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방영된 <오만과 편견> 7회. 모든 정황은 자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자살 같지 않았던 차윤희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다. 그 실체는 검사가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초보 검사 한열무(백진희 분)에게 첫 번째 좌절을 안겨 주었다.

성형외과의 비정규직 간호조무사였던 차윤희, 그녀는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원장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무능력한 아버지, 병든 어머니, 그리고 아직 어린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장이 그녀의 몸을 더듬을 때마다 죽고 싶을 만큼의 수치심을 느꼈지만, '한번만 참자'며 2년을 버텨왔다. 그동안 원장은 2,3개월씩 계약을 연장해 가며 그녀를 성추행해왔다. 그런 그녀의 행동은 오히려 더 큰 올가미가 되었고, 거기서 빠져 나오려 몸부림쳤지만 오히려 소문을 내겠다는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남겨진 부모님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살인 같은 자살이었다.

의욕이 충만한 초보 검사 한열무는 차윤희의 사건 뒤에 흑막이 있음을 직감하고, 그것을 파헤치기 위해 달려든다. 구동치(최진혁 분) 역시 부장 검사의 눈을 피해가며 그런 그녀를 돕는다.

차윤희의 소지품을 다시 검사해서 보관함의 쪽지를 발견한 한열무는 범인으로 몰린 친구 송아름(곽지민 분)을 찾아가 설득, 보관함을 열고 차윤희가 남긴 다이어리를 찾아낸다. 다이어리에 적힘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고, 아버지로 하여금 고소를 진행하고, 성형외과 의사를 불러 추궁하려 하지만 구동치는 한열무를 말린다. 현행법으로, 한열무가 하고자 하는 일련의 법률적 행위들이 차윤희를 구제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차윤희가 쓴 다이어리는 적절한 증거가 되지 않으며, 그렇게 불충분한 증거로 인한 재판은 오히려 원장의 무죄 방면과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추인해 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차윤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동료들의 협조를 구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랭한 거부와 차윤희에 대한 험담뿐이다. 그 누구하나 동료 의식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적반하장으로, 성형외과 의사는 스스로 법원을 찾아와 차윤희와의 관계를 '연애'로 포장한다. 더구나 딸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장에 대해 분노하며 고소하겠다는 아버지는 돈을 받고 고소를 포기하겠단다. 딸의 죽음값이 자기들에게는 절박한 생존의 수단이라며.

결국 분명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그리고 증언할 동료들을 찾아내지 못한 한열무와 구동치는 차윤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더는 어쩌지 못한다. 정황은 분명 성폭행으로 인한 자살을 가리키지만, 법의 그물망은 성겨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를 옭아매지 못한다. 의욕을 가지고 덤볐지만 고소하지 않겠다는 아버지 앞에서, 무기력한 한열무는 '검사가 별 거 아니'라며 의욕만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낀다.

이렇게 <오만과 편견>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불리한 처우, 법률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차윤희 사건을 통해 단적으로 그려낸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법률과 조직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원자화된 개인으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중압감과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죽기 전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건 전화 통화에서 차윤희는 말한다.

'그까짓 정규직이 뭐라고 정직원을 꿈이었을까. 대통령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정직원이. 그거 돼봤자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도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정직원이. 고작 그거 되려고 죽기보다 싫은 짓을 참아왔는데(중략),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멀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을 꿈꾸는 차윤희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통화,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청춘들의 소박한 희망이다. 한 젊은 여성의 좌절과 죽음을 다룬 <오만과 편견>은 거창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다. 법률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오히려 법률로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오만과 편견>은 그렇게 조금씩 탑을 쌓아가듯 의욕적인 한열무가 부딪치는 사건들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사회의 벽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사회의 한계를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덜그럭거리는 건 있다. 어렵게 공부해 법학 전문대학원을 나온 한열무,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 법학전문 대학원을 가는 사람들은 한열무 같은 사람들일까? 일반 가정의 자녀에겐 한 해 수업료만도 버거운 엄청난 금액인 법학 전문대학원이, 가진 사람들만의 리그를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다.

더구나 최근 조사에서도 나왔듯이 계층적 고착화가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 차윤희의 사건에 의협심을 가지고 덤비는 초보 열혈 검사 한열무, 그리고 그런 열무와 뜻을 같이 하는 구동치는 드라마니까 하면서도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개과천선>의 현실감과는 궤를 달리하는 낯섦이다. 우리가 사건, 사고를 통해 만나는 법과 법률, 그리고 그 법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리라. 당장 지난 13일, 대법원은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대량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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