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9회, 원 인터내셔널의 신입사원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한석률의 고난사가 펼쳐진다. <미생>의 시청자들이 군대건 사회건 혹은 알바 하는 곳이었건, 자신이 처음 맞닥뜨렸던 사회에서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사인사색으로 펼쳐진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부서의 모든 일에서 배제되는 안영이.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커피 심부름부터 쓰레기통 비우기까지 부서의 모든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는 것이다. 그런 안영이와 달리 자신에게 너무 잘 대해준다는 자랑이 입에 붙었던 한석률의 경우도 알고 보면 나을 게 없다. 입에 발린 말 뒤에 결국 자신의 일까지 떠맡긴 상사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백기는 회사를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겨우 이제 한 팀으로 인정받는가 싶었던 장그래 앞에는 인격적 모욕을 마다하지 않는 박과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을 보는 시청자들은 자신이 겪었던 그 어느 구비의 일이 떠올라 울컥하게 된다. 모든 일에 순응하는, 심지어 박과장(김희원 분)의 신발 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는 장그래에게 김대리(김대명 분)는 결국 볼멘소리를 하고 만다. 당신은 마치 사회에 나온 갓 나온, 그래서 어떻게 하든 이 사회에 적응하려는 장기수 같다고.

그런 김대리의 불만을 듣고 장그래는 생각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역류에 대응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역류가 거셀 때 그저 순한 흐름이 되어 그 역류를 맞이하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라고.

<미생>은 현실 삶을 복기하는 듯한 공감을 준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촌철살인의 해석을 곁들인다. 역류를 견디는 방법 같은 식이다. 거기에 현실을 반영하는 감동을 넘은 <미생>이란 드라마의 힘이 있다. 하지만 <미생>이 주는 힘은 '자기 계발서'들이 앞다투어 말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든가, '백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든가, 아파도 괜찮아 식의 덕담과는 궤를 달리한다.

애초 드라마의 제목 '미생'이 바둑 용어에서 출발하고, 겨우 회사에 살아남은 장그래를 보고 오과장(이성민 분)이 '완생'을 운운하듯이, 드라마 <미생>은 '바둑'을 빗대어 회사 생활을 사회생활을 설명한다.

그런데 바둑이란 무엇인가. 이제는 게임으로서의 바둑이라지만, 그 원류는 가로세로 40여 센티의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장기판처럼 노골적으로 왕과 차, 포, 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세를 불려 적의 집을 에둘러 잡아먹는 먹고 먹히는 살벌한 전쟁터가 바로 바둑판이다.

그리고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스스로 말하듯 비록 실패했지만, 승부사로 조련된 사람이다. 이제 그 승부사가 원인터내셔널에 던져졌다. 40여 센티의 바둑판에서 상사로 전쟁터만 바뀐 것이다. 이렇게 <미생>은 전쟁터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직장인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전쟁터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떨까? 물론 정윤정 작가의 각색을 걸쳐 김원석 피디의 디렉팅으로 다듬어진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원작, 윤태호 작가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윤태호 작가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얼마 전 윤태호 작가가 완성한 작품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진짜 6.25 전쟁 속에 던져진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맏형 상근은 뒤늦게 한강철교를 건너 피난 가던 중 폭격을 맞아, 몸의 반쪽이 날아가 버린 불구가 되어버린다. 그런 가장을 만난 가족들은 그가 살아있다는 기쁨도 잠시, 흉측해진 그리고 이젠 가장으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그의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가족은 살고자 한다. 부인은 남편을 업고 다니며 구걸을 하고, 때론 부역 연설까지도 한다. 물론 그런 그들의 살기 위한 행동은 그들을 처참한 죽음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살아남은 그들의 아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서도 자신조차 죽을까 차마 아들인 척 하지 못한 아이는 살아남는다. 굶어죽는 자가 태반인 전쟁 후 거리에서 죽은 자의 주머니를 뒤지고, 거리에 나뒹구는 먹을 것을 마다않고 살아남는다. 신문 연재분 만화의 마지막은 생존의 형형한 눈빛으로 미군이 주는 초코렛을 받아먹는 아이에게서 끝난다.

전쟁 속 인간 군상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삶은 언제나 우리를 속이고 기만한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는다. 각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방식에 따라, 이후 그의 삶이 결정된다.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동생은 허망하게 상륙작전의 희생양이 되고, 부역을 마다하지 않은 형은 결국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 전쟁터에서 윤태호 작가가 말했던 것은 <미생>의 전쟁터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는 듯하다. 여기서도 삶은 가혹하다. 그 전쟁터와 같은 삶에서 우리는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역류에 맞서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겼던 건, 장그래가 선택한 방식이다.

10화가 그려낸 박과장의 몰락은 그가 자초한 결과다. <미생>의 박과장은 성희롱에 인격 모독을 하는 나쁜 놈이었지만, 오과장은 그런 그를 '보상'이란 단어로 설명한다. 상사라는 전쟁터에서 혁혁한 성과를 냈지만, 한 끼의 회식 외에 돌아오는 보상이 없는 회사에서 스스로 자신의 보상을 찾으려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만든 가상의 회사로 인해 감사를 받고 사법적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인다. 그저 나쁜 놈이 아니라 원인터내셔널이란 전쟁터에서 그가 선택한 삶의 결과다. 이런 그의 방식은 접대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갖은 수를 다 짜내던 오과장의 선택의 맞은편에 있다.

스스로 '보상'을 취했던 박과장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애쓰던 오과장도, 그리고 인격적 모독조차 받아내는 장그래도, 결국 따지고 보면 한낱 '넥타이 부대' 혹은 '유리지갑'이라고 만만하게 여겨지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전쟁터의 졸처럼 쓰고 버려져도, 혹은 가끔은 10회의 장그래처럼 때로는 역류가 되어 반격을 해도 그까짓 바둑판과 같은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까짓 바둑 이기건 지건 세상은 달라지지 않듯이, 원인터내셔널 직원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건 어떤 삶을 살건 사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미생>은 한 마디를 더한다. 그래도 바둑이라고. 그건 '자기 계발서'의 위로로 설명될 길 없는 삶의 엄정함이요, 한 개인이 짊어지고 갈 삶의 무게다.

어린 시절 고사리 손으로 바둑돌을 집어들기 시작한 이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인생을 온전히 걸었던 그 시간의 무게 같은, 아니 때로는 그 무게보다 더하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곳이 겨우 가로 세로 40여 센티의 바둑판이다. 우리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 보기엔 겨우 그것이라도, 내가 짊어지고 갈 내 삶인 것이다. 삶의 비극성조차 내 것으로 받아들인 긍정성이다. <미생>이 보여준 삶의 긍정성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흔한 덕담이나 위로와 다르게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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