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첫 방송을 앞둔 <속사정 쌀롱>을 몹시도 기대했더랬다. 윤종신, 진중권, 장동민, 거기에 신해철까지(티저가 방영될 때까지 강남의 합류가 밝혀지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입담꾼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토론이 아닌 예능에 첫 출격하는 진중권에, 그의 '입바른' 소리가 듣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에 화룡점정 같은 신해철이라니! 만사를 제치고 <속사정 쌀롱>의 첫 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신해철이 아프단다. 그래서 미뤄진 첫 방송, 그때까지만 해도 모처럼 활동을 앞두고 긴장이 심했나 싶었다. 하지만 병원으로 간 신해철은 쉬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 다음 주 <속사정 쌀롱> 대신 <히든싱어> 이승환 편이 재방영되었을 때, '어린왕자'의 귀환 같았던 이승환도 이승환이었지만 그를 통해 환영처럼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신해철이, 그들이 활약했던 시대가, 그들로 인해 위로받으며 살아왔던 '팬'이라 이름 붙여진 한시대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울컥했더랬다.

어렵사리 방영된 <속사정 쌀롱> 첫 회는 온전히 신해철 추모 방송이 되었다. 방송 내내 화면 틈 사이로 비추어진 잠시잠깐의 신해철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뚫어지게 화면을 지켜보았지만, 쏜살같이 시간은 흘러 그의 음악과 그를 기리는 글귀들로 <속사정 쌀롱> 첫 회는 마무리되었다. 비록 감질 나는 첫 회였지만, 그럼에도 그것 하나는 확실했다. 신해철은 역시 신해철이었다. 마지막 화면을 채우던 글귀 중 하나처럼, 그의 팬이든 팬이 아니었든 우리는 한 시대를 그와 공유하며 살 수 있어 행복했다. 그래서 <속사정 쌀롱> 첫 회를 통해 잠깐이나마 다시 조우할 수 있었던 그를 잃은 것이 더 안타까웠다.

첫 회의 포문을 연 <속사정 쌀롱>은 길고 장황한 오프닝을 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윤종신이야 그렇다 치고 진중권, 장동민, 강남에 신해철까지 그 누구하나 쉬이 넘어갈 MC가 없다. 윤동신이 신해철을 소개하며 '독설'을 언급하자 신해철이 말한다. 듣기 좋은 말은 쉬이 흘러가지만, 독설은 뼈가 있어 쉬이 넘겨지지 않는다고. 신해철의 그 말을 들으니 문득, 훌륭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그의 노래 가사부터 시작해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해주었던 진솔한 멘트들 대신, 언제나 우리는 그가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남긴 몇 마디의 날선 말로 그를 기억했구나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더구나 윤종신이 기억하는 신해철에 이르면 ‘신해철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불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이십대 청춘, 그래도 몇 년 먼저 데뷔한 선배라고 첫 무대에서 가사까지 잊어버리며 떨던 윤종신을 돌려세워 전쟁에 나간 병사가 등을 보여선 안 된다며 굳게 다독이던 이십대 신해철에 이르면 일찍이 당차고 알찬 청춘, 어쩌면 그래서 혼란한 시대 속에서 등을 보이지 않고 맞섰을 그의 삶이 녹록치 않았을 것이 분명한 청춘 신해철이 그대로 복기되었다.

그렇게 오프닝이 지나고 첫 회 게스트 허지웅이 등장하자마자 <속사정 쌀롱>의 MC들이 망할 조합이라며 한 명 한 명 이유를 드는데, 신해철을 칭해 남북정상회담 때 유머를 아직도 쓴다고 조소한다. 즉 한 물 갔다는 것인데, 그 말을 들은 신해철은 좋은 건지 쑥스러운 건지 온 몸을 구기며 웃는다. 신해철이 떠난 뒤 허지웅은 그의 SNS를 통해, 친했던 형 신해철을 <속사정 쌀롱>에서 만나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한껏 '까대기만' 했다며 통곡했다. 그런 허지웅의 말처럼 첫 회 <속사정 쌀롱>에서 그는 안면 있는 MC들 중에서도 친한 형 신해철에게 마음껏 면박을 주었고, 신해철은 그런 허지웅의 면박을 사람 좋은 웃음으로 흔쾌히 받아넘겼다. 그 어디에도 정색하며 다그치는 독설가 신해철의 모습은 없었다.

