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타>는 당대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한 SF 장르의 클리셰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속 배경은 급속한 사막화로 인해 멸망 위기에 처한 디스토피아입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한 잭 바칸은 로봇 제조사에 소속된 보험조사관이라서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와 겹쳐집니다. 인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그림 7000'이라는 로봇을 제작했습니다. 로봇에게는 저 옛날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했던 '로봇 3원칙'과 같은 두 가지 규약이 있습니다. 1원칙은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으로 비슷하지만, 2원칙은 자신 또는 다른 기계를 개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토마타>는 둘 중에서 후자에 기대어 인류와 로봇의 정의에 철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오토마타>를 연출한 가베 이바네즈는 좀 영리한 감독입니다. 이 영화는 분명 SF지만 세계관 설정을 통해서 시각효과에 크게 의지하지 않는 조촐한 영상으로 구성했습니다. 지구는 사막으로 뒤덮인 가운데 도시조차 황량하기 그지없게 보입니다. <블레이드 러너>와는 다르게 <오토마타>는 이것으로 암담하고 고독한 미래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배경으로 나오는 장소는 대개 외딴 지역이고 거기에는 반드시 고립된 인간(노숙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잭의 집도 구조와 내부장식에서 극히 단순합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종종 이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데 정말 그렇게 될까요?

가베 이바네즈는 제작비를 절감하는 것에서는 영리했지만 정작 속을 채웠어야 할 이야기에서는 실수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오토마타>는 여러 익숙한 SF 장르의 소재를 끌어왔으나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채 각기 따로 부유하고 있습니다. 일단 잭이 왜 이 케이스를 파고드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어 개연성이 떨어지고, 내면을 묘사하는 것에도 소홀해서 그가 갑작스레 표출하는 심리에는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컨대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도 무작정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하는 그를 보면 관객도 당혹스럽습니다. <오토마타>는 세계관 설정도 그렇고 몇 줄의 대사로 모두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적어도 아이를 희망이 있는 곳에서 키우려고 하는 그의 심리를 더 비중 있게 다뤘어야 합니다. 세계관을 기반으로 이야기에 담긴 배경 등에 집중했더라면 주제를 전달하는 측면에서도 한결 유리했을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건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로봇의 역할이나 위상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로봇이 등장하는 이상에는 당연하게도 <오토마타>는 인간과 한데 병치하고 대비시키는 SF 장르의 고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어떤 경우에도 살상을 할 수 없는 로봇과 어떤 경우에도 살상할 수 있는 인간, 가족의 의미, 감정, 진화, 통제, 권위, 삶과 생존 등에서 <오토마타>는 로봇을 통해 인간을 성찰하고 재조명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통일성을 가지지 못하고 부실하게 널부러진 탓에 주제를 흐리는 역효과를 일으켰습니다. 이 마당에는 대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은 무엇인지, 잭은 왜 저런 사단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만 남습니다. 가만 보면 잭이 로봇을 해방시키려고 한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도 <오토마타>를 마냥 깎아내릴 수만은 없는 것은 역시 로봇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로봇이 인류의 위협이 될 존재라고 속단하지 않습니다. 대신 바보 같을 만큼 유순하고 인간에 복종합니다. 그리고 로봇과 인간이 함께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염원한다는 것에서 둘을 동일한 성질로 놓습니다. SF 영화를 보면서 왜 툭하면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류의 재앙인 것처럼 다루는 건지 불만이었는데, 이처럼 기계적이고 순수하게 그리는 것이 외려 고민을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오토마타>는 로봇을 통해 인간에게 "삶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이것은 곧 상존하는 희망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스릴러보다는 드라마에 초점을 맞췄더라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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