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 세상인지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몇 번이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를 되뇌었다.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서지수의 악성 루머는 그만큼이나 가혹했다. 그녀는 막 발을 내딛으려던 신예그룹 ‘러블리즈’의 멤버다.
<와 부럽다 돈 있고 빽 있으면 저런 짓해도 다 감싸 주고 팔자 펴고 사는구나 ㅋㅋㅋ 인과응보 권선징악은 다 옛말 ㅎ>
지난 10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서지수의 과거 행실이 폭로됐다. 대중은 경악했다. 일부의 네티즌은 마음의 상해를 입었노라고 아우성 했다.
물론 딸깍 거리기만 하면 전 세계에 치부를 노출시킬 수 있는 21세기에 웬만한 아이돌의 과거쯤이야 딱히 남 다를 것 있으랴 싶다. 모범생 캐릭터를 가진 소년의 술병 굴러다니는 기념사진이나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욕을 달고 살았던 여자 아이돌의 치부가 공개됐던 일 또한 허다하다. 서지수의 악성 루머는 그럼에도 충격에 몸서리쳐 입을 다물 수 없게 하는 수위를 갖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이돌 역사상 역대 최악의 스캔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지수 실체 공개하려면 우리도 감수해야 될 거 한두 개 아닌데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억울해서 저런 애가 데뷔하는 게 싫고 소름 돋아서 이러는 거예요>
피해자는 다수였다. 갖은 피해자의 사례를 묶어 자신의 SNS에 공개중인 한 네티즌은 이런 참혹한 짓거리를 하고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서지수를 참을 수 없는 듯해 보였다. 그녀의 닉네임은 한동안 ‘서지수의 데뷔가 싫습니다’였다.
피해자의 사진을 재학 중인 학교의 홈페이지에 올려 아웃팅을 하거나 지인들을 초대해 만든 단체 대화방에 피해자를 불러 악담을 퍼부었다. 이로 인해 강제 아웃팅을 당하게 된 어느 피해자는 학교를 그만두고 정신과 약을 처방 받아 살아도 죽는 것 같은 매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서지수의 데뷔가 몸서리 쳐지게 싫을 만하다. 연인의 섹스 자료를 손에 쥐고 그녀가 성소수자임을 약점으로 악용해 원치 않은 성적 성향을 공개하는 일명 ‘아웃팅’으로 피 말리게 하더니 결국 몇 사람의 삶을 파탄 냈다. 정말, 정말이지 피해자의 주장이 모조리 사실이라면 서지수가 있어야 할 곳은 데뷔 무대가 아닌 법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증거 없이 그녀를 수렁으로 몰아넣을 순 없다.
걸그룹 ‘러블리즈’와 서지수의 소속사인 울림엔터테인먼트는 같은 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물론 피해자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합의’나 ‘선처’ 따윈 없노라 강경대응 했다.
‘현재 올리고 있는 모든 사진들은 지인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카톡 프로필이나 SNS의 사진들이었지 둘만이 나누었던 사진도 아닐 뿐더러, 정확한 피해 사진이나 피해 증거가 단 한 장도 없습니다. 단지 언어와 문장, 그리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사진을 가지고 루머를 확산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택배 사진이 연애의 징표가 되고 성폭행과 협박의 증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글의 전문에서 성소수자인 피해자의 아웃팅을 쉽사리 요구하는 뉘앙스가 거북했지만, 소속사의 주장 도중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었다. 명확한 피해 사진이나 피해 증거가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대중이 충격 받아 흥분한 것은 온전히 피해자의 입에서 전해들은 주장일 뿐 그들이 공개한 증거에서 딱히 흥분할 대목은 없지 않았는가.
너무나 하드코어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충격적인 폭로는 온전히 피해자의 입에서 나왔지 증거 자료로 내어놓은 사진들이 아니다. 도리어 공개한 사진은 폭로의 수위에 비해 지나치게 멀쩡해 당황스러울 정도다. 딱히 연인의 증표라고 할 만큼 친밀하다거나 수상한 점 또한 없다. 그저 제3자가 촬영한 연습생 서지수의 데뷔 전 사진으로 보일 뿐이다. 이 정도의 수위는 연예인 성형 전 사진에도 못 미친다.
서지수의 과거 폭로를 접하고 먼저 들었던 생각은 처별 여부가 아닌 진실 여부였다. 아니 명확히 말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를 되뇌었던 것이다. 문득 어느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 딸에 의해 성폭행범으로 몰렸던 부부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성폭행을 당했다던 어느 유학생의 이야기. 그 폭로의 수위가 너무나 하드코어 하여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를 나는 몇 번이나 고민했었다.
서지수의 악성 루머 또한 비슷한 양상을 갖고 있다. 너무나 수위가 높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 도리질을 치다가도 도리어 이런 일을 지어낼 수 있을까 혼란스러운 것이다. 하드코어 한 서지수의 과거에 경악한 내가 제발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던 것은 이런 일을 당한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보다, 악마 같은 범행을 저지르고도 말끔한 얼굴로 사랑스러움의 코드를 달고 나타날 수 있는 가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수위의 사건은 명확치 않은 몇 개의 사진과 주장이 모든 증거 및 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를 포함한 네티즌이 코난 놀이할 수 있을 만한 수위의 스캔들이 아니니까. 어느 누구가 진짜 피해자이건 간에 한 사람의 꿈과 비전, 그리고 삶이 걸렸다.
소속사의 비호를 받고 있다 해도 대중 앞에 얼굴과 신분을 드러내 공개 화형당할 처지에 놓인 서지수 또한 만만치 않은 위험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서지수의 악성 루머는 분명 아이돌 역사상 역대 최악의 스캔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충격적이기 짝이 없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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