물론 신해철이 그저 허허 넘어간 것만은 아니다. '후광 효과'에 대해 논할 때, '후광 효과'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강남과 장동민에게 부연 설명을 하며, '후광 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전직 대통령 아버지의 후광 효과를 누리는 현직 대통령을 정확히 짚고 넘어간 것도 신해철이었다.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하면서도 짚어야 할 건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심리학 실험을 통한 심리학 용어를 알아보는 시간을 지나, 마치 심리학 버전의 <마녀사냥>처럼 시청자의 사연을 통해 심리 상담을 하는 시간. 30대 백수를 둔 직장인 30대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엄마에게 40만 원을 받아 여자 친구에게 이른바 '반띵'까지 하는 백수 형의 사연. 백수의 사회적 존재에 대한 공감을 넘어, 그 누구도 쉬이 백수 형을 곱게 봐주는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 때, 신해철만이 다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그저 사변적인 이론이나 평가가 아니었다. 바로 그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장 돈 한 푼 벌지 못하면서 작업실에 앉아 써지지 않는 곡을 쓰겠다고 앉았을 때, 작업실을 박차고 나가 다른 일을 하지 못한 것은 그저 게으르거나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기서 밀리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까봐, '꿈'을 꾸지 못 할까봐였다고 말을 꺼낸다. 그리고 청년 백수들의 처지를 정신력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을 잇는다. 그들 역시 주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시 자신을 이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즉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상황과, 아무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땀을 흘리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목표가 없는 노동은 답이 아니며, 꿈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나태하다고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맺는다.

청년 백수 문제에 대해 그딴 형을 보고 사느니 집 나가서 속 편하게 보지 말라는 단호한 말부터, 백수에 대해 복지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대안까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그 상황이 중요했다. 무작정이라도 땀 흘려 일해 보면 거기서 새로운 길이 모색된다는 대안론, 그럼에도 그들의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는 여러 의견이 개진되는 자체가 중요했다. 항상 어느 한 편의 의견으로 몰아가야 속이 시원한 우리나라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토록 다양한 각자의 의견을 풍부하게 들어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속사정 쌀롱> 첫 회는 성공적이었다. 난상토론과도 같던 그 시간은 우리가 흔히 '백수'라 칭하는 청춘들의 존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입장을 획일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생각'이란 걸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의 화룡점정이 된 것은 일을 하느냐 마느냐, 돈을 버느냐 마느냐, 그것을 가족과 사회가 배려해주느냐 마느냐라는 사지선다형 같은 토론 속에서, 여전히 '꿈'을 통해 인간적 존재로서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 주는 신해철의 한 마디였다. '꿈'꾸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성찰은, 선방에서 고승의 벼락같은 한 마디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저 사회적 존재로서, 혹은 누군가의 아들 형이라는 규정된 존재가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의 존재로 들어가 바라본 사람,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숱하게 던져진 말들을 무색하게 하고, '경제적 동물'로 살아가는 우리의 1차원적인 생각들을 서글프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신해철은 뼈있는 독설이나 뿜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존재를 풍부하게 바라볼 줄 아는 속 깊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난상토론에 불과할 뻔 했던 <속사정 쌀롱>을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마무리시키면서, 첫 회를 그와 함께한 마지막 회로 만든 신해철은 우리들의 곁에서 사라져갔다. 쉽게 잊기 힘들 기억 하나를 보태면서. <속사정 쌀롱> 첫 회, 또 한번 우리는 신해철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신해철은 마지막까지 신해철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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