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 나는 네가 좋구나. 파란 머리 천사 만날 때는 나도 데려가 주렴. 피아노 치고 미술도 하고 영어도 하면 바쁜데 너는 언제나 놀기만 하니. 말썽쟁이 피노키오야. 우리 아빠 꿈속에 오늘 밤에 나타나 내 얘기 좀 잘해줄 수 없겠니. 피노키오 줄타기. 꼭두각시 줄타기. 그런 아이 되지 않게 해줄래?” 동요 <피노키오> 중에서

정식 명칭은 <피노키오의 모험 (Le adventure di Pinocchio)>이라고 한다. 선량한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가 정성껏 깎아 만든 나무 인형에 파란 머리 천사가 혼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것이 되게 했다. 그쯤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이 살아 움직이는 나무 인형은 태초의 인간 아닌 대다수의 피조물이 그러하듯이 굳이 사람이 되고 싶다 간청한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닌, 동화에서 모티브만을 빌려와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이 더 매력적인 케이스가 있다. 목소리를 넘기고 인간의 다리를 얻게 된 인어공주의 비극을 도리어 절뚝거리는 다리로 승화해 왕자님을 곁에 묶어둔 만화 ‘인어공주를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영화 ‘A. I’. 또한 현대판 피노키오의 역작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 수작으로 다가서는 동화 모티브의 드라마가 있다. 이종석, 박신혜 주연의 수목 드라마 ‘피노키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대신 딸꾹질을 하는 소녀 최인하(박신혜 분)와 ‘피노키오 증후군’의 트라우마가 있는 소년 최달포(이종석 분)의 진실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 피노키오는 로맨틱 코미디를 가장한 서스펜스 휴먼 드라마다.

고백하자면 소재만 듣고 선 얕잡아 봤던 게 사실이다.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이 나오는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니. 일본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가볍게 보는 재미의 판타지 미니 시리즈가 아닐까 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곧 이 작품을 선택한 이가 다름 아닌 믿고 보는 이종석이라는 사실과 작가 또한 이종석, 이보영에게 ‘믿고 보는’의 수식어를 안겨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이 이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그 믿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마음이 들키는 사람을 소재로 다룬 작품의 전개는 줄곧 ‘비밀’로 흘러갔다. 감추고 싶어 발설하지 않는 속내나 내 은밀한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감당해야 할 수치심과 자괴감을 견딜 수가 없기에. 사토라레는 자살 방지를 위해 나라 차원에서 주변인들의 입단속을 시켰고, 트루먼은 오로지 시청자의 유희를 위해 세상에 발가벗겨진 채 내버려졌다.

드라마 피노키오가 흥미로운 것은 진실을 말하는 입을 딱히 은폐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노키오 증후군은 드라마 초반 퀴즈쇼에 등장할 정도로 국민 모두가 인식하는 실제 증상이고 당사자 최인하가 같은 증후군을 겪고 있는데도 딱히 여주인공의 비극인 양 쉬쉬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장르가 코믹 만화인가 헷갈릴 정도의 유쾌한 분위기에서 남주인공 달포는 여주인공의 증상을 공론화하고 최인하 또한 명랑만화처럼 으르렁댄다.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여주인공 최인하의 성격이다. 기존 작품에서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가상의 소재를 다룬다면 어디까지나 엄폐된 분위기에서 전개가 진행될 것이다. 피노키오 증후군은 여주인공의 극단적인 핸디캡이고 그것이 공론화되는 것은 작품의 클라이맥스 즈음에야 가능했으리라. 여주인공은 불에 덴 듯 놀랄 테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좌절했을 것이다.

"최달포 군은 피노키오 증후군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아, 그래요? 보통 피노키오들은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나서 말을 안 하고 또 대인기피증도 생긴다고 그러던데, 맞습니까?" "제가 아는 친구는 보통 피노키오들하고는 다릅니다. 완전 반대예요. 말이 아주 많아요. 하는 족족 막말이라 별명이 막말마녀입니다."

