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와 SBS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악의적 맥락으로 사용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논란에 대한 두 방송사의 태도는 180도 달랐다. SBS는 방송사고를 인지하고 곧바로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반면, MBC는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이는 이 사건과 관련해 두 방송사의 징계수위가 갈린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통심의위)는 27일 전체회의를 열어 MBC <섹션TV 연예통신>에 법정제재 ‘경고’(벌점2점)와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주의’(벌점1점)를 의결했다. MBC <섹션TV 연예통신>(10월 12일)은 배우 차승원 씨의 아들 노아 씨를 둘러싼 친부 소송을 다루는 장면에서 노현 전 대통령의 실루엣을 ‘친부’로 설정해 방영했다. 또, SBS <섹션TV 연예통신>(10월 16일)의 방송분에는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삽입됐는데, 이 그림에 동자승이 아닌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합성된 채 방영됐다.

▲ MBC <섹션TV 연예통신>(10월 12일)은 배우 차승원 씨의 아들 노아를 둘러싼 친부 소송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루엣을 ‘친부’로 설정해 방영했다.
이날 방통심의위는 MBC와 SBS의 노무현 전 대통령 부정적·희화화 이미지 사용에 대해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법정제재를 결정했다. 두 방송사에 대한 징계수위는 달랐다.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 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야권 인사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있는 MBC가 이에 대해 사과 등 후속조치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소위에서 ‘서면진술’했던 MBC, 뒤늦게 의견진술

이날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는 MBC 김엽 예능2국장과 김새별 제작4부장이 의견진술을 위해 출석하면서부터 논란이 벌어졌다. 당초, 방송심의소위에서는 서면으로 진술했던 MBC가 뒤늦게 직접 진술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징계가 예상이 되자 사과를 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대해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은 “방송심의소위 때 진정성 있게 소명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성묵 부위원장 역시 “MBC가 중징계가 예상되니 갑작스레 변명하려고 들어오는 것 같아서 의견진술을 받아들이는 게 좋은지 의문”이라고 말해 불편함을 드러냈다. 김 부위원장은 방송심의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하남신 심의위원은 “시쳇말로 ‘그래 (징계)한번 해봐’하다가 과징금 얘기가 나오니 와서 사과하는 게 아니냐”라고 비판했고 야당 추천 장낙인 상임위원 또한 “MBC는 사과할 의향도 없고 부담스러우니 서면진술했다가 중징계가 예상되니까 온 거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MBC에서 차승원 아들 노아의 친부로 설정한 실루엣은 영정사진으로 사용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해당 사진이다. MBC가 의도적으로 부정적으로 사용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이다.(사진=연합뉴스)
MBC 김엽 예능2국장은 이날 의견진술에서 “2~3중의 체크를 하면서도 전임 대통령 실루엣이라는 것을 제작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송구하다. 다만, 제작과정에서 추호도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엽 예능2국장은 또한 “본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고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조치 중”이라면서 “이번 사태를 통해 경각심과 함께 재발방지를 위해 심의부서를 통해 전사적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도 밝혔다.

김엽 예능2국장은 진술과정에서 “방송사의 이미지 오용은 특정 사이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베’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일베에서)특정 인물에 대한 훼손된 이미지를 뿌려 매체가 사용하도록 의도를 가지고 교묘하게 조작되는 경우도 많다‘며 ”그로인해 자칫 부주의하면 잘못된 이미지를 가져다 슬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날 방통심의위에서는 MBC의 사과는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MBC의 말은 하나도 믿을 수가 없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밥로스로 둔갑시켰을 때에도 의견진술와서 (재발방지를 위한)시스템을 다 구축했다고 이야기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장 상임위원은 “밥로스 합성 이미지를 사용했을 당시 정부여당 추천 박성희 전 심의위원은 ‘확률로 치면 로또를 맞을 확률’이라고 했다. 그에 비춰보면, 로또를 두 번 맞을 확률”이라고 말해 사건이 의도적으로 벌어진 것 아닌지 의심했다.(▷관련기사 :MBC, 노무현 비하 일베사진 오용 '관계자 징계-경고')

또 다른 야당 추천 박신서 심의위원은 “MBC 제작진은 방송이 나가고 댓글 등을 통해 방송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인식을 했을 것”이라며 “SBS는 즉각적인 사과를 몇 차례에 걸쳐 했다. 그런데 MBC는 사후조치를 하지 않았다. (사과의)진실성을 오해받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정부여당 추천 하남신 심의위원은 “제작하는 입장에서 애로사항은 이해하지만 진지한 사과멘트도 없었다”며 “(방통심의위에서) 제재조치를 의결하면 자막고지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MBC는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진행자가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과를 할 의향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엽 예능2국자은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고 말해 ‘뒷북사과’를 약속했다.

▲ MBC <섹션TV 연예통신>(10월 16일)은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삽입됐는데, 그림에는 동자승이 아닌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합성된 채 방영됐다
MBC에 대한 제재수위 갈려…윤석민 심의위원, “과잉해석 어이없다”

이날 방통심의위원들은 MBC <섹션TV 연예통신>에 대한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데에 입장을 같이 했지만, 제재수위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리면서 논의가 길어졌다. 장낙인 상임위원을 비롯한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MBC의 방송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 △그동안 주의->경고->관계자징계 및 경고 등 징계가 누적됐다는 점, △진정성 있는 사과가 미흡했다는 점, △의도적인 사건이 아닌지 의심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과징금’(벌점10점) 제재를 주장했다. 반면,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실루엣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점, △단순 실수로 볼 수 있다는 점,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점, △기표화된 표현 수단일 뿐 이라는 이유를 들어 ‘주의’(벌점1점)와 ‘경고’(벌점2점) 입장을 밝혔다.

정부여당 추천 윤석민 심의위원은 “마오쩌둥이나 체게바라는 사람들이 여성속옷이나 의류광고 등에 자유롭게 가져다 쓴다”며 “이것 자체가 기표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심의위원은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과잉 해석하면서 국가를 모독하고 국격을 훼손하는 것이란 시비가 제기되는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답답하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실루엣 정도라면 정치적 이미지를 떠나 기표적 의미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건에 대해 중징계를 내린다면 일반 추세에 맞지 않는 권위주의적 결정”이라고 ‘주의’ 의견을 밝혔다.

장시간 논의 끝에 야당추천 심의위원들은 “합의를 위해 ‘관계자 징계 및 경고’(벌점5점)으로 징계 수위를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합의는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날 MBC <섹션TV 연예통신>에 대한 징계는 한 차례 정회 끝에 다수결에 따라 ‘경고’(박효종·김성묵·함귀용·하남신·고대석) 제재로 결정됐다. 야당추천 심의위원들은 ‘과징금 부과’(장낙인·박신서·윤훈열)를, 정부여당 추천 윤석민 심의위원은 ‘주의’를 소수의견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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