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세우면서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인터넷이 들썩이고 있다. <한겨레>는 25일자 1면에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정규직 해고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내용들이 논의되고 있다”는 발언을 전하며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정리해고 요건이 완화될 가능성을 전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경제부처에서 늘 하는 얘기”라며 이러한 가능성을 일축했다. 고용노동부가 따로 배포한 자료에도 같은 내용의 해명이 포함돼있다.

그러나 논란은 가시지 않는다.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도 있다. 석간신문인 <문화일보>는 이날 6면에 <노동시장 경쟁력 세계꼴찌 수준…개혁에 경제사활 걸렸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이 기사는 기획재정부의 정리해고 요건 완화 구상을 사실상 지지하는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문화일보>는 이 기사의 오른쪽 하단에 <‘주무부처’ 고용부 소극적 태도 변수, 노사정위·국회 통과 등 ‘산 넘어 산’>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전체 지면을 놓고 보면 결국 기획재정부의 올바른 ‘결단’을 고용노동부와 이해당사자인 노동자 단체, 정치권 등이 방해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야기하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일보>는 같은 날 <정규직 과보호 개선대책, 이번엔 제대로 추진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의 근원은 정규직 과보호에 있고 기업이 비정규직을 늘려온 이유는 최소한의 고용유연성 확보를 위한 것이었으며 노동 개혁 없이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도 무망하다는 게 요지다. <문화일보>는 이 사설에서 ‘노동 기득권층’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오는 것은 경제정책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최경환 부총리가 최근 심상찮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 21일 주요 연구기관장 조찬간담회에서 “천문학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구조개혁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 흔들리는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면서 “경기회복의 긍정적 신호가 본격적인 실물경제 회복세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최경환 부총리는 특히 금융·노동·교육 분야와 공공부문, 서비스업, 부동산업 등의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중 금융개혁의 경우 금융과 통신의 결합을 추진하고 국민안전금융을 확대하는 등 다소 ‘깨알같은’ 대책이 언급되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사실상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조치가 시행될 당시 경제관료들의 언급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는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하던 당시 가계 가처분 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 활성화를 공언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정리해고 요건이 완화되고 노동유연화가 지금보다 더한 수준으로 진행되면 그나마 있는 노동자들의 소득도 상당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정규직들의 고용유연성이 제고되는 대신 비정규직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뤄진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기업들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 중 어느 쪽에 더 사활을 걸지는 너무나도 뻔한 사실이다. 오히려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은 실효성이 없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하고 정리해고만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최경환 부총리라고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와서 처음과 다른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최경환 부총리 본인이 표현하는 것처럼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이를 통한 성장이 도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한다”며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를 필두로 한 경기부양을 유도했다.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를 사실상 압박해 재정확장정책을 유도했고 언론은 ‘초이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애초 기대했던 것만큼 경기가 나아지지 않았고 부동산 시장의 훈풍도 잠시에 그쳐 오히려 전세 급등만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단지 최경환 부총리만의 책임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주가도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언론은 “초이노믹스는 끝났다”라고 써제꼈다. 이러니 최경환 부총리로서는 돈을 풀었는데도 효과가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몰리게 된 셈이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연합인포맥스와 기재부·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한국금융투자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제1회 Korea Treasury Bonds 국제 콘퍼런스'에서 개회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는 실제로 일각에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교사 3인으로 알려진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최경환 부총리의 정책에 대해 모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정부가 돈을 풀지만 경제가 활력을 찾지 못해 결국 국가 부채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말하는 ‘일본식 불황’이다.

위의 세 ‘경제교사’ 중 김종인 전 수석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구조개혁의 올바른 방향으로 경제민주화를 관철시키는 방안을 주장한 바 있고, 김광두 원장은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지식컨텐츠산업 육성에 중점을 두는 ‘창조경제론’을 재차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공공부문 개혁과 노동유연성 제고 등 전형적인 우파적 개혁론을 제기했는데, 최근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을 보면 이 세 사람 중 사실상 이한구 의원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를 돌아보면 경제부총리나 경제부처 장관이 다른 분야보다 정책에 대한 더 많은 결정권을 쥐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면을 고려하더라도 박근혜 정부에서 최경환 부총리에 집중된 권한이 비대하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부총리는 국회에 있던 시절부터 ‘실세’로 불렸고 원내대표로서 당의 의회전술을 이끈 경험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경환 부총리가 제시하는 정책들에 말을 보태는 수준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별다른 의지를 내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경환 부총리가 큰 규모의 부양책을 밀어 붙인데 이어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까지 말하고 있는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 최경환 부총리의 인식은 일단 규제를 풀고 재정을 투입해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면 경제가 살아나고,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가 확보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된다는 고전적인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분배가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론이 유행하면 가계 가처분 소득 증대를 말하고, 그러다 재정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저 확장정책을 실시하고,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 구조개혁을 병행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그때 그때 일회적으로 정책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황소고집’이라더니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들에게만 황소고집이고 기득권과 기업 및 고소득자 들의 청원(?)은 ‘시원하게’ 들어주는 면모도 갖추고 있다. 이런 사람이 경제부총리인 정권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싶기도 하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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