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가요 파동으로 한 풀 꺾이긴 했지만, 출연자 에넥스 카야 등이 다른 프로그램의 게스트며 광고를 찍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비정상 회담>은 외국인 예능의 신경지를 이룬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비정상회담> 덕분에 방송가에는 육아예능에 이어 외국인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또 하나 등장하게 되었다.

<비정상회담>이 개척한 새로운 예능 트렌드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또 하나의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MBC의 <헬로 이방인>이 그것이다. 추석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9월 8일 방영된 후, 10월 16일부터 정규 편성된 <헬로 이방인>은 '외국인'이라는 트렌디한 소재에,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이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줄곧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다. (평균 시청률 3.7%, 11월20일 전국 기준 2.5% 닐슨 코리아)

더구나 11월 20일 방영분에서는 전주를 찾아간 이방인들을 다루면서, <헬로 이방인>은 '외국인'과 '먹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노렸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화제성은 더더욱 없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줄리엔 강을 등장시켜 '셀프 디스'를 하게 하는 등 화제성을 만들고자 했지만, 역시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똑같이 외국인을 출연시킨 프로그램인데, <비정상회담>은 되고 <헬로 이방인>은 안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 두 프로그램이 다루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시선에 시대적 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각 대륙의 대표격인 외국인들을 모아놓는다. 콩고에서 온 프랭크는 이층침대에서 이슬람식 기도를 한다. 파키스탄에서 온 알리는 '할랄'식 치킨 요리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와 일본처럼 <비정상회담>의 중국 대표와 일본 대표, 프랑스와 독일 대표는 사사건건 신경전에 돌입한다. 똑같이 다양한 외국인들과 외국인들의 문화가 등장한다.

하지만 문화라고 해서 다 같은 문화가 아니다. <비정상회담>의 문화는 지금 여기,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모여 드는 국제적 도시 서울의 현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서울이란 국제 도시에 모여든 세계 각국의 문화들이 만나고 충돌하면서 어우러지는 그 상황을 <비정상회담>은 중계한다. 또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1세기의 국제적 국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그들 각자의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우리보다도 더 보수적인 '유생 같은' 터키의 에넥스 카야가 두각을 나타내고, 그런 그와 전혀 대치되는 지점의 벨기에의 줄리안이 부각되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동양권이면서도 같은 듯 다른, 장위안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프로그램은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주제들을 다룬다.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시각은 때론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이기도 하지만, 그런 시선조차 너그러이 귀 기울여 들을 만큼 '글로벌 코리아'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또한 그런 시각조차 한 나라의 특별한 의견으로 받아쳐줄 만큼 다양한 다른 나라의 시각도 존재한다.

우리의 문화도, 다른 나라의 문화도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소통해가는 '글로벌 문화'의 매개가 된다. 치열한 문화 다양성의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마치 <마녀사냥>을 통해 금기시되었던 성과 사랑의 문제를 공론화시켰듯이, <비정상회담>을 통해 이방인들의 날 것 그대로의 속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끄집어 낸 것이다.

그에 반해, <헬로 이방인>은 그 예전에 보던 명절 특집 <외국인 장기 자랑>을 보는 듯하다. 세계 각국의 이방인들을 게스트 하우스에 모아 놓은 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그 다음부터는 그들에게 한국을 알리느라 고심한다. 한복을 입고 어눌한 발음으로 우리 노래를 부르며 장기 자랑을 하듯, 그들을 데리고 한의원을 가서 놀래키고, 우리 국악을 가르친다며 기괴한 소리를 내게 한다. 전주 한옥마을에 가서 먹방은 빠질 수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에 산 지 10여년이 넘은, 자신의 고국보다 한국이 더 고향 같은 외국인을 데려다 놓고 ‘여전히 너네 이거 모르지?’식의 한국 문화 알리기에 고심한다. 이런 식의 '한국 알리기' 프로그램은 이미 닳고 닳을 정도로 써먹은 컨셉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룸메이트 시즌1>의 결정적 실패 요인이었던 짝짓기에 골몰한다. 연예인 지망생인 듯한 외국인 여성들을 데려다 놓고 이리 저리 짝대기를 긋느라 골몰한다. 그런데 그 짝짓기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 신선하지도 않다. 이미 <감자별>, <하이킥 시리즈>에서 알려진 후지이 미나나 줄리엔 강의 등장은, 신선한 외국인에 대한 대중의 기호에 반한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어디선가 본 듯한 외국인 캐릭터를 연기한다. 아프리카에서 온 교환학생은 촌에서 유학 온 학생처럼 어눌하며, 미국에서 온 외국인은 자유분방하게 유쾌하며 중동의 외국인은 자기들의 문화를 지키기에 골몰한다.

똑같이 한국에 와서 살고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헬로 이방인>이 그 어떤 게스트를 등장시키고 외국인 출연자들을 이리저리 바꾸어도 화제성이 없는 반면, 일본 출연자의 배경음악으로 '기미가요'를 튼 것만으로도 프로그램의 존폐가 운운할 만큼 <비정상회담>은 화제의 중심에 놓여있다. 똑같이 서울대를 다니는 학생이지만, 타일러가 한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동안 아미라는 전주 한옥마을을 헤매며 진기한 먹거리를 찾아다닌다.

'외국인'은 아이들과 다르다. 아이들이야 그 존재만으로도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신기하기만 존재가 아닌 '외국인"은 그들을 버무려 담는 솜씨에 따라 시청자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 더 이상 '외국인 장기 자랑'이 명절특집으로 편성되지 않는 이유, 그게 바로 <헬로 이방인>이 고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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