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만 해도 아역 스타가 성인 배우로 안착하기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다. 대중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은 아역일수록 더 그랬다. 자라지 않는 아이로 인식된 아역 스타가 사춘기를 훌쩍 넘겨 몸과 마음이 성숙해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님을 선언할 때, 우리는 미묘한 죄책감과 실망감을 느낀다. 이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아역 출신 스타가 성급하게 선택한 성인 배우의 노선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한시적인 깜찍함이 주무기인 아역 스타들에게 성장이란 피터팬의 처형을 기다리는 네버랜드의 주민들과도 같다. 남들에겐 축복인 신의 선물이 이 아이들에겐 피하고 싶은 저주와도 같은 것이다.

연예계의 판도를 뒤집으며 인기 스타의 세대교체마저 노리고 있는 아역 출신 스타들의 비약적인 성장이 반가운 이유다. 여진구, 김소현, 김유정, 진지희 등 깜찍했던 아역 시절에 이어 사춘기를 건너 성인의 영역에 발 담그는 지금까지도 대중의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은 채 그들을 주목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기라성 같은 스타로 사랑받는 김수현 또한 성인 못지않은 존재감의 아역 출신 배우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대중은 까까머리를 하고 치킨 사달라 졸랐던 유승호를 기억하면서도 그의 군 제대 순간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여자 아역 출신 배우 중 명실공히 최고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김유정의 성장 또한 기대치를 드높이고 있다.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 이따금 주목하게 할 때마다 저 아이의 한계는 어딜까 싶게 차츰차츰 예뻐졌던 김유정. 최근 인기가요 MC로 발탁된 그녀가 MC신고식으로 보여준 오색 빛깔 ‘Mr. Chu’는 주인인 에이핑크보다 상큼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우! 드디어 오늘 그분이 오십니다.” 4 MC 체제인 인기가요에서 앞서 자리잡고 있는 광희, 백현, 수호가 들뜬 얼굴과 과장된 몸짓으로 색종이를 날려대며 격한 환영의 세레모니를 바친 것이 결코 과하지 않았을 만큼, 시작하는 멜로디에 댄서들 사이를 뚫고 등장한 김유정의 모습은 시리도록 눈부셨다.

일단 곡 선정부터 참 좋았다. 21세기의 아이돌답지 않게, 90년대 걸그룹의 향수가 묻어나는 에이핑크는 타이틀곡마다 심금을 울리는 서정성이 있는데 그것이 시대의 정취가 떠오르는 김유정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던 것이다. 깜찍 발칙한 가사와 달리 멜로디만큼은 사무치는 감수성을 보유한 타이틀곡 ‘미스터츄’는 빠른 템포의 댄스 음악이라 오히려 더 애틋하다.

그럼에도 이 노래를 소화하는 에이핑크의 콘셉트들이 미스터츄의 미학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무던히도 아쉬웠었다. 식빵을 입에 물고 등교할 것 같은 순정만화 페이지의 멜로디를 닮은 이 노래에 때 묻은 에이핑크의 안무나 무대매너는 도리어 섹시 콘셉트에 어울릴 것 같아 참 겉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 인간 복숭아처럼 온 몸에 핑크빔을 쏴대면서도 결코 거북하지 않은 김유정의, 완급조절된 수줍은 애교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라디오스타 스페셜 무대에서 사그락사그락 근심을 녹이는 목소리로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를 열창하며 가창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 김유정이다. 청량하면서도 포근한, 참 소녀다운 예쁜 음색을 갖고 있는 김유정에게 애틋하면서 사랑스러운 미스터츄의 멜로디가 마치 맞춤옷처럼 잘 들어맞았다. 귀여운 머뭇거림에서 살포시 수줍음이 묻어나 더 사무쳤다.

김유정의 미스터츄 무대에서 얻은 하나의 수확은 생각지도 못했던 과감한 무대 매너다. 워낙에 모범생 같은 이미지의 김유정인지라 쑥스러움이 많으리라고 생각했고, 연기자로서 익숙한 세트 안이라면 몰라도 관객이 주시하는 큰 무대를 감당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자신을 향한 수많은 눈과 요란한 불빛에 터져 나갈 것 같은 음악 소리를 개의치 않고 한데 어울려 윙크를 하는 김유정의 대담함이 놀랍기만 했다. 김유정을 다소 답답한 이미지라고 생각했을 사람들에게 이 아이는 천성적으로 무대 체질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무대이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성공한 커리어를 가진 배우 김유정이지만 아이돌로 데뷔했어도 못지않은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애초에 태어나기를 사랑 받을 수밖에 없게 태어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호들갑스럽게 김유정을 반긴 세 명의 남자 아이돌처럼 이날 김유정의 무대는 남초 사이트를 휩쓸었지만, 오히려 더 큰 화제가 됐던 쪽은 여자들 사이에서였다. 같은 여자가 봐도 사랑스러운 김유정의 미덕을 재확인한 셈이다. 동경하고 부러워하더라도 샘나서 미워하지는 않는, 뒤틀림 없는 동성의 관심과 사랑은 몇 안 되는 여자 연예인들이 누리는 드물게 큰 행운이다.

각별하게 좋아했던 노래 미스터 츄! 하지만 음원 아닌 무대를 볼 때마다 스며드는 갈증. 김유정의 애틋한 목소리와 완급 조절이 된 무대 매너로 궁극의 Mr. Chu를 완성한 것 같아 흐뭇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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