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이 종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윤상의 <힐링캠프> 출연 소식이 들렸다. 유희열, 윤상, 이적의 <꽃보다 청춘>을 재밌게 봤던 터라,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윤상을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터라 그의 <힐링캠프>의 출연분이 기다려졌다. 하지만 그 소식이 들린 지 한 계절이 지나고, 응답하라 팀의 <꽃보다 청춘>도 끝나고, 새로운 프로그램인 <삼시 세끼>의 중반이 지날 즈음에야 윤상은 비로소 SBS <힐링캠프>에 모습을 드러냈다.

<꽃보다 청춘>의 열기를 뒤로 하고, 9월 17일에 발매된 그의 새 앨범 '날 위로하려거든'이 피고 지고도 한참 뒤에야 말이다. 그렇다고 초겨울이 되어서야 찾아온 윤상의 <힐링캠프>가 새롭게 그를 각인시키는 시간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어쩐지 아쉽다. 어떻게 규정 짓기 힘든 윤상이란 뮤지션을, 세상이란 틀 속에 억지로 우겨넣은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꽃보다 청춘> 때도 그랬다. 첫 회 방영 후 윤상은 '비호감'의 딱지를 붙이고 통과의례를 톡톡히 치렀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나영석 피디가 막판 반전이 가득한 윤상이란 캐릭터를 이해시키기 위한 깜짝쇼의 서장이었다. 동생들에게 민폐 캐릭터였던 윤상은 여행하는 동안, 세상에 보기 드문 섬세한 감성의,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뮤지션이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착한 심성의 윤상으로 거듭났었다.

<힐링캠프>도 시작은 그랬다. 함께 출연했던 이적, 유희열의 '변태' 너스레로 시작하여 자신을 찾아온 팬들에게 '왜 나를 좋아하냐고?'라고 까칠하게 말하는 청춘스타, 그리고 녹음실에 들어간 가수들에게 면박을 주는 야멸찬 작곡자 윤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힐링캠프>가 접근한 윤상은 인간 윤상이기보다는 90년대의 스타 윤상이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매회 출연하던, '몰래 카메라'의 단초를 제공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신을 찾아온 게스트 '핑클'에서 왜 나를 좋아하지 않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스타였었다.

스타였지만 자신이 스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스타.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을 느낀, 그리고 자신의 스타성에 '뒤끝'마저 있는 스타로서 말이다. 물론 90년대를 풍미했던 스타로서의 윤상도 좋다. 하지만 그 스타 윤상을 채웠던 음악이 채워지지 않은 윤상은 공허할 뿐이다. 윤상이 mc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오른쪽 우측 위에 자막으로 곡명이 소개되면서 그의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렇게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통해 그의 주옥같은 음악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녹음실에서 야멸찬 말로 예쁜 여가수를 울리고, 당대 청춘의 심볼이었던 남자 가수에게 막말을 했던 에피소드 뒤에 나와야 할 것은 '음악'에 대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성을 추구하는 윤상의 이야기여야 했다. 서른다섯에 버클리 음대에 유학을 가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 앞에 전제되어야 할 것은, 서른다섯이나 먹은, 이미 우리나라 대중 가요계에서 이룰 만큼 이룬 뮤지션이 굳이 다시 유학을 가야 하는 이유여야 했다.

<꽃보다 청춘>에서 유희열, 이적이 증언하듯 그를 불면증의 나날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완벽한 음악에 대한 강박증에 가까운 추구. 그런 뮤지션 윤상에 대한 설명이 없는 스타 윤상에 대한 복기는 그저 그런 지나간 스타에 대한 소비에 불과할 뿐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하던 스타였던 그가, 그런 당대의 위치를 아낌없이 버리고 유학이란 결정을 내렸던 음악적 계기에 대해서는 그저 스쳐지나간다. '몰래 카메라'의 단초를 제공했던 당대 스타가 가졌던 연예인으로서의 회의는 우스개의 대상이 된다.

<꽃보다 청춘>이 좋았던 이유는 굳이 어떤 틀에 끼워 넣지 않은, 아니 끼워 넣을 수 없는, 그저 그런 사람 윤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문제부터 매사 쉽게 넘어가는 게 없어 함께 여행하기엔 부담스러운 사람. 하지만 그런 개인적 딜레마를 가지면서도, 아끼는 동생들과의 여행이란 이유만으로 기꺼이 먼 길을 나설 수 있는 착한 형. 서툴지만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여 기꺼이 변화되어 가는 아빠. 그리고 그 모든 것 앞에 전제된 그의 알콜릭조차 끄덕이게 만든 뮤지션 윤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힐링캠프>의 윤상은 90년대에 잘 나가던 까칠한 스타, 그리고 미국 유학을 가서도 나이 차 많이 아내에게도 여전히 마이 페이스였던 스타를 넘어섰다고 보기 힘들었다. 그가 난감해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때, 성유리나 김제동은 어쩌면 저럴 수가 하는 식으로 반응을 보인다. 그에 반해 <힐링캠프>의 '아저씨' 아이콘 이경규는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하면서, 윤상을 그저 자신과 같은 아저씨의 부류에 집어넣고자 애썼다. 물론 이런 것이 윤상에 대한 쉬운 이해 혹은 예능적 재미를 위한 것이라지만, 윤상이란 쉽게 정의내리기 힘든 감성의 소유자를 어쩐지 편협한 세상의 틀에 끼워 맞추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를 시달리게 하던 불면증은 알콜릭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아이들을 위해 이십여 년 동안 의지했던 술을 끊은 좋은 아빠 윤상은 친아버지의 죽음 이후에야 아버지를 찾아뵈는 불효자 윤상을 설명하기엔 역부족이 된다. 그의 말대로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페이스의 윤상은, 세상 사람들의 편한 잣대로 보기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묘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윤상이 어떤 사람인가에 앞서, <힐링캠프>가 과연 <꽃보다 청춘>처럼 윤상이란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했는가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런 애매모호한 윤상의 캐릭터는 결국 <힐링캠프>의 딜레마이다. 그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이경규라는 막강한 속물적 캐릭터를 기준으로, 혹은 성유리라는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를 기준으로 재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스트가 그런 기준에서 요리되기 편한 사람이라면 프로그램은 물 만난 듯 활력을 띠는 반면, 윤상처럼 설명하기 난해한 존재라면 자기 편한 대로 재단해서 짧으면 늘리고 길면 잘라버렸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되어 버린다. 이경규와 소통할 수 있는 90년대 스타이거나 알콜릭 환자, 그리고 사연 있는 아빠 말고는 윤상을 이해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쉬웠던 것은 '윤상이니까 잠시 멈춰서 음미해도 좋다'는 각종 이펙트로 사운드에 질감을 부여하고, 각 악기들의 소리를 주파수 단위로 조절해 공간감을 쌓아올리며, 어느 한구석 물샐 틈 없이 조밀하게 효과음과 리듬 패턴을 채워 넣어 구조적을 탄탄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 만족할 때까지 소리를 만지느라' 수면제나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하게 작업하는 뮤지션을 이해할 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다. (한겨레, 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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