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국 해체와 직무·역량과 무관한 보복 인사로 안팎에서 ‘공영방송 해체 수준’이란 최악의 평가를 받은 MBC의 조직 개편에 대해 정작 MBC 측은 “시사교양을 강화해 공공성을 높였다”, “미래지향적 융·복합 역량을 강화하는 조직개편이었다”고 자화자찬했다.

▲ MBC는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직개편과 인사발령에 대해“시사교양을 강화해 공공성을 높였다”, “미래지향적 융·복합 역량을 강화하는 조직개편이었다”고 자화자찬했다. (사진=미디어스)

MBC의 자화자찬 "미래지향적 핵심 역량 강화 주안점 둔 의지이자 자구책"

MBC는 4일 저녁 보도자료를 내어 지난달 24일, 31일 각각 시행된 조직개편 및 인사발령 취지와 내용을 밝혔다. MBC는 “자체 경쟁력을 키워 역경을 스스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이자 자구책”이라며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해 미래지향적 핵심 역량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30년 전통의 교양제작국을 해체해 예능국과 콘텐츠제작국으로 분산시킨 것을 두고는 “교양제작 분야 재편은 오래 전부터 제기된 문제”라며 “이번 예능과 교양의 재결합은 시청 트렌드를 반영해 본래의 기능을 강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MBC는 “다큐멘터리 <사랑>, <지구의 눈물> 시리즈 등 대형 다큐는 콘텐츠제작국 다큐멘터리부에서, <PD수첩>, <생방송 오늘아침>은 계속 시사제작국에서 제작한다”고 밝혔다. 동시간대 경쟁사 프로그램 <생생 정보통>과 유사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신설 프로그램 <생방송 저녁>에 대해서는 “시사 교양 부문을 보완하는 프로그램”으로 소개했다. 마지막 방송 이틀 전 폐지 통보를 받은 <불만제로>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 없이 “소비자 불만 프로그램은 <경제매거진 M>을 통해 확대 강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MBC는 “이와 같이 시사와 교양부문을 강화해 공공에 유익한 방송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이번 조직개편과 인사를 통해 기본과 원칙을 지키며, 미디어 융·복합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미래를 여는 글로벌 콘텐츠 방송사로 시청자 옆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PD수첩> 출신 PD들을 신사업개발센터, 편성국 MD 등 비제작부서로 보내고, 회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 온 기자들을 예능국 등 직무적성과 무관한 곳으로 쫓아내거나 교육발령 보낸 ‘인사’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MBC는 △신성장 동력 발굴 및 역량 강화를 위해 신설된 조직을 중심으로 그에 필요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했고 △매체 융·복합 시대를 맞아 부문과 직종 구분 없는 최적의 인력 재배치로 융·복합 역량을 극대화했다고 밝혔다.

또한 MBC는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세 차례 인사협의회의를 열어 인력배치를 심도 있게 논의했고, 수시평가와 인사고과 등에서 업무실적이 미흡하거나 업무능력, 조직 활성화 역량 등이 낮게 평가된 직원들에 대해서는 인력재배치를 놓고 장시간 논의를 거듭했다”며 “이 가운데 일부 사원에 대해서는 모든 본부와 조직에서 배치를 원하지 않아 직무배치가 보류됐다”고 밝혔다.

회사가 선정한 교육발령 대상자 12명 중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과 한국PD연합회의 <올해의 PD상> 작품상을 수상한 PD들, 방송기자연합회장을 지낸 20년차 이상 기자 등 우수 제작인력이 대거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MBC는 ‘업무실적과 능력이 낮기 때문에 교육발령을 받은 것’이라고 항변했다.

<효 사상과 실제>, <고정관념의 탈피와 창의력> 등의 과목을 듣고, 농장 실습과 등산을 할 예정이었던 <가나안 농군학교> 입소는 사내외의 거센 반발로 결국 취소됐다. MBC는 “일부 구성원 등의 의견을 반영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프로그램을 대체했다. 교육 대상자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업무활동을 개선하고 역량을 증진하는 방안을 강의와 체험학습을 통해 교육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기자, PD들을 보내 버린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신사업개발센터’는 “남이 생각만 하던, 더 나아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사업적으로 구현해 콘텐츠 플랫폼과 유통 등을 혁신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뒤늦게 청사진 제시했지만… “공영방송 MBC는 끝났다” 반응 냉랭

경악스러운 조직개편과 인사발령 때문에 뭇매를 맞은 MBC가 뒤늦게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언론계의 반응은 냉랭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성주, 이하 MBC노조) 관계자는 “교양제작국장도 조직 해체되는 걸 몰랐다고 한다. 부사장이 세 번이나 회의를 해 인사를 했다고 하지만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회사 내에 얼마 없다. 적어도 인사 당사자들은 어느 부서에서 어떤 이유로 거부됐는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본인들도 모른다고 한다. 대부분의 국·부장들도 몰랐던 것으로 안다. 그러니 ‘밀실 인사’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성격과 목적을 알 수 없던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신사업개발센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설명한 것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 줘서) 반갑긴 한데,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조직에서 왜 사무실도 못 구했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조직일수록 사전에 구성원들에게 취지와 목표를 설명한 후, 개인의 뜻과 의지를 묻고 인사를 단행해야 하는데 아무런 설명 없이 인사부터 내면 누가 (의도를 순수하게) 믿겠나”고 반문했다.

