이 노출에 의한 노이즈로 인지도를 쌓고 있던 그녀였기에 나는 다소 시건방진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Q : 성인숍 CEO 촬영 중 민망했던 점은?

조여정 : 민망해하지 않던데?
클라라 : 민망해… 저는 민망하지 않았어요.
조여정 : 정말 사랑스러운 게 난희 그 자체예요. 클라라가.

하지만 해당 일자에 녹화된 영상 속에서, 감독이 내뱉는 신음 소리나 오르가즘 등등의 단어가 터질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해하다 급기야 울 것 같은 얼굴이 된 클라라를 보고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내 불건전한 생각이 죄스러워질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서글펐다. 바로 이전에 ‘성인숍 CEO 촬영 중 민망했던 점은?’ 없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을 그토록 해맑고 당차게 받아치던 클라라의 모습이 어디 갔나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다음날 찍는 날 오셨어요. 아침에. 촬영을 해야 되는데 저는 저대로 나름의 그냥 안무를 짜는.… 저희는 안무라고 얘기를 하는데 몸의 움직임을. 안무를 짜놓은 상태였는데 그 안무를 말씀을 드리는 것도 제가 다리를 꼬고 다 시연을 해야 되니까 이걸 또 어떻게 시연을 해야 될까. 단둘이 방에서 그 분장실 같은 공간에서 얘기를 하는데, 감독님 제가 그 기구를 써봤다구. 너무 해맑거든요.

몸의 움직임도 중요한 것처럼. 이게 뮤지컬처럼. 노래처럼 신음 소리도 나와야 되는 거다 보니까 그걸 본인이 핸드폰으로 녹음을 해 오신 거예요. 그러더니 이 소리를 감독님이 한번 컨펌을 해달라고 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2위로 뽑히신 분과 공간 안에서 전화기 앞에서 소리를 듣고 있는데. 어떠세요? 이러면 저는 그냥 듣고 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잘하셔서. 이건 흥분 상태가 아니라 패닉 상태가 되더라고요.>

▲ 배우 조여정과 클라라가 9일 오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워킹걸’(감독 정범식)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 News1
클라라는 프로였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가시 방석에 앉은 것처럼 좌불안석한 포즈와 타오르는 얼굴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수치심을 느끼는 표정이 얼마나 지금 상황이 곤혹스러운가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영화 개봉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감독의 입을 틀어막진 못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친구를 옆에 두고 철없이 무용담을 떠들어대는 사람처럼 감독의 발언 수위는 점차 과감해졌다.

<제가 짰던 안무를 말씀을 드리고 본인이 연구 해 오신 사운드와 매칭을 시켜가지고. 어떻게 보면 오르가즘을 느끼는 신이예요. 저희 영화 속에서 되게 독특한 신인데. 많은 남성분들이 매혹될 수 있는 충분한 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장면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둘만 있는 공간에서도 제대로 시연을 해보이지 못했을 만큼 자신조차 상황의 수위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많은 이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여배우의 은밀한 노력을 ‘고생 치하’랍시고 퍼뜨리는 감독에게 일말의 배려란 없었다. 마지막에 급기야 울음을 참는 것 같은 얼굴이 된 클라라는 내가 그녀를 본 몇 년간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어 더 가슴이 아팠다.

해당 사건이 터지고 배우의 수치심은 고려조차 하지 않은 감독의 배려 없는 행동을 질타하는 의견이 쏟아졌으나 이 와중에 클라라의 평소 행실을 꾸짖는 사람 또한 적지 않아 더 화가 났다. 분명 클라라는 개의치 않고 노출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본인이 의도하여 공개했던 야한 의상과 사전 동의 없이 타인에 의해 공개된 은밀한 사생활을 같은 범주에 두고 꾸짖을 수 있는가. 감독 또한 그 터부시되는 분위기를 알고 있기에 그토록 요구하는 것을 민망해하고 클라라만을 따로 불러 상황을 논의하는 조심성을 가졌던 것 아닌가?

▲ 클라라 © News1
어차피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될 얘기였다면 왜 감독은 다른 사람이 없는 공간에 클라라와 단 둘이서 해당 사안을 논의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밀히 클라라의 캐릭터와 영화의 성격을 이해하는 제작진이 모인 공간에서는 그토록 민감해하며 조심스러워하다가 정작 감추어주어야 할 상황에서 실종되어버린 여배우를 위한 배려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저는 배우가 그 역할과 상황을 남자 감독인데 이렇게 오픈해서 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돼요.”

짓궂은 놀림에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여고생의 얼굴이 된 클라라를 두고, 이것을 선정적인 노이즈 마케팅이 아닌 배우의 연기 혼으로 포장하여 칭찬해준 동료 배우 김태우의 덤덤한 한마디가 클라라가 배려 받은 유일한 순간이었다.

드라마와 예능 연예계 핫이슈 모든 문화에 대한 어설픈 리뷰 http://doctorcall.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