하지만 피노키오의 최인하는 자신의 증상을 굳이 감추려 끙끙대지 않는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곧 딸꾹거린다. 딸꾹질을 하지 않으려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할 말 다하는 성격 탓에 오죽하면 별명이 ‘막말 마녀’인 최인하. 여느 드라마였더라면 농아인 척 연기하는 여주인공의 비밀이 반전 포인트 아래 한동안 전개되지 않았을까.

여주인공의 특이한 캐릭터는 특수한 사연을 가진 소년 최달포와 맞닥뜨리며 서스펜스로 진화된다. 그의 이름이 ‘하명’이었던 시절에 이웃으로 살던 청년의 ‘기호상(정인기 분, 하명의 아버지)을 봤다.’는 증언은 가난하지만 하명일 수 있어 행복했던 그의 삶을 망가뜨렸다.

수많은 소방대원의 목숨을 앗아간 폐기물 처리공장 화재 사건. 소방대장인 하명의 아버지 기호상은 야욕으로 동료들의 목숨을 잃게 하고 홀로 사고에서 도망친 최악의 인간형이 되어버렸다. 기자들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를 무참히 난도질했고 모든 사람은 아버지의 죄를 믿었다. 그것은 증언을 했던 이웃 사람 또한 여주인공과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피노키오였기 때문이다.

피노키오 증후군은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이 나는 증상이다. 곧 피노키오 증후군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딸꾹질이 없었던 이웃 사람의 증언은 사실이다. 이것은 피노키오 증후군 또한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에 ‘착각’해서 ‘실수’할 수 있다는 대전제를 빼놓은 결론이었다. 이웃 사람은 분명 자신이 목격한 것이 기호상이라고 확신했기에 위증한 것은 아니지만, 닮은 사람을 착각해 대중을 움직였다. 그의 실수는 결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한 가정을 파탄 나게 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야죠. 그걸 모른 게 그들의 잘못입니다. 그 경솔함이 한 가족을 박살냈어요.”

달포, 아니 하명의 외침은 곧 대중을 부추기는 힘, 무한의 신뢰도를 가진 언론을 향한다.

<피노키오 증후군은 거짓을 말할 때 딸꾹질을 한다. 그러니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하므로 그가 말하는 것은 모조리 진실이다.> = <뉴스에 나오는 얘기다. TV와 신문이 거짓을 말할 리 없다. 그러하므로 기자는 진실만을 보도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는 아메리칸 뉴스의 기자인 조 브래들리와 로마를 관람하다 진실을 심판하는 석상 ‘진실의 입’과 마주친다. ‘거짓말을 하면 집어넣은 손목이 잘리리라.’는 이야기가 마치 도시 전설 같기도 하지만, 실제 이 대리석 가면은 로마시대 사람을 심문하기 위한 심판대였다고 한다. ‘네 손목을 걸고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느냐’ 진실의 입은 고하는 말이 거짓일 때 손목이 잘려도 좋다고 맹세하는 일종의 서약서로 사용되었다.

언론은 피노키오 증후군의 권리를 갖고 있다. 이에 덧붙여 드라마 피노키오는 진실의 입에 손목을 맡긴 것처럼 신중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피노키오 증후군. 그 시작은 분명 허구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허구의 소재를 사회 문제에 투영해 피노키오 증후군과 기자의 권리를 동일화하여 언론이 가진 신뢰받는 자의 의무를 물어본다. 유치한 판타지라니! 나는 이토록 쌈박한 리얼리즘을 목도한 적이 없다.

2014년도는 과연 드라마 불모지라 부를 만했다. 지상파에서 볼 만한 것이 없어 케이블을 뒤지기까지 했다. 드라마 마니아에게 슬펐던 2014년도에 기억될 만한 증거가 남았다는 사실이 흡족하다. 단언하건데, 이 페이스 그대로 유지된다면 ‘피노키오’는 2014년도 최고의 드라마라 자랑할 수 있을 만하다. 역시, 믿고 보는 이종석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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