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 100일을 맞았다. 이에 대한 평가가 여기 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종합해보면 최경환 경제팀이 경기부양에 집중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정책인지 여부가 의문스럽고 구조개혁에 대한 향후 전망이 없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경환 부총리의 취임 100일은 박근혜 정권이 경제에 대해 아무런 비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비극적인 기간이었다.

‘초이노믹스’는 등장부터 화려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청문회 단계에서부터 민감한 내용의 정책을 마구 언급했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임금에 투입되도록 사실상 강제해 내수를 살리겠다는 발언과 LTV·DTI 등 부동산 대출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동산 경기를 부양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고전적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비판과 어찌됐든 부의 재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대원칙에 보수적 경제관료의 수장이 동감을 표한 것으로 기념비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동시에 제기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긍정적 평가는 소멸했고 부정적 평가는 더 심해졌다. 애초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해 배당 강화와 임금 인상을 유도하겠다던 구상은 지난 정부가 깎아줬던 법인세 내에서만 과세 범위를 정하겠다는 방침과 임금 인상보다는 고소득자들에 유리한 배당에 사내유보금을 투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성장은 임금 인상을 통한 가계 가처분소득의 증대를 유도해야 하는 것임에도 사실상 이러한 효과를 거두는 것은 ‘물 건너 간’일이 되고 만 것이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1차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로 유도했던 집값 상승도 재건축 시장 등 제한적 범위 안에서만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오히려 이 조치 이후 전세값이 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져 수차례에 걸쳐서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끝에 마지막 카드인 LTV까지 풀어버렸는데도 부동산 시장에 사실상 영향을 미치지 못해 이제는 대책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판국이니 ‘약발을 다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최경환 부총리의 취임 직후 언론들은 주가가 상승하는 등 각종 경제지표가 개선될 전망을 보이고 있다며 이를 ‘최경환 효과’라는 말까지 붙여 띄워주기 바빴다. 하지만 한때 2000을 넘었던 코스피 지수가 10월 들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달러 강세와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의 부진으로 인해 1900선 중초반까지 떨어지면서 언론들이 일제히 ‘최경환 효과는 끝났다’고 기사를 쓰는 불행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등장할 때는 화려했던 초이노믹스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처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러나 더 문제는 이 100일의 기간 동안 초이노믹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경제체제에 대한 철학이 무엇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완화회의 등 공개석상에서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며 최경환 부총리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맞장구를 치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맞장구 친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들은 대통령의 후보 시절은 물론 취임 초기에 이르기까지 말해온 것과도 상이한 개념들로 점철돼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기 경제민주화와 기초연금 등 복지제도 확충,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세수 확보 등을 공약했으나 이러한 공약 중 지켜지지 않은 것들이 많고 지켜진 것의 경우도 애초 구상보다 후퇴했다는 점은 그간 수차례 지적돼왔기 때문에 다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공약의 문제를 넘어서서 박근혜 정권 1기 경제팀과 2기 경제팀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1기 경제팀이 감히 넘지 않은 선을 2기 경제팀은 대수롭지 않게 넘고 있다는 점이다. DTI·LTV 규제 완화가 이러한 사례의 대표적 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는 무능, 무소신, 무책임, 무리더십의 ‘4무’라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취임 초기만 해도 파격적인 추경 편성이나 4·1 및 8·28 부동산대책 등을 내놓았으나 2기 경제팀과 비교할 때에는 무리하게 여겨지는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추경의 경우 전임 정권의 법인세 인하와 산업은행 민영화 무산, 기업은행 지분 매각 등으로 인한 당위가 있었고 부동산 정책의 경우도 부동산 시장을 시장화하고 공공임대 성격의 택지개발을 사실상 축소한 비판을 받았으나 임대소득 과세를 추진하는 등 긍정적 평가를 받은 부분 역시 있었던 게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1기 경제팀이 지난해 말 수서발KTX 법인분리를 시도하고 새해 들어서는 ‘규제 완화’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 것은 지난해와 올해의 국정기조 전환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명확한 경제적 철학을 갖고 경제정책을 운용하려고 한다기 보다는 선거 시기 제시했던 ‘선거용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철회하고 있으며, 이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하기 보다는 경제정책 전반을 고전적 스타일의 경제관료들이 주장하는대로 그저 맡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제기해볼 수 있다.

▲ 새누리당 이한구 경제혁신특위 위원장이 지난달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혁신 규제개혁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은 초이노믹스를 비판하는 대열에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들까지 가세했다는 것을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경향신문>은 23일자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교사 3인방으로 불렸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 등이 모두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에 비판적 주장을 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인 전 수석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경제민주화’에 대한 보증수표처럼 여겨진 바 있고 김광두 원장은 ‘창조경제’를 고안한 당사자로 알려져있다. 이한구 의원은 박근혜 후보 캠프시절 김종인 전 수석과 알력싸움을 벌여 ‘경제민주화’ 공약을 축소시킨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이 세 사람이 모두 최경환 부총리의 정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최경환 부총리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본식 불황의 예를 따라가고 있다”는 공통된 지적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 가격을 띄우고 금리인하를 유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는데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이 이어져 부채만 급증한 장기불황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김종인 전 수석이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핑계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주장하는 이한구 의원, 최경환 부총리가 뭘 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평가를 할 야당 성향의 전문가들까지 동일하게 내놓고 있다.

상황이 이쯤되니 최경환 부총리는 애초의 구상이었던 임금인상과 배당강화를 통한 내수활성화를 다시 관철시키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최근 최경환 부총리가 공공기관부터 임금을 올리겠다고 발언하고 연기금 주주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직접 배당을 유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를 반영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을 아무리 어르고 달래야 안 하니 자기 손으로 직접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기업의 임금 인상이나 배당 유도에 결정적 방아쇠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경환 부총리의 이러한 발언들은 일종의 ‘자해공갈’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래도 안 해? 이래도?”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최경환 부총리에 대한 신뢰는 아직까지도 각별하다. 물론 최경환 부총리가 이런 모든 비판을 무색케하는 경제적 성과를 내고 성공한 경제정책 수장으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상당 부분 경제부문의 대외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의 한계를 볼 때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및 신흥국들의 이후 경제정책이 어떻게 변화되느냐에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 즉,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최경환 부총리의 100일을 좋게 평가해줄 대목은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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