▲ 이번 조직개편으로 교양제작국이 해체돼 예능국과 콘텐츠제작국으로 분산됐고, 수익성을 주 목적으로 하는 부서가 다수 신설됐다. (사진=MBC)

"그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조직이 왜 아직 사무실도 없나..."

MBC의 한 PD는 “회사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 조직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김재철 사장 이후 만들어진 조직도 마찬가지였다. 새 포맷을 만들겠다, 미래 전략 세우겠다며 미래방송연구실 등을 만들었지만 성과가 뭐가 있나.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귀양 보내고 관리하기 위한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조직에 왜 김재철 사장에 반대해 그때부터 제작에서 배제된 사람들만 보내냐는 것이다. ‘유능해서 뽑았다’지만 현업에서 하던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시키면 그 능력이 발휘되나”라며 “이렇게 해 놓고 성과가 없으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무책임한 인사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불만제로>를 <경제매거진 M>으로 옮겨 확대 강화하겠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동안 해 온 고발 보도, 시청자 권익 보호 등을 내팽개친 것”이라며 “사영방송인 SBS도 제작본부로 합쳐졌다가 최근 교양국과 예능국을 다시 분리했다. 그런데 공영방송에서 어떻게 거꾸로 가느냐는 말이다. 결국 공익성, 공영성 주장하고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생각하는 PD들을 쫓아내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MBC의 한 기자는 “보도국은 늘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멀쩡하게 훈련 잘 되고, 최소 몇 년에서 많게는 20년 이상 능력이 검증된 기자들을 느닷없이 그런 데(비제작부서)로 보내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언론 보도 이후 비판이 거세니 회사가 놀라서, 한직으로 내쫓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신사업개발센터 등 새로운 조직을 ‘중책’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교육발령 명단에 있는 기자들하고는 ‘같이 뉴스 못 하겠다’는 것이다. 이중에는 회사와 소송을 진행 중인 기자들도 있다. 한 마디로 회사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본때 보여주겠다는 의도”라며 “뉴스 만들어오던 사람들을 예능국 같은 비전문분야에 보내고, 계속경력기자들을 외부에서 뽑는 건 마음에 드는 사람들하고만 뉴스를 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공영방송 MBC는 끝났다는 의미, 권력에 복무하겠다는 노골적 의사 표현"

MBC 출신인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MBC 설명을 들으면 조직개편 방향이 ‘예능 강화’로 읽힌다. 한 장르의 경쟁력을 높이는 건 케이블 채널에서 할 일이다. 모든 장르의 자체 경쟁력을 다 같이 높이는 것이 ‘종합편성채널’의 역할”이라며 “채널 정체성 높일 때 교양의 역할이 중요한데, ‘없어지는 것’ 자체가 파장이 크다. 교양 프로를 아예 안 만들지 않더라도 자원 동원과 조직 내 관심이 작아지게 되면 좋은 콘텐츠가 나오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경환 교수는 “예능과 교양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계획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라면 순수하게 믿을 수 있겠지만, 시사교양국 분리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교양국이 해체됐다는 점이 관건”이라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새로운 한류를 활성화하려는 흐름이 있는데, MBC는 전혀 맞지 않는 쪽으로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당연히 수익 극대화를 꾀할 수 있을지도 의구심이 든다”고 평가했다.

▲ 지난달 24일 시행된 MBC 조직개편 내용 (사진=MBC)

언론시민단체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는 “공영방송 MBC는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정권에 부합해 지상파 공영방송을 콘텐츠 제작 프로덕션으로 가져가겠다는 아주 저급한 발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신성장 동력 발굴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공영방송이 할 수 있는 사실상의 공적 서비스를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혹평했다.

전규찬 대표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담보하던 교양국을 해체한 것은 예능으로 상업주의를 펴고, <뉴스테스크>와 <PD수첩>은 아주 표피적인 수준의 보도만 하면서 권력에 복무하는 ‘퇴행’을 그대로 가겠다는 노골적 의사”라며 “이 문제는 단순히 교양제작국 해체, 유능한 저널리스트들의 흩어짐으로 설명될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시스템으로서의 MBC, 공영방송 MBC를 더 이상 재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언론노동자들이 정말로 분노하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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