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직장인들의 필수 지침서로 불릴 정도로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받았던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이 tvN에서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좋아하는 웹툰을 하루빨리 실사로 보았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하지만 과연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영화적인 컷, 미장센을 심도 있게 구현하는 원작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대다수를 이루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회사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보다, 정말 구슬땀 흘려 일만 하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원작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직장세태백서가 그럴싸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이렇게 실사화에 대한 적지 않은 우려에도 불구,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웹툰인 만큼 <미생>을 드라마로 제작하겠다는 물밑작업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기존 드라마 주류 틀에 조금씩 벗어나 꾸준히 장르 실험을 해오던 CJ E&M과 tvN이 드라마 <미생>을 만든 것은 그나마 현 상황에서는 최선으로 보였다.

물론 원작의 팬으로서 17일 첫 방송을 한 tvN <미생>이 모두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뛰어난 스펙도 없고 미숙하지만, 그래도 이 전쟁 같은 회사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만은 충만했던 장그래 그 자체였던 임시완과 달리, 원작의 안영이보다 여성성을 강조한 강소라의 안영이는 한없이 낯설었다.

그러나 모든 캐릭터가 원작 그대로일 필요는 없다. 캐릭터의 외양은 배역을 맡은 연기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도, 원작이 구현하고자 했던 이야기 즉 냉혹한 직장 현실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잘 보여주면 족하다.

다행히도 tvN <미생>은 평생을 바둑밖에 모르고 살아서 남들 다 가진 대학 졸업장과 공인된 영어 성적도 없이 대기업 인턴사원이 된 장그래와, 보다 현실적인 직장인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바둑 외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원인터내셔널 인턴사원이 된 장그래는 눈앞에 펼쳐지는 회사의 모든 일들이 생소하고, 자연스레 맡겨진 일에 실수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오래했다고 회사일이 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사회 초년생 장그래의 시선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 상사, 인턴 동료 모두 힘든 업무도 척척 해내는 슈퍼맨, 슈퍼우먼으로 비춰지겠지만, 그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미생(아직 완전하게 살아남지 못한 상태)’일 뿐이다.

정규직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비슷한 또래와의 경쟁에서 필사적으로 이겨야하는 인턴들에게 이미 정규직 신분을 확보한 그들의 상사들은 동경의 대상이자 꼭 이루고 싶은 꿈이다. 그러나 그 힘든 경쟁을 뚫고 정규직이 된다 한들 생존을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서슬 퍼런 정리해고, 감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회사에 버티기 위해 온갖 처세술을 연마하고, 숱하게 이어지는 야근에도 졸린 눈을 비비고 매일 아침 일찍 넥타이를 질끈 동여매고 환하게 웃으며 사무실 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이 시대 미생들은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미생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눈물이 나고 짠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 과장 역을 맡은 이성민의 말마따나, 그동안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던 전문직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들을 그린 드라마라고 할지라도, 힘겨운 하루하루를 용케 버텨내는 직장인들에게 일종의 경외심까지 느껴지게 하는 드라마. <미생>은 살아남기 위해 매일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고, 기어코 하루를 살아내는 이 시대 직장인들을 